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에 인적쇄신 칼바람이 불고 있다. 홍보수석 교체를 시작으로 최근 정무 1·2 비서관을 동시 교체하는 경질성 인사조치를 단행했다. 시민사회수석실 A비서관은 '용산 대통령 집무실 앞 집회 및 시위 입체 분석' 언론 유출의 책임을 물어 면직 처리됐다. 같은 시민사회수석실의 B비서관은 민원인 접촉이 문제가 돼 스스로 사직했다. 2급 선임행정관 이하 모든 직원들에게 업무 분장표 작성을 지시하면서 행정관·행정요원 등의 대폭 물갈이도 예상된다.
이와 관련해 대통령실 한 관계자는 "엄중한 시기"라며 "보안에 만전을 기하라는 내부 지침이 있었기 때문에 입이 있어도 말을 할 수가 없는 처지"라고 기자들을 만나는 것조차 극도로 경계했다. 긴장감은 용산 대통령실 내부 곳곳에서 흐른다. 고위 관계자는 전날 브리핑에서 인적 개편 폭과 수위에 대해 "수석도 예외가 아니다"며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예외가 있을 수 없다"고 언급했다.
반면 이런 칼바람에도 대통령실 요직에 들어선 검찰 출신들은 건재함을 과시 중이다. 공직기강비서관실은 내부감찰로 사정정국 태풍을 더했다. 야권은 이를 두고 중국 후한 말기 황제를 주색에 빠지도록 만들고 국정을 제멋대로 농단한 환관 '십상시' 표현을 끌어다 "검찰 출신 육상시"로 규정했다. 검찰 내 윤석열 사단이었던 윤재순 총무비서관, 복두규 인사기획관, 이원모 인사비서관, 주진우 법률비서관, 이시원 공직기강비서관, 강의구 부속실장을 지칭했다.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는 30일 "그간 인사 대참사에 대한 직접 책임이 있는 법률비서관, 인사비서관, 내부감찰 책임이 있는 공직기강비서관 등 검찰 출신 '육상시'에 대한 경질과 문책은 언급조차 안 됐다"며 "(게다가)최근 대통령실 감찰과 인적쇄신을 검찰 출신 참모들이 주도한다는데, 적반하장이 따로 없다"고 비판했다. 또 "김건희 여사 나토(NATO) 방문 당시 부인이 사적 동행 의혹을 받는 이원모 인사비서관의 사퇴 보도에 대해서는 대통령실이 가짜뉴스라고 일축했다"면서 "꼬리 자르기도 아니고 꼬리털 뽑기식 인사교체로는 잘못된 국정 난맥상을 바로잡을 수 없다"고 했다.
야당의 일방적 주장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최근 대통령실을 둘러싼 흐름이 간단치 않다. 대통령실은 인사, 법무, 총무는 검찰 출신이, 정무와 홍보, 정책은 여의도와 관료 출신이 포진한 구조다. 최근의 인적쇄신은 홍보, 정무, 시민사회 라인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이에 여권에서는 윤핵관이 추천한 인사들을 타깃으로 설정, 윤핵관 견제에 들어갔다는 해석이 파다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도 "각자 소속이나 추천 경로에 따라 (이해관계가)달라진다면 대통령실에 근무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대통령이 아닌 윤핵관에 대한 충성을 단죄하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였다"고 복수의 관계자들은 설명했다. 실제 권성동, 장제원 등 윤핵관은 전화 한 통으로 대통령실이 돌아가는 사정 등을 한 눈에 파악해 온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 출신의 건재와 함께 김건희 여사와 관련된 인사들도 인사 태풍에서는 예외다. 김 여사가 운영했던 코바나컨텐츠 출신을 비롯해 김 여사가 채용을 타진한 것으로 전해진 인사들 모두가 이번 쇄신 바람에 비켜나 있다고 관계자들은 귀띔했다. 이를 두고 한 관계자는 "대통령의 친정은 당이 아닌 검찰로, 어려울 때 믿고 쓸 수 있는 사람들 또한 검찰 출신"이라고 해석했다. 때문에 인사 참사에 대한 책임을 묻기 보다 칼잡이 특유의 내부감찰 칼을 쥐어줬다는 평가가 많다. 김 여사와의 관계도 외부에서 보는 것 이상으로 신뢰하고 의지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렇듯 대통령실 인적쇄신 방향은 여러 여론조사를 통해 확인된 국민 여론과는 무관하게 흐르고 있다. 윤 대통령 국정 지지도가 취임 100일도 안 돼 20%대로 주저앉은 결정적 이유로 국민들은 거듭된 인사 실패와 김 여사 문제를 지목했다. 특히 지도체제조차 갈피를 잡지 못한 채 하루가 멀다 하고 의원총회를 소집하는 국민의힘 내홍의 결정적 원인은 윤 대통령이 제공했다. 지난 경기도지사 당내 경선 패배로 윤 대통령과 길을 달리 하기로 작정한 유승민 전 의원은 이와 관련해 "본인의 문자로 이 난리가 났는데 모르쇠로 일관하며 배후에서 당을 컨트롤하는 것은 정직하지도, 당당하지도 못한 처신"이라고 윤 대통령을 직격했다.
직접적 원인에 대한 처방 없이 이뤄지는 이번 인적쇄신은 대통령의 책임전가형으로 비칠 수 있다. 모든 시작은 윤 대통령의 책임 인정으로부터 시작돼야 할 것이다. 그것이 윤 대통령이 그토록 강조했던 도망가지 않는 '책임정치'다.
임유진 정치부 팀장 limyang83@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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