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 이래 최대 재건축이라는 둔촌 주공 아파트 공사가 공정률 52%에서 중단됐다. 서울시 강동구 둔촌동의 낡은 주공 아파트 5930가구를 헐고 새로 1만2032가구를 짓는 사업은 대형건설사 네 곳이 컨소시엄 형태로 참여하며 완공되면 국내 최대 규모의 아파트 단지가 된다.
둔촌 주공 재건축은 처음에 공사비를 2조6708억원으로 계약했는데 그 이후 가구수가 늘어나고 원자재 가격이 상승하면서 조합과 시공사업단은 공사비를 3조2294억원으로 5586억원 증액하기로 재계약했다. 하지만 공사비 증액에 대한 조합원들의 반발로 이 계약을 체결한 조합장이 해임되었고, 새로 선임된 집행부는 공사비 증액 계약을 무효로 돌렸다. 그런데, 새 집행부가 공사비 증액을 거부하는 바람에 공사가 중단되자 이에 반대하는 조합원들이 ‘정상화 위원회’를 조직해 또다시 조합 집행부에 대한 해임 절차에 착수했다.
결국, 둔촌동 재건축 공사 중단의 근본적인 원인은 조합 내부의 갈등과 집행부에 대한 불신에 있다. 이전 집행부가 계약한 것을 새 집행부가 뒤집고 또 이에 반대한 세력이 다시 새 집행부를 해임하려 하며 물고 물리는 진흙탕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둔촌 주공 사태가 예외는 아니다. 규모가 크건 작건 전국 어느 주택조합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내분이고 갈등이다. 낡은 주택을 허물고 신축 아파트를 지으면 큰 이익을 볼 수 있다는 꿈이 재건축 사업의 원동력이다. 평생 일해도 벌기 힘든 엄청난 돈을 집 한번 새로 지어 벌 수 있다니 누군들 재건축 사업을 외면하겠는가.
주택소유자가 조합원으로 구성한 조합은 조합장과 임원을 선출해 재건축 사업에 대한 권한을 위임한다. 그런데, 일반 조합원 중에서 뽑힌 조합장이 건축에 관한 경험과 지식을 갖출 리 만무하다. 능력에 비해 무거운 책임을 맡았지만, 재건축 관련 법령과 제도도 모르는 조합장은 정비전문업체에 의존할 수 없다. 이런 정비업체와의 유착이 비리의 씨앗이 되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 조합장은 시간이 지나며 둘 중의 하나가 되고 만다. 유혹에 넘어가 타락하거나 반대파의 집요한 공격에 해임되는 것이다.
재건축 사업이 진행되면서 조합장은 수많은 이권을 결정하게 된다. 철거비, 설계비, 건축비와 같은 비용을 산정하며 철거업자, 설계자, 시공업자를 선정해 계약을 체결하는 일을 조합장이 주도적으로 결정한다. 당연히 관련 업체들은 사업권을 따기 위해 조합장에게 로비하며 유혹을 뻗친다. 이런 유혹에 넘어간 조합장은 조합원보다 업체의 이익을 위해 일하게 되는 도덕적 해이에 빠진다.
규정에 조합의 주요 결정사항을 조합원들에게 공지하고 승인받게 돼 있지만, 대다수 조합원은 관심이 없고 알아도 관여할 장치가 없다. 조합장과 임원 몇 명만 뭉치면 달콤한 이득을 향유할 수 있는 구조이다. 이런 꿀단지를 차지하려고 경합이 치열하다.
거의 모든 조합에는 기존 집행부에 반대하는 비대위가 있어 서로 비방하고 고소와 고발이 난무한다. 정확한 정보에 접근하지 못하는 조합원들은 누구 말이 옳고 그른지 판단하기 어렵다. 서울시가 운영하는 ‘정비사업 정보몽땅’ 사이트에서 조합의 운영 현황이나 시정명령에 관한 자료를 공개하고 있지만 별 소용이 없다.
둔촌 주공 조합에 대해서 국토부와 서울시가 실태조사를 벌인 결과, 전·현직 조합이 사전 총회 의결 없이 조합원에게 부담이 될 계약을 체결해 ‘도시및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 45조를 위반했다고 밝혔다. 도정법 45조를 위반한 경우 2년 이하의 징역형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을 수 있다. 조합 임원이 도정법 위반으로 100만원 이상의 벌금형을 받으면 퇴임사유가 된다.
하지만, 집행부를 퇴임시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벌금형을 받아도 이에 불복해 소송을 제기하면 대법원에서 판결이 날 때까지 몇 년 동안 조합장 지위를 유지할 수 있다. 가장 빠른 방법은 조합원들이 해임하는 것인데 이도 어렵다. 조합장 및 임원 해임 안건을 발의하려면 전체 조합원 10분의1의 동의를 얻어 총회를 소집하고, 총회에 조합원 과반수가 참석해 이 중 절반 이상이 찬성해야 한다. 조합원이 수백명 이상이면 총회를 소집하고 개최하는 것에 많은 노력과 비용이 소요된다. 그래서 해임 총회를 열려면 반대파도 조직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재건축 사업의 이권을 놓고 다투는 업체들이 기존 집행부에 반대하는 조합원들을 후원해 해임 총회를 열도록 부추기는 경우도 있다.
이처럼 수많은 재건축 사업이 조합 내부의 무능과 비리로 썩어 문드러져 둔촌 주공처럼 곪아 터지기 일보 직전이다. 그런데도 민간주도 주택사업이라는 이유로 정부와 지자체는 손을 놓고 있다. 조합 내부의 부패와 갈등이 재건축 공사 비용을 상승시키고 사업을 지연시켜 아파트 가격을 올리는 가장 큰 주범인데도 이를 방치하고 있다. 둔촌 주공의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서울의 아파트 공급도 차질을 빚을 전망이다.
재건축 사업을 조합이 직접 이행하는 방식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조합을 대신해 전문성을 갖고 신속하며 효율적으로 민간 주택 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지배구조를 찾아 도입하는 정책이 절실히 필요하다.
임채운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고재인 자본시장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