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공급망실사 의무화…수출기업 ESG 대응 비상
유럽 본회의 통과…이사회 승인 후 발효 예정
유럽수출 대기업에 공급망 협력사도 규제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전자기업 발빠른 대응
유럽 CBAM 규제 겹친 철강 등 리스크 점증
2023-06-07 06:00:00 2023-06-07 06:00:00
[뉴스토마토 이재영 기자] 유럽 ESG 공급망 실사가 의무화돼 국내 수출기업도 규제망에 포함될 전망입니다. 원청 대기업뿐만 아니라 공급망 협력사의 ESG 기준을 충족해야 하는데 기존에 많았던 환경 규제를 넘어서 노동 분야까지 규제하는 게 특징입니다. 노사분규가 많은 국내 제조업 특성상 규제 파장이 클 것으로 보여 주목됩니다.
 
준수 못하면 수출금지에 민사책임도
 
7일 업계에 따르면 현지시간으로 지난 1일 EU 의회는 기업지속가능성실사지침(CSDDD)을 찬성 366표, 반대 225표로 통과시켰습니다. CSDDD는 주로 공급망 실사 법안으로 불립니다. 인권과 환경 관련 기업활동의 전 공급망에 걸쳐 잠재적인 부정적 영향을 식별하고 제거해야 하는 게 골자입니다. 규제 대상 기업은 자회사 및 공급망 협력업체 포함 전 공급망에서 실사를 해 부정요소를 파악하고 예방조치 및 개선조치를 해 제3자 검증을 받아야 합니다.
 
법안이 유럽의회 본희의를 통과해 올해 말 또는 내년 유럽 이사회 승인 후 발효됩니다. 대기업은 지침 발효 2년 후, 중견기업은 4년 후부터 규제가 적용됩니다. EU 회원국은 늦어도 지침 발효 2년 내 국내법 전환 및 시행에 나서야 합니다.
 
제도는 EU 전체에 적용되는 강력한 규정보다 한단계 낮은 지침입니다. EU에서 전반적인 목표와 국내법 제정 시한만 제시하고 회원국이 별도 국내법을 제정하게 됩니다. 이에 따라 향후 국가별로 관련법 내용이 달라 혼선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지침 가이드라인 중에는 흔히 환경 기준을 맞춰야 하는 기존 ESG 규제와 달리 전세계 광범위한 밸류체인상 경영에 개입하는 내용이 있어 파급력이 주목됩니다. 규제 대상기업은 일단 초기에는 직원 500명 이상, 매출 1억5000만유로(2000억원) 회사에 해당하며 향후에는 직원 250명 이상 매출 4000만유로(500억원) 회사까지 확장될 예정입니다. 국내 수출기업도 EU에서 매출이 발생하는 경우 해당 지침에 따라야 합니다.
 
지침을 준수하지 않은 기업에 대한 제재 및 불이익은 EU 회원국이 도입할 국내법 내용에 따라 다른데 시장 철수, 벌금, 공공자금 조달 금지 등 규제가 가능합니다.
 
규제 준수 검증 비용까지…중소기업 막막
 
협력사의 ESG까지 관리해야 하는 CSDDD에 대해 국내 기업들은 아직 대응이 취약합니다. 대기업 개별적으로는 각종 글로벌 이니셔티브(자율 규범 단체)에 가입해 저마다 해법을 찾고 있습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LG디스플레이, LG전자, LG에너지솔루션 등은 전기전자 분야 이니셔티브에 가입 중입니다. 포스코, 현대제철은 철강 분야 지속가능철강 이니셔티브에 소속돼 있습니다. 또 분쟁광물이나 온실가스 규제 대응 이니셔티브에 국내 대기업들이 다수 가입해 있습니다.
 
하지만 협력사를 포함한 규제 대응 이니셔티브에는 가입 숫자가 많지 않습니다. 협력사의 ESG 정보를 공개하는 CDP(탄소정보공개프로젝트)의 경우 삼성전자, 삼성디스플레이, SK하이닉스 등만 포함돼 있습니다. 철강 분야의 경우 탄소국경조정제(CBAM) 대상에도 포함돼 규제 피로도가 높지만 대응은 미약해 보입니다. 노사분규나 중대재해, 하도급 문제가 잦은 점을 고려하면 CSDDD 변수가 큽니다.
 
법안은 개인이나 노동조합, 시민단체 등을 대상으로 고충처리 시스템을 운영하고 불만사항에 대해 적절한 조치를 취하도록 합니다. 또 불만을 표한 이해관계자는 기업에 후속조치를 요청하고 논의를 위해 기업대표와 만날 수 있습니다. 국내 노동조합이 이러한 규정을 들어 노사협상에 나선다면 분쟁이 발생할 확률도 커질 만한 대목입니다.
 
규정을 준수하지 않으면 관련법을 도입한 EU 회원국은 기업에 손해배상 청구 민사책임도 제기할 수 있습니다. 금전, 행정 등 제재 조치는 회원국 자율적인데 과징금 부과 시 제재규모는 기업 매출액에 비례해야 한다는 조항도 있어 리스크를 키웁니다.
 
물론 이같은 까다로운 규정을 전세계 밸류체인에 적용해 통제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일부 전문가는 대기업들이 협력사에 규제 책임을 전가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국내는 CSDDD 규정 준수 제3자 검증 비용 등을 포함해 대기업에 비해 규제 대응 부담이 클 수밖에 없는 수출 중견, 중소기업에 대한 염려가 작지 않습니다.
 
규제는 글로벌 공급망 갈등과 연결돼 치킨게임 양상도 보입니다. 미국이 공급망 패권 부활을 위해 중국, 러시아 등을 견제하면서 유럽과도 충돌하고 있습니다. CBAM, CSDDD는 미국 보호주의 정책(IRA, 반도체법, 환경규제 등)의 맞대응 성격으로도 분석됩니다. 즉, 공급망 갈등이 격화될수록 규제 강도가 세져 국내에 불똥이 튈 수 있습니다.
 
규제 완화 기조로 전환될 가능성은 낮아 보입니다. 업계 관계자는 “기후변화 문제를 심각하게 겪고 있는 유럽은 생존을 위해 역내 기업에 대한 ESG 규제를 강화하면서 해외 기업에 비해 불이익이 커질 것을 막기 위해 대세계 규제를 강화하는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이재영 기자 leealive@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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