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익도의 밴드유랑)“넬 세상 밖으로 꺼내준 서태지 형”
서태지 30주년 특별 기획 시리즈 #5
“음악적 객관화 배워”…부드럽게 ‘이런 방향도 있어’
‘기억을 걷는 시간’ 성공 뒤 서태지가 집으로 초대
괴수인디진에서 메이저 밴드로, 넬 단독 인터뷰
2022-03-25 00:00:00 2022-03-25 00:00:00
[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서태지 데뷔 30주년을 맞아, ‘권익도의 밴드유랑’은 그간 깊이 다뤄지지 않고 오히려 잘 다뤄지지 않아 간과돼 왔던 부분들을 탐구해보고자 한다. 서태지 음악이 한국 대중음악에 어떤 영향을 미쳤고, 미쳐왔는지, 그리고 그것이 오늘날까지 의미를 갖는 이유가 무엇인지 더 자세히 들여다보는 내용들이 될 것이다. 평소 서태지가 추구해온 음악적 정신이 ‘큰 울림’이라고 줄곧 생각해왔다. 지난 시간 그것을 가슴으로 느껴왔다면, 이제는 머리로써 다시 한 번 정리해보며 세상과 호흡해보고자 한다. >>  참고 기사, (권익도의 밴드유랑)“서태지 형은 슈퍼초울트라 음악인”
 
2002년 괴수인디진(서태지가 세운 인디 밴드 레이블)에 들어간 넬은 서태지 7집 ‘Issue’ 음반을 5집과 함께 가장 좋아한다고 했다. 사진은 올해 데뷔 30주년을 맞은 서태지 7집 활동 당시. 사진=서태지컴퍼니·서태지아카이브
 
“정말 갑자기랄까요. 어디라고 밝히지도 않고. 뭔가 극비 느낌으로….”  
 
2002년 여름, 월드컵 직전 분위기가 무르익던 때. 느닷없이 어디선가 데모 CD를 들어보고 싶다는 연락이 왔다. 
 
당시 미발표곡으로 쟁여둔 ‘고양이’, ‘미련에게’, ‘연어가 되지 못한 채’를 녹음해 보내자, 얼마 되지 않아 연락이 왔다. “만났으면 좋겠다”고.
 
영화 ‘맨인블랙’ 만큼 기묘한 ‘첩보작전’. 며칠 뒤 검은 정장 차림의 두 장정이 양재동 연습실로 찾아왔다. 근처 중국집으로 이동하니 본론을 꺼내들었다. “괴수인디진(서태지컴퍼니 밴드 레이블)이란 걸 한다.” “…같이 하고 싶어 하신다.” 
 
올해 데뷔 30주년을 맞은 서태지는 밴드 넬(김종완·이정훈·이재경·정재원)에게 여전히 ‘지대한 영향력을 끼친 뮤지션’이다. 지난 11일 서울 근교의 한 창고를 유럽식 미관으로 꾸며놓은 합주실 겸 녹음실에서 만난 넬 멤버들은 “계약(2002) 후 송파구 오금동 인근에 새 연습실 겸 녹음실을 만들어주셨고, 음악 인생의 첫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낼 수 있었다”며 “그 때의 기억이 이런 공간을 꾸미는 것부터 애티튜드까지 아직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돌아봤다.
 
밴드 넬 멤버들, 이정훈(베이스)·김종완(보컬)·정재원(드럼)·이재경(기타). 사진/스페이스보헤미안
 
서태지를 처음 만난 것은 2002년 10월 가을 무렵. 당시 일본에 머물다 ‘ETPFEST’ 연습 차 귀국한 서태지가 자신이 머물던 삼성동 인터컨티넨탈 호텔로 초청하면서다. ‘아이들’ 시절부터 좋아하고 우상처럼 여겼던 이가 방에서 나와 자신들 쪽으로 걸어오니 ‘와, 신기하다, 서태지’가 입가에 맴돌았다. 처음 10분간의 긴장이 차츰 사라지고 호텔식 스테이크와 스파게티를 함께 먹으며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특종 TV 연예보다 신호등 무대가 사실 더 먼저죠?’(기사 참조, 서태지와 아이들 유산 “K팝의 원형”) 물어봤더니 ‘어? 그거 모르는 사람 많은데, 어떻게 알았지!’ 하셨던 게 기억에 나요. 하하.”(김종완) “‘넬 앨범 정말 좋아요~’ 하시면서 음악적인 부분을 꼼꼼히 체크하셨던 게 기억나네요. 음악 하는 데 불편한 부분이 뭔지, 도움 줄 수 있는 게 뭘지.”(이재경) 
 
며칠 뒤 서태지로부터 ‘2002 ETPFEST’ 합동 무대를 하자는 제안이 왔다. ‘서태지와 아이들’ 3집 수록곡 ‘널 지우려 해’ 앞부분을 넬 스타일로 편곡해 줄 수 있냐며. “처음엔 노래를 아는지 물어보셨고.”(이재경) “그럼 편곡하자, 오케이, 끝.”(김종완) 서태지는 우상이자, 그들에겐 말 그대로 ‘환상 속의 그대’였지만, ‘뮤지션 대 뮤지션’으로서는 오랜 지음(知音) 마냥 물 흐르듯 수월했다. “의견을 주고받는 다든가, 설명이랄 것이 거의 없었어요. 태지 형도 우리를 어린 후배로 보는 게 아니었어요. 동등한 뮤지션으로 대우해주셨고, 지금 우리가 다른 후배들과 협업하면, 그 때의 형이 많이 생각나요.”(김종완) 
 
‘2002 ETPFEST’ 당시 서태지(왼쪽)와 넬의 합동 무대 모습. 사진=서태지컴퍼니 공식 유튜브
 
당시 3만여 관객 앞에 선 것은 넬로서는 첫 대규모 무대이기도 했다. “공연 당일엔 현실감이 없더라고요. 주경기장에 타미 리, X재팬 멤버 파타가 있고.”(정재원) “그렇게까지 큰 무대에 서본 건 그 때가 처음이었으니까. 태지 형과 종완이가 쌓아가는 화음이 굉장히 잘 맞기도 했고.”(이재경) 
 
‘ETPFEST’ 이후 서태지는 7집 준비로 다시 일본으로 갔고, 넬은 메이저 데뷔 첫 앨범 ‘Let It Rain’(2003년 6월 발매) 준비에 박차를 가했다. 당시 서태지컴퍼니 도움으로 뮤직비디오·무대·음향·조명 감독부터 스타일리스트까지 처음으로 음반 활동을 원팀으로 준비할 수 있었다. 서태지는 직원들에게도 ‘아티스트를 존중하는 문화를 꼭 지켜달라’ 당부했다고. “돌아보면 태지 형이 갖고 있던 생각이 멋있었고 우리도 마음가짐 자체가 많이 달라졌던 것 같아요. 그리고 하나의 앨범이 세상 밖으로 나오기까지 굉장히 체계적인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그 때 처음 알았어요.”(김종완, 이정훈) 
 
서태지는 음반 수록곡 전반을 들으며 메일로 피드백을 건넸다. 일본에서 보편화됐던 프로툴즈(믹싱 소프트웨어)도 선도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나고 아직도 제일 많이 생각나는 건 타이틀 곡 ‘스테이(Stay)’에 관한 거였는데….”(김종완) 서태지로부터 도착한 새 믹싱 파일을 열어보니 ‘착착착착’ 거리는 스네어 소리가 본래 녹음 버전보다 훨씬 얇게 들려 고개가 갸우뚱할 정도였다. 뒤늦게 본 메시지엔 ‘이 곡이 조금 더 팝적으로 어필할 수 있을 것 같으니, 이런 스네어 소리가 더 나을 것 같다’고 적혀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올바른 방향 제시였던 셈이죠. 그때 우리가 알고 있던 스네어 소리란 록 스타일의 ‘빡빡’ 때리는 거였으니까. 기타 패닝의 경우도 조금 더 모으면 듣는 사람에게 다이렉트한 느낌을 줄 수 있다고도 말씀해주셨고.”(김종완) 
 
밴드 넬 멤버들, 이정훈(베이스)·김종완(보컬)·정재원(드럼)·이재경(기타). 사진/스페이스보헤미안
 
그렇게 ‘스테이’가 터졌다. 방송 출연 없이도 라디오 온에어 차트 1위에 오르고, TV 곳곳에 뮤직비디오가 흘러 나왔다. 언론사 인터뷰도 수백 군데나 돌았다. 
 
멤버들은 “지나고 보니 부드러운 방식으로 ‘이런 방향도 있어’ 라고 설득했던 것인데, 그게 결국 우릴 올바른 방향으로 이끈 것 같다”며 “우리 음악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이십대 초반에 깨달았고, 지금도 굉장히 큰 자양분으로 남아있다”고 했다.
 
이후 2집 ‘Walk Through me’까지, 서태지컴퍼니의 체계적 시스템 안에서, “10개월 밤새는 것이 기본인 게 음반 작업”이 됐다. 올림픽이나 월드컵 출전을 위해 근육을 키우는 운동선수들처럼. “태지 형도 활동기 땐 정말 초집중이거든요. 모든 직원들도 잠을 거의 못자고. 그걸 우리도 어렸을 때부터 보고 자란 셈이니까. 저런 거 당연한 거야가 돼 버린…, 돌아봐도 음악 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정말 좋은 영향이었어요.”(김종완) 
 
이후 히트곡 ‘기억의 걷는 시간’(4집 ‘Separation Anxiety’ 수록곡)이 세상 곳곳을 도배했을 때, 서태지는 넬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기도 했다. “그날 김종서 선배님도 있었고, 태지 형은 ‘방송에서 1등한 것을 보고 너무나도 기뻤다’고 해주셨어요. 그리고 다시 음향에 관한 얘기를 했죠. 진정한 뮤지션이세요.”(이재경)
 
밴드 넬 멤버들, 이정훈(베이스)·정재원(드럼)·김종완(보컬)·이재경(기타). 사진/스페이스보헤미안
 
돌아보면 어린 시절부터 ‘서태지 키드’였다. 김종완은 ‘신호등 무대’를 본 날 “김완선, 소방차 같은 기존 한국 댄스음악과는 다른 신선함을 느껴” 앨범 나오는 날까지 4~5일간 음반 매장을 오갔다. 기타를 처음 배울 때 외국 앨범 사이로 국내 앨범 중 유일하게 ‘교실이데아’나 ‘필승’ 같은 곡을 껴서 카피하기도 했다. 
 
“음악 하는 사람 입장에서 보면, 장르 하나도, 아니 악기 하나도 세상에 소개하고 들려질 수 있게 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잘 알거든요. 태지 형은 그런 현상이 일어나게끔 한 사람이니까. 그게 태지 형의 영향력인 것 같아요. 방송국 시스템에도 굽히지 않았고.”(김종완) 
 
멤버들은 ‘아이들’ 시절 이후 가장 좋아하는 음반으로 5집과 7집 ‘Issue’를 꼽았다. 특히 대표 수록곡 ‘라이브와이어(Live Wire)’는 지금 들어도 서태지 트레이드 마크인 화음 쌓기부터 드럼 사운드 배치, 다이나믹한 편곡 계산법에 혀를 내두를 정도다. “시각적으로 이미지가 풍부한, 몽환적인 소설을 읽는 것 같은 가사도…. 여러 의미로 수작이죠. 요즘도 가끔 루즈해지면 다시 태지 형 음반 들어요. 호날두 다큐멘터리 보는 것처럼.”(김종완) “하하하.(멤버들)”
 
김종완은 “태지 형 음악을 들으면 존경스럽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본인이 갖고 있는 표현 강박적인 완벽주의가 항상 느껴진다. 편안하게 들리는데도 모든 게 톱니바퀴처럼 오밀조밀 치밀하게 계산돼 들어간…”이라며 “그런 점들을 적절히 잘 활용하면 우리 음악이 꼭 그런 스타일이 아니어도 다르게 나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고 했다.
 
“태지 형이 넬에게 미친 영향은 지대하죠. 우리를 세상 밖으로 끄집어내 주신 분이니까. 태지 형이 없었다면 지금의 우리가 없었을 거란 생각은 지금도 해요. 우리가 믿고 따를 수 있는 위치에서, 도움을 주셨던 것들이 지금도 큰 자산이니까. 기타를 치건 노래를 하건 지금까지 무의식적으로 영향 받는 것들이 많은 것 같아요.”(김종완)
 
서태지 30주년에 대해 넬 멤버들은 “90년대와 2000년대 태지 형이 없었다면 지금의 한국 대중음악 판도는 전혀 달라지지 않았을까 생각한다”며 “오랜 기간 자신의 음악으로 소통하고 환영 받는 것이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그건 모든 뮤지션들의 꿈일 것”이라 했다. 
 
“중요한 것은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에도 ‘다음 음반이 뭘까’ 하는 기대감을 자아내게 하는 거의 유일한 뮤지션이라는 것. 다른 거 다 차치하고라도 그게 가장 의미 있는 것이 아닐까요.”(김종완)
 
서태지와 아이들 2집 발표 후 개최한 ‘93 마지막 축제’ 공연 실황을 담은 라이브 앨범 커버. (사진=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에필로그>
넬과 얘기한 ‘서태지와 아이들’,  학창시절, 그리고 좋아했던 음반.
 
정훈: ‘하여가’ 처음 나왔을 때, ‘(속사포 랩으로) 너에게 모든 걸 뺏겨버렸던’ 그거 생각나? 나 다음날 학교 가서 ‘야, 이거 왜 이렇게 빨라. 무슨 말인지 알아듣겠어?’ 했잖아. 
멤버들: 하하하.
익도: 아, 형들은 그때 학교를 매일 갔겠군요. 저는 그때 너무 어렸어서...
종완: 그땐 매일 학교에서 봤으니까, 우리끼리도 완전 얘기했지.
정훈: 그것도 생각나네. 2집 때부터 앨범 나오기 전 음악 방송에서 태지 형 광고 나오는데, D-Day 한 주마다 바뀌던 거.
재경: 한번은 그런 적도 있었어. 남녀공학이었는데 어떤 여자애가 대표로 담을 넘어가서 ‘내가 2집 다 사왔어!’ 하는데, 저 정도로 사람들을 좋아하게 만들 수 있구나, 충격이었지.
재원: 뒤에서 맨날 춤추고. 듀스냐 서태지와아이들이냐, 논쟁하고. 
익도: 너무 어렸어서 장면 장면만 기억나는데, ‘교실이데아’ 때 ‘피가 모잘라’ 소동 아직도 기억나요...
종완: 난 그때 크래쉬란 팀도 안흥찬씨도 처음 알았어. 태지 형 덕분에 나중엔 크래쉬 앨범도 샀어. 결국 그렇게 문화적으로 다양해지는 거라니까.
(…)
익도: 그래서 ‘아이들’ 시절 베스트 음반은 뭘까요?
종완: 음 난 3집? 아, 3집, 4집 고민되네. 가만 ‘발해를 꿈꾸며’, ‘널 지우려 해’, ‘내 맘이야’…. 아, 참 ‘영원’이 있지. 나는 3집.
정훈: 4집. ‘슬픈 아픔’, ‘컴백홈’, ‘필승’!
재경: 4집. 힙합도 있고 록도 있고 다 아우르는 앨범. 
재원: 4집. ‘프리스타일’ 스노우보드도, ‘필승’ 게릴라콘서트도 멋지니까. 태지 형~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베이스 이정훈(왼쪽부터), 보컬 김종완, 드럼 정재원, 기타 이재경. 사진=스페이스보헤미안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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