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장성환 기자] 서울의 초·중·고교에서 실시하는 기초학력 진단 검사 결과를 공개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조례안이 서울시의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논란으로 번지고 있습니다. 교육 현장에서는 과도한 학교별 성적 경쟁으로 과거처럼 부작용만 낳을 수 있다는 우려가 쏟아져 나오고 있는 상황입니다.
서울시의회서 기초학력 진단 검사 결과 공개할 수 있도록 하는 조례안 통과
서울시의회는 지난 10일 제316회 임시회 제5차 본회의를 열고 '서울시교육청 기초학력 보장 지원에 관한 조례안'을 가결했습니다. 조례안에 따르면 교육감은 학교장이 시행한 기초학력 진단 검사의 지역·학교별 결과를 공개할 수 있고, 기초학력 진단 검사 결과를 공개한 학교에 대해 포상할 수 있습니다.
아울러 학교장이 기초학력 진단 검사의 시행 일자·시행 과목·응시자 수 등의 현황을 학교운영위원회에 보고해야 하고, 그 결과를 학교 홈페이지에 공개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해당 조례안은 위원 9명 전원이 국민의힘 시의원으로 구성된 '서울교육 학력 향상 특별위원회'(학력 향상 특위)에서 지난달 14일 의결된 후 서울시의회 본회의에 올라왔습니다. 이경숙 학력 향상 특위 위원장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이후 학습 결손에 대한 사회적 우려가 늘어나고 기초학력 미달 학생이 증가해 이러한 조례안을 마련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서울의 초·중·고교에서 실시하는 기초학력 진단 검사 결과를 공개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조례안이 서울시의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논란으로 번지고 있습니다. 사진은 지난달 21일 서울 중구 서울시의회서 제316회 임시회 제2차 본회의가 열리고 있는 모습.(사진 = 뉴시스)
교육계 "이명박 정부 때 이미 실패한 정책…학교별 지나친 성적 경쟁만 낳아"
하지만 교육계에서는 이 조례안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이명박 정부 시절 학교별 성적 공개에 따른 줄 세우기로 수많은 문제가 생긴 경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당시 모든 학교가 초등학교 6학년·중학교 3학년·고등학교 2학년이 치르는 '국가 수준 학업성취도 평가' 성적을 온라인에 공개했는데 이를 학교 평가와 성과급 평가 등의 지표로 활용하면서 여러 부작용만 낳았습니다. 학생들이 어떻게든 '국가 수준 학업성취도 평가' 성적만 잘 받을 수 있도록 해당 시험과 비슷한 유형의 문제 풀이 공부만 시키고 결과에 대해 압박하는 등의 역효과가 생긴 것입니다.
이에 문재인 정부는 지난 2017년 이 시험을 중학교 3학년과 고등학교 2학년 재학생 3%의 표본만 추출하는 방식으로 바꿨습니다. 현재 서울의 학생들은 학교장이 선택한 방법으로 기초학력 진단을 받지만 결과는 외부에 공개되지 않고 있습니다.
한성준 좋은교사운동 공동대표는 "과거에 이미 실패한 정책을 반복하는 건 옳지 않다"며 "기초학력 진단 검사 결과를 공개하면 지나친 학교별 경쟁으로 교육과정이 황폐해질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습니다.
이형민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대변인 역시 "학교가 학생들이 가지고 있는 여러 능력 중 하나인 성적만 평가해 강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학생들의 정서적 요인을 중요시한 정책이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도 많다. 정치적 입장이 다르다는 이유로 기존에 효과가 있는 정책을 부정하고 지우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교사들은 성적 압박에 대한 우려도…서울시교육청 "신중히 검토"
특히 교육 현장에서는 기초학력 진단 검사 결과를 공개할 경우 교사들에 대한 성적 압박이 심해질 것을 걱정하고 있습니다.
서울의 한 중학교에서 근무하고 있는 교사 A씨는 "만약 서울시교육청이 기초학력 진단 검사 결과를 공개하라고 지침을 내리면 개별 학교는 따를 수밖에 없다"며 "그렇게 되면 우리 학교의 성적이 낮게 나왔을 때 교사들을 질책하고 성적 향상에 대해 강하게 요구하지 않을까 염려된다"고 의견을 표했습니다.
조례안이 서울시의회 본회의를 통과했지만 아직 완전히 확정된 건 아닙니다. 서울시교육청이 서울시의회에 재의결을 요구할 수도 있습니다. 교육감은 지방의회의 의결사항에 이의가 있을 경우 이송받은 날로부터 20일 이내에 이유를 붙여 재의결을 요구할 수 있도록 규정돼 있습니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조례안 본회의 의결 후 5일 이내에 서울시교육청에 이송하게 돼 있는데 아직 우리 쪽으로 넘어오지 않았다"면서 "기초학력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는 만큼 정해진 기간 동안 충분히 신중하게 검토해 결정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서울의 초·중·고교에서 실시하는 기초학력 진단 검사 결과를 공개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조례안이 서울시의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논란으로 번지고 있습니다. 사진은 지난달 23일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서울 중구 서울시의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제316회 임시회 제4차 본회의에 참석해 시정 질의에 답변하고 있는 모습.(사진 = 서울시교육청)
장성환 기자 newsman90@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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