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하늬·윤민영 기자] 윤석열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대기업 총수가 구속되면서 검찰이 담합·부당지원 등 재벌 손보기에 본격적으로 나설 것으로 보입니다. 이번에 구속된 한국타이어 건의 경우 기업의혹이 오너의 개인수사로까지 확대됐다는 점에서 수사를 앞둔 다른 기업들의 긴장이 커지고 있습니다.
이번 정권이 기업경제 분야의 공정한 경쟁질서를 무너뜨리는 범죄에 대해 제재가 필요하다는 입장인 만큼, 조현범 회장을 신호탄으로 검찰이 공정거래법 위반 사범뿐만 아니라 기업 총수들의 각종 범죄에 대해 검찰이 전면에 나서 수사 강도를 높일 것이라는 분석이 큽니다.
9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윤재남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횡령·배임) 및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를 받는 조현범 회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발부했습니다. 윤 부장판사는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다"며 조 회장의 구속 사유를 밝혔습니다.
계열사 부당 지원 및 회사자금 횡령 의혹을 받는 조현범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한국타이어) 회장이 8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200억대 횡령·배임' 조현범 한국타이어 회장 구속
조현범 회장은 2020∼2021년 현대자동차 협력사 리한의 경영 사정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 회사 대표와의 개인적 친분으로 한국프리시전웍스(MKT)자금 130억원가량을 빌려줘 회사에 손해를 끼친 혐의(특정경제범죄법상 배임)를 받고 있습니다.
또 비슷한 시기에 회삿돈 수십억원을 유용해 개인 집수리와 외제차 구입 비용 등으로 사용한 혐의(특정경제범죄법상 횡령)도 있습니다.
검찰이 파악한 조 회장의 횡령·배임액은 200억원대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조 회장은 한국타이어가 2014~2017년 계열사 MKT의 타이어 몰드를 다른 제조사보다 비싼 가격에 사주는 방식으로 부당지원한 혐의(공정거래법 위반)도 받고 있습니다. 검찰은 이 과정에서 총수 일가가 사익을 편취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습니다.
공정위는 작년 말 계열사 부당 지원 의혹으로 한국타이어에 과징금 80억300만 원을 부과하고 계열사와 함께 검찰에 고발했습니다. 당초 공정위는 조 회장을 제외한 두 법인만 고발했으나 검찰이 조 회장에 대한 추가 고발을 요청해 지난 1월 공정거래밥 위반 혐의로 고발이 이뤄졌습니다.
윤석열정부 첫 구속 대기업 총수…검찰, 전방위 수사의지
조현범 회장의 구속은 대기업 총수로는 윤석열정부 들어 처음입니다. 향후 검찰이 대기업의 일탈 행위에 대해 전방위 수사할 것을 암시하는 셈입니다. 윤 대통령은 문재인정부 때이던 2019년 7월 신임 검찰총장으로 취임할 당시 '공정경쟁'을 강조한 바 있습니다. 즉, 정치경제 분야의 공정한 경쟁질서를 무너뜨리는 범죄에 대해 추호의 망설임도 없이 단호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겁니다.
실제 검찰의 기업수사는 전방위적으로 활발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특히 검찰이 공정거래법상에 규정돼 있는 고발 요청권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작년 검찰이 공정위에 고발을 요청한 사례가 10건으로 2013년 제도 도입 이후 가장 많았습니다. 2018~2021년 4년간 8건이었던 점과 비교해도 검찰이 공정거래 사건에 적극적인 겁니다.
공정위 고발사건에 대한 수사 강도도 높이고 있습니다. 이번에 구속된 한국타이어 조현범 회장의 경우 공정위는 조 회장을 제외한 두 법인만 고발했지만 검찰이 조 회장에 대해 추가 고발을 요청했습니다. 또 공정거래법 위반 뿐 아니라 배임 혐의 등으로 수사를 넓혀 구속한 겁니다.
입찰 담함 사건 수사에도 속도를 내고있습니다. 지난달 1일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는 한샘·현대리바트·에넥스·넥시스·우아미 등 가구업체 10여곳을 압수수색했습니다. 1조원대 입찰담합 혐의인데 공정위 고발없이 검찰이 직접 인지해 수사에 들어간 사례입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오너와 경영진까지 칼날, SPC·삼성·금호석유화학 등 줄줄이 조사
공정위의 법인 고발 뿐 아니라 경영진까지 타깃으로 삼는 사례도 확대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미 재계는 대기업 및 총수일가에 대한 검찰의 적극적인 수사에 긴장하고 있습니다. 재계 저승사자로 불리는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는 지난해 12월 허영인 SPC그룹 회장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습니다. 검찰은 또 2020년 공정위가 허 회장을 공정거래법 위반으로 고발한 건에 대해서도 수사하고 있습니다.
삼성도 예외는 아닙니다. 검찰은 지난달 삼성생명과 아난티를 횡령·배임 혐의로 압수수색 했습니다. 검찰은 아난티와 삼성생명 간의 부동산 거래 과정에서 임직원들 사이에 유착이 있었던 것은 아닌지 의심하고 있습니다. 아난티는 이 부동산 개발 과정에서 불과 1년 6개월여 만에 부동산 가액을 2배 가까이 끌어올려 되팔았기 때문입니다.
과도한 판촉비를 요구하는 등 하도급 갑질 의혹을 받는 GS리테일에 대한 수사도 착수했습니다. 이 건은 공정위가 과징금만 부과하고 검찰에 고발하지 않았는데 중소벤처기업부가 나서 공정위에 고발 요청하며 이뤄졌습니다.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도 검찰 조사를 피해가기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공정위가 대기업집단 지정을 위한 자료 제출 과정에서 처남 등 친족이 보유한 계열사를 누락한 혐의로 박찬구 금호석유화학그룹 회장을 검찰에 고발하기로 했기 때문입니다.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검찰기. (사진=뉴시스)
"기업규제 신호탄…공정거래 조사권한 확대할 것"
법조계 전문가들은 조현범 회장 구속을 계기로 대기업·재벌 손보기에 따른 신호탄으로 해석합니다. 검찰이 기업 수사의 영역을 더 확보해 기업경제 범죄에 대한 제재에 확실히 손을 보려는 것으로 읽힌다는 겁니다.
기업 공정거래 관련 전문가인 한 변호사는 "공정거래 범죄의 경우 전속고발권으로 공정위가 고발하지 않으면 수사가 되지 않는게 원칙이지만 이제 검찰이 공정위 고발 없이 눈치 안보고 수사를 하고싶어하는 것 같다"며 "대검찰청 내에 반독점과를 신설하고, 서울중앙지검 내 공정거래조사2부 신설하는 움직임이 있는데 결국 검찰이 법무부, 대검찰청, 중앙지검으로 이어지는 이 라인에서 공정거래에 관한 권한을 키우려는 것"이라고 해석했습니다.
대형로펌의 공정거래 전문 변호사도 검찰이 더욱더 수사 강도를 높이게 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봤습니다.
그는 "최근 입찰담합의 경우 공정거래법이 아닌 형법 315조 업무방해죄로 수사를 할 수 있기 때문에 공정위 고발을 기다리지 않고 수사를 시작하는 경우가 있었고, 고발 요청권을 적극 활용하기도 하고있다"며 "감사원, 중기부, 조달청에서도 공정거래법상에 규정된 의무 고발로 수사가 많아지는 상황에서 향후 공정위 고발건보다 훨씬 강도높은 수사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습니다.
검찰출신의 변호사는 기업관련 불법을 포착해 엄하게 처벌하겠다는 의지로 해석했습니다.
김정환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는 "검찰이 특정 거래로 인해 생긴 이득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규명하는 과정에서 특수 관계인이나 개인의 부당 취득 혐의를 포착하는 것이 요즘 수사 트렌드로, 이 경우 죄질이 안 좋아져서 형량이 세게 나온다"라며 "양형 기준제 적용으로 재벌 총수 등에 관해서도 양형이 객관화되기 때문에 형량이 세질 가능성이 높은데 이는 현 정부가 기업에 대한 심층 수사와 엄정 처벌 의지를 나타낸 것이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김하늬·윤민영 기자 hani4879@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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