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매달 100종 이상 출판…큰 글자책 시대의 개막
2022-10-20 06:00:00 2022-10-20 06:00:00
큰 글자책은 보통 책에 쓰이는 활자 크기보다 훨씬 큰 글자를 사용하는 책이다. 시력이 좋지 않거나 작은 글자를 읽기 어려운 독자에게 안성맞춤이다. 초고령사회 진입을 앞두고 고령자의 증가가 큰 글자책 시장의 확장으로 이어질지 주목되는 까닭이다. 
 
문화체육관광부도 이에 주목해 10여 년 전부터 매년 한국도서관협회를 통해 큰 글자책을 제작 보급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예산 범위에서 큰 글자책 제작 수요가 높은 책을 선정해 큰 글자책판으로 납품받아 보급하는 방식이다. 올해도 『불편한 편의점』 등 인기 도서 24종을 큰 글자책으로 제작해 공공도서관에 보급했다. 그 덕분에 공공도서관 중에는 큰 글자책 전용 코너를 두고 북큐레이션을 하거나 관련된 독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곳이 많아졌다. 자연스럽게 공공도서관이 큰 글자책 출판시장의 주요 고객으로 등장했다.
 
그런데 창비, 김영사, 커뮤니케이션북스 등 일부 단행본 출판사들이 큰 글자책 시장에 참여하고 있는 데 비해 대다수 출판사의 관심은 적은 편이다. 채산성 문제가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판로가 보장되지 않기에 출판사의 결단이 필요하다. 고령자들의 저조한 독서율부터 책의 재고 보관 문제에 이르기까지 현실적인 난제들도 적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큰 글자책에 대한 일반 독자의 반응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김영사에서 펴낸 오은영의 육아교육서인 『어떻게 말해줘야 할까』(전2권)는 60만 부를 돌파한 베스트셀러인데 큰 글자책판으로도 7,500부가 판매되었다. 유발 하라리의 장기 스테디셀러인 『사피엔스』(전2권)는 큰 글자책판이 2,400부 넘게 팔렸다. 보통 단행본의 판매량과 비교하면 큰 글자책의 판매량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고 볼 수 있다. 그렇지만 단행본의 초판 평균 발행 부수가 1,500부 정도임을 감안하면 무시할 만한 판매량은 아니다. 판매 가능성과 성장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특히 우리나라 성인의 17.4%가 ‘시력 저하로 글자가 잘 보이지 않아서 책을 읽기 어렵다’고 응답(2021년 국민 독서실태 조사)한 것에 비추어, 큰 글자책의 필요성과 잠재력이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교보문고에 따르면, 큰 글자책은 2015년에 207종 입고되던 것이 꾸준히 증가해 2021년에는 1,446종을 기록했다. 올해는 9월 기준 1,218종이 입고되었다. 이미 지난해부터 매월 100종 이상의 큰 글자책이 발행되는 시대로 진입했음을 알 수 있다. 인터넷서점 예스24의 판매량 추이에서도 큰 글자책의 전체 판매량은 아직 적지만 꾸준한 성장세를 확인할 수 있다. 베스트셀러를 보면 성경이 상위권 판매 목록의 중심이지만 점차 인문, 경제경영, 소설 등으로 다양화되는 양상이다. 실제 독자는 60대 이상 고령자가 많겠지만 책 구매자는 40대 여성이 중심이다. 딸들이 구입해서 부모님에게 선물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보인다. 
 
큰 글자책 시대가 열리고 있으나 해결해야 할 과제 또한 적지 않다. 무엇보다 낱권 단위로 주문과 제작이 가능한 출판 공급 시스템(가칭 큰글자책 POD 플랫폼)이 필요하다. 큰 글자책을 사전에 대량 제작하는 데 따른 부담을 해소하기 위한 방법이다. 베스트셀러에 오른 책 등 인기 단행본 도서들의 경우 2차 출판 형식으로 큰 글자책판과 문고판을 제작하여 독자 저변을 넓히는 데 기여했으면 한다. 온·오프라인 서점에서는 큰글자책 판매 코너를 만들고, 프랑스 파리의 큰글자책 전문서점처럼 유통 채널을 만들어야 한다. 큰 글자책 베스트셀러 집계 발표 등 주목을 끄는 협업 마케팅도 필요하다. 
 
큰 글자책, 큰 글씨책, 큰 활자책, 대활자본 등 난립된 유사 용어를 큰 글자책으로 통일하고, 제작이나 큰 글자책임을 표시하는 마크의 표시 규격 등에 관한 표준화도 도모되어야 한다. 이밖에도 발행 통계를 확보하기 위한 대한출판문화협회 납본 대행 과정에서의 큰 글자책 분류 체크, 올해의 큰 글자책 선정, 도서관들의 보다 적극적인 예산 확보 노력과 서비스 강화, 큰 글자책 수요자 이용실태 조사 등 해야 할 일이 많다. 큰 글자책 시대가 열리고 있다. 출판 생태계를 다양화하고, 도서관 서비스를 확충하며, 저시력 독자의 독서권을 확보하는 데 기여하는 큰 글자책 독서문화를 함께 만들어 가야 하겠다.   
 
백원근 책과사회연구소 대표, 출판평론가(bookclub21@korea.com)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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