[뉴스토마토 유연석·배덕훈 기자] 지난 2월 3일 대통령실은 ‘무속인 천공(본명 이천공)의 대통령 관저 선정 개입 의혹’ 보도를 한 본지 기자들을 ‘정보통신망법상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습니다. 윤석열정부 출범 이후 현직 기자에 대한 대통령실의 첫 형사고발입니다.
해당 사건을 수사한 서울지방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지난 29일 본지 기자 4명을 불구속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키로 결정했습니다. 대통령실이 고발장에 적시한 명예훼손 주장에 대해 경찰이 혐의가 있다고 1차적 판단을 내린 겁니다. 하지만 법률이론적으로 따져보면 애당초 이 고발은 허점투성이라는 지적이 제기됩니다. 대통령실의 ‘명예훼손’ 주장에 대해 법률이론적 관점에서 살펴보겠습니다.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모습(사진=뉴시스 제공)
① 비방할 목적으로 명예를 훼손했다?
대통령실은 고발장에 “피고발인들은 공모해 비방할 목적으로 정보통신망을 통하여 거짓의 사실을 드러내어 명예를 훼손했다”고 주장합니다.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70조 2항은 "사람을 비방할 목적으로 정보통신망을 통하여 공공연하게 거짓의 사실을 드러내어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쟁점은 ‘비방할 목적’이 있는지 여부입니다. 대법원은 “드러낸 사실이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인 경우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비방할 목적은 부정’된다”고 판시합니다.(대법원 2020. 12. 10 선고 2020도11471 판결, 대법원 2011. 11. 24. 선고 2010도10864 판결)
즉 “드러낸 사실이 객관적으로 볼 때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으로서 행위자도 주관적으로 공공의 이익을 위하여 그 사실을 드러낸 것”이라면 명예훼손 혐의가 적용되기 어렵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대법원은 “행위자의 주요한 동기와 목적이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면 부수적으로 다른 사익적 목적이나 동기가 포함되어 있더라도 비방할 목적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시합니다.
이에 따라 신뢰할 만한 취재원에게 확인한 ‘아무런 권한도 없는 민간인 신분의 천공이 대통령 관저 결정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한 본지의 보도는 국민적 관심사이자 공적 사안으로 공공의 이익을 위함이지, 특정인을 비방하기 위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기에 대통령실의 명예훼손 주장은 사리에 맞지 않다는 게 법률이론적 해석입니다.
② 누가 명예훼손을 당했는가?
명예훼손의 객체(명예훼손을 당한 사람) 또한 의문입니다. 본지는 ‘고발인’과 ‘명예훼손을 당한 사람’의 이름이 지워진 고발장을 경찰로부터 전달받았습니다. 본지의 보도가 누구의 명예를 훼손했는지도 모른 채 고발을 당한 겁니다.
만일 고발의 주체가 ‘대통령실’이고 고발 혐의가 ‘허위사실에 의한 명예훼손’이라고 한다면 특정한 공무원이 아닌 집단적 의미의 공무원은 명예훼손죄의 객체가 될 수 없습니다. 일반 국민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대법원은 소위 집단표시에 의한 명예훼손은 원칙적으로 성립하지 않는다고 해석합니다.(대법원 2006. 5. 12. 선고 2004다35199 판결) 때문에 명예훼손죄가 성립하려면 최소한 피해자가 누구라고 인식될 정도로 특정되어야 합니다.
만약 명예훼손의 객체가 본지 보도에서 언급한 김용현 경호처장과 윤핵관으로 거론된 A의원이라고 한다면 수사는 가능합니다. 하지만 추후 ‘처벌 의사’ 여부를 반드시 확인해야 합니다.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죄는 ‘반의사 불벌죄’입니다. 피해자가 가해자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명백히 한 때에는 처벌할 수가 없습니다.
역술인 천공 (사진=뉴시스 제공/자료사진)
③ 대통령실의 잘못된 주장
대통령실은 고발장에서 “OO은 대통령 관저 선정에 개입한 사실 자체가 없다”고 주장합니다. 고발장에 OO으로 지워져 있지만 문맥상 '천공'으로 추정됩니다. 대통령실은 특히 본지의 보도 이후 "역술인이 의사결정에 참여하였다는 식의 터무니없는 가짜 의혹을 제기한 것은 공무원들과 국민에 대한 모독이자 악의적 프레임"이라고 반박합니다.
하지만 본지는 '윤석열 대통령의 관저를 결정하는 과정에 역술인 천공이 개입했다는 주장이 사실로 확인됐다'고 보도했지, '천공이 의사결정에 참여했다'고 보도하지 않았습니다. 즉, 대통령실의 이 같은 반박은 본지 보도를 오독한 것으로 잘못된 주장입니다.
앞서 김종대 전 의원은 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을 통해 천공이 대통령 관저 선정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했습니다. 김 전 의원은 당시 이 발언을 하면서 국방부 고위 관계자로부터 해당 내용을 들었다고 했을 뿐, 전언을 전한 이가 누군지는 밝히지 않았습니다.
본지는 다방면의 취재를 통해 해당 국방부 고위관계자가 부승찬 전 국방부 대변인임을 확인하고 수차례 그를 만났습니다. 직접 제주로 내려가 설득 끝에 그의 실명 인터뷰를 보도할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대통령실은 본지 보도에서 하지도 않은 표현을 들어 오히려 본지를 고발로 겁박하고 있습니다.
부승찬 전 국방부 대변인이 지난 2월 19일 제주시 김만덕기념관에서 저서 '권력과 안보-문재인 정부 국방비사와 천공 의혹' 북콘서트에 참석해 발언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제공)
결국 천공과 관련한 의혹이 계속해서 쏟아져 나오는 상황에서 대통령실이 명확한 해명이 아닌 고발장을 남발하는 것은 어떠한 목적이 있다고밖에 볼 수 없습니다. 메시지가 아닌 메신저를 공격해 권력에 대한 비판과 감시라는 언론 본연의 기능을 무력화하려는 의도로 의심됩니다. 무엇보다 대통령 부부와 천공과의 인연은 지난 대선 과정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입을 통해 확인된 바 있습니다.
또한 언론중재위원회라는 기관을 통해 정정 및 반론보도 등을 청구할 수 있는 통로가 있음에도 선행적으로 형사고발을 진행하고, 언론사와 보도책임자(편집국장)가 아닌 ‘기자 개인’을 고발한 것은 언론의 후속 취재를 막으려는 것 아니냐는 의심도 나옵니다. 일부는 기자들 스스로 자기검열에 빠지게 됐다는 부정적 반응도 내놓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경찰은 권력의 감시와 비판이라는 언론 본연의 기능을 기반으로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한 본지의 보도가 특정인의 명예를 훼손한 여지가 있다고 판단하고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습니다. 의혹의 중심에 서 있는 천공은 직접 대면조사 없이 서면답변서로만 조사를 마무리 한 채 폐쇄회로(CC)TV에 천공이 등장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결론을 내린 셈입니다.
이는 결국 대통령실의 현직 기자에 대한 서슬퍼런 고발장 남발에 경찰이 동조하는 모양새로 귀결됐습니다. 또한 향후 권력에 대한 비판을 전하는 언론 보도에 대응하는 하나의 선례가 됐습니다. 언론 자유 위축의 우려가 현실화됐다는 탄식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유연석·배덕훈 기자 paladin703@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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