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충남 아산 삼성디스플레이 아산캠퍼스를 방문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사진=연합뉴스
[뉴스토마토 이재영 기자]삼성그룹이 사실상 지주회사 전환 가능성을 원천 차단했습니다. 삼성물산이 자사주를 전량 소각하기로 했기 때문입니다. 소위 삼성생명법으로 불리는 보험업법 개정이나 금융복합기업집단법 규제에 따라 강제 지주전환될 리스크도 있으나, 이재용 회장이 지주전환은 없다는 배수의 진을 친 결단으로 해석됩니다. 국내외 금산분리 규제에 따른 지배구조 현안은 계속됩니다. 그 속에 지주전환을 포기한 삼성그룹이 택할 수단은 지배구조 최상단의 삼성물산 기업가치를 키우는 방법뿐입니다. 이번 자사주 소각 결정과 함께 삼성물산의 신사업 투자 계획 등을 밝힌 배경은 서로 연결됩니다.
20일 삼성그룹 등에 따르면 자사주 마법(의결권 부활)은 소액주주 권리를 희석하는 문제로 여론 비판을 받아왔으나 지금도 재계에서는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습니다. 삼성물산도 자사주를 대량 보유해온 만큼 시장에선 이를 활용한 개편 가능성을 줄곧 제기해왔습니다. 삼성물산이 자사주를 전량 소각하기로 해 이런 잡음은 줄어들 전망입니다. 재계 관계자는 “자사주가 많아도 여론 비판을 의식해온 삼성이 인적분할 시 활용하거나 제3자에 양도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라며 “차라리 소각하면 기존 주주의 지분가치도 높이고 배당여력을 확대하는 등 주주친화정책 효과가 있다”라고 평가했습니다.
비판여론 의식해 못쓰는 자사주 소각
앞서 삼성전자는 2016년부터 지주회사 전환을 검토하다가 2017년 4월 검토 중단을 선언하고 지배력 강화에 활용될 수 있는 자사주를 전량 소각 결정했습니다. 이후 삼성전자는 보통주 15.1%나 되는 18조7000억원어치 자사주를 소각했습니다.
그럼에도 삼성생명 등 금융계열사를 통해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을 유지하고 있는 삼성그룹의 지배구조는 줄곧 리스크로 지목돼 왔습니다. 국내외 금산분리 규제와 충돌하기 때문입니다. 삼성물산에 남아 있던 자사주는 이런 규제 변수에 대응할 마지막 보루였던 셈입니다.
자사주를 활용해 지주전환하면 지배주주 지배력을 손쉽게 강화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삼성그룹의 경우 삼성생명과 삼성화재 등 금융계열사를 통해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지주전환 시 이들 금융회사를 보유할 수 없는 규제가 큰 부담입니다. 따라서 삼성물산 자사주는 공정거래법 규정상 강제 지주전환될 변동이 있을 때나 쓰일 법했는데, 삼성그룹은 그마저도 포기한 것입니다.
삼성생명법은 여당의 반대로 국회 논의에서 우선순위가 밀렸습니다. 당 대표를 뽑는 여당 일정을 고려하면 당분간 논의 테이블에 오를 가능성은 낮아보입니다. 하지만 내년 총선 등의 결과에 따라 의석 수가 많은 야당에 의해 법안 처리도 다시 탄력받을 수 있습니다. 법안에 따라 현재 삼성전자 1대주주인 삼성생명이 지분 일부를 팔면 삼성물산이 1대주주로 올라서게 됩니다. 그러면 자칫 자회사 주식가액 비중이 총자산의 50%를 넘어 공정거래법상 지주회사로 강제전환될 수 있습니다.
금융사 포기 못해…삼성물산 키우는 배수진
금융사를 포기할 수 없고 지주전환 시 자사주를 활용하기도 꺼려졌던 삼성물산 입장에선 자산가치를 키워 강제 지주전환을 막는 것이 최선입니다. 재계 관계자는 “본래 삼성바이오로직스 지분을 활용해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을 인수할 것으로 예상됐으나 분식회계 재판이 길어지면서 지배구조 개편 문제는 장기전이 됐다”라고 말했습니다.
지난 16일 삼성물산은 향후 5년간 자사주 전량 소각과 함께 관계사 배당수익의 60~70% 수준 환원 및 주당 최소 배당금 2000원 유지 등을 발표했습니다. 또 기존 사업경쟁력 강화를 위해 1조5000억~2조원, 차세대 유망 분야 신사업에 1조5000억~2조원을 투자하기로 했습니다. 친환경 에너지 사업 다각화 및 바이오, 헬스케어 신성장 동력 확보 목적입니다. 투자금은 자회사인 삼성바이오로직스 외 기존 육성 중인 태양광, 소형모듈원자로(SMR), 수소사업 등에 쓰일 전망입니다.
이번 자사주 소각은 기존 주주들에게 여러모로 유용합니다. 자사주를 전량 소각하면 현재 17.97%인 이재용 회장 지분의 경우 발행주식 총수가 줄어 대략 20% 정도까지 확대될 전망입니다. 이번 소각은 감자소각으로서 줄어든 자본금이 자본잉여금으로 이동합니다. 자본잉여금은 다시 주식배당 등을 통해 활용할 수도 있습니다.
한편, 상속세 재원 마련 이슈가 지속되면서 그룹 내 배당유인도 점증하고 있습니다. 일례로 고 이건희 회장의 지분 상속 이후 홍라희 전 관장이 삼성전자 개인 최대주주(1.96%)가 됐습니다. 이를 10년 내 재상속하면 상속세 일부가 공제돼 재상속이 이뤄질지도 관심입니다.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은 최근 삼성SDS 보유 주식 전량(1900억원어치)을 팔았습니다. 당초 삼성SDS는 배당 소득에 대한 기여도가 낮고 지배구조상 중요도가 적어 지분 매각 1순위로 점쳐졌습니다.
이재영 기자 leealive@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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