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0월25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2023년도 예산안 및 기금운용계획안에 대한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뉴스토마토 강석영 기자] 돌봄 분야 예산이 대폭 삭감된 2023년 정부 예산안이 그대로 통과될 위기에 처했다. 특히 어린이집·초등돌봄교실·공공노인요양시설 확충 예산이 크게 줄어 저출생 고령화 사회에서 공적 돌봄 체계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는 윤석열정부가 평소 강조했던 '약자 복지'와도 정면으로 반한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등의 예산안 및 기금운용계획안 조정 총괄표를 보면, 아동 돌봄 예산은 현금성 지원만 늘었을 뿐 어린이집·초등돌봄교실 등 공공 인프라 확충 예산은 축소됐다. 대표적 현금성 지원으로 부모급여가 있다. 기존 영아수당의 명칭을 변경하고 지원 금액을 상향했다. 부모급여지원은 2023년 순증만 1조2762억원에 달한다. 이에 보육 지원 아동이 감소했음에도 불구하고 예산이 크게 늘었다.
하지만 어린이집 확충 예산은 전년 대비 19.3% 삭감된 492억원에 불과하다. 국공립 신축이 전년 대비 29.3% 줄었고, 국공립 자기임차 예산과 매입 어린이집 예산도 각각 46.6%, 33.3% 줄었다. 어린이집 기능보강 예산도 전년 대비 10% 줄었으며, 보육 교직원 인건비 등은 최저임금 인상률에 비해 부족한 수준으로 소폭 늘었을 뿐이다.
김형용 동국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참여연대 월간복지동향에서 "전체 90%가 넘는 미취학 아동은 어린이집과 유치원을 이용하고 있다. 이러한 공적 인프라에 대한 투자와 종사자 처우 개선은 모르쇠로 하고, 가정 내 돌봄을 지원해 소득하락을 방지하겠다는 것은 오늘날 여성 일자리와 가족의 성격에도 부합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심지어 아동·청소년 분야에선 교육부의 초등돌봄교실 시설 확충 예산 210억원이 전액 삭감되기도 했다. 여성가족부의 청소년방과후아카데미도 시설 확충 예산은 편성되지 않았다. 지역 아동센터도 신규 설치 예산이 없으며, 학교 돌봄터 사업 교실은 전년 대비 50실 감소해 100실뿐이다. 유일한 시설 확충은 다함께돌봄센터 197개소에 불과하다. 반면 여가부의 가정돌봄서비스인 아이돌봄지원 예산은 전년 대비 27.7% 증가했다.
김아래미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월간복지동향에서 "영아가 아닌 아동은 양질의 시설돌봄 서비스 수요가 높고, 현재 시설돌봄 서비스 공급이 매우 부족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방식의 예산 편성은 가정 중심의 보호서비스만 확대하는 공급자 중심의 예산 편성이라는 한계가 있다"고 비판했다.
민주당 정춘숙·정의당 강은미 등 보건복지위 소속 야당 의원들과 돌봄공공연대 등은 지난 9일 국회 소통관에서 '윤석열정부의 복지축소 예산 편성 규탄과 사회안전망 예산 확대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뉴시스)
노인 돌봄 역시 공공 인프라 확충 예산이 크게 감소했다. 노인요양시설 확충 예산은 전년 대비 19.3% 감소한 501억원이다. 일반요양시설 예산도 전년 대비 39.9% 감소한 56억원으로 편성됐다. 치매전담형 노인요양시설 확충 예산 역시 327억원으로 전년 대비 34.2% 감소했다. 이에 새로 신축되는 치매전담형 노인요양시설은 8곳으로 지난 3년간 가장 적다.
최혜지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월간복지동향에서 "국공립 노인요양원은 246개소로 장기요양 인정노인 4247명당 1개소에 불과하다"며 "노인 장기요양의 공공성 강화를 위해 국공립 노인요양원의 증가가 제도 출범 이후 지속적으로 요구돼 왔으나 노인장기요양보험 시설 확충 예산은 오히려 감소하는 등 노인장기요양 서비스의 공공성은 의미 있는 진전을 이루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이 같은 예산 편성은 윤석열정부의 '약자 복지' 기조와도 맞지 않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0월25일 2023년 정부 예산안을 설명하는 국회 시정연설에서 "정부는 재정 건전화를 추진하면서도 서민과 사회적 약자들을 더욱 두텁게 지원하는 '약자 복지'를 추구하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이에 민주당과 정의당 등 야당은 "윤석열정부가 명명한 '약자 복지'의 실상은 약자를 외면하는 복지"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돌봄 공공성 확보와 돌봄권 실현을 위한 시민연대'도 성명을 통해 "감염병 상황에서 돌봄의 책임이 가족과 여성에게 전가된 상황을 목도하고도 대폭 삭감된 돌봄의 공공 인프라 확충 예산은 이후 우리 사회에 다가올 재난 등의 위험에서 같은 상황의 반복을 초래할 것이 자명하다"며 "돌봄의 공공성 강화와 국가책임 확대를 위한 적극적인 투자는 가속화하는 저출생 고령화 사회에서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했다. 그러나 돌봄 예산안은 대폭 삭감된 채 오는 30일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할 전망이다. 국회 보건복지위 관계자는 "(전체회의에서)그대로 통과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강석영 기자 ksy@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