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백주아 기자] 차세대 전지로 주목받는 '전고체 배터리' 개발 경쟁이 본격화 하고 있다. 선도 업체들은 이르면 3년 내 전고체 전지를 상용화하겠다는 목표로 앞 다투어 연구개발(R&D) 성과를 내놓고 있다. 전기차 배터리의 주류인 리튬이온 배터리 대비 높은 안전성과 주행거리를 확보할 수 있다는 기대감에 국내 배터리 3사와 완성차 업체도 관련 투자를 강화하는 추세다. 이차전지 전문가들은 아직 개발도 되지 않은 전고체 배터리 상용화에 대한 과도한 낙관은 경계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성능과 안전성 측면에서 리튬이온 배터리를 능가할 것이란 기대도 과도하다는 지적이다.
31일 업계에 따르면 미국 배터리 업체 퀀텀스케이프(QS)는 지난 28일(현지시간) 리튬메탈 전고체 배터리 테스트 결과를 발표했다.
리튬이온 배터리(좌)와 퀀텀스케이프의 전고체 배터리(우)의 구조. 자료/퀀텀스케이프 홈페이지 캡쳐
일반적으로 전고체 배터리는 리튬이온 배터리에 적용되는 액체 전해질을 고체 전해질로 대체해 화재 위험성이 낮은 배터리로 알려져 있다. 안전을 위해 추가한 분리막 등의 부품이 필요하지 않아 배터리 팩 무게와 부피를 줄여 에너지밀도도 높일 수 있는 데다가 충전 속도도 빨라 '꿈의 전지'로 불린다.
QS에 따르면 테스트 배터리는 25도 상온에서 충·방전을 800번 반복한 후에도 80% 이상의 배터리 성능을 구현했다. 리튬이온 배터리 충·방전 사이클이 통상 300~500번임을 감안하면 수명이 훨씬 긴 셈이다. 에너지밀도도 니켈·코발트·알루미늄(NCA) 등 삼원계 리튬이온 배터리 대비 약 50~100% 높다는 설명이다. 퀀텀스케이프는 2024년 양산을 목표로 연구 개발에 진력하고 있다. 세계 최대 완성차 업체 폭스바겐도 퀀텀스케이프에 3억 달러(한화 약 3500억원)를 투자했다.
치차오 후 솔리드에너지시스템(SES) 최고경영자(CEO)가 자사의 리튬메탈 배터리를 들어보이고 있다. 사진/솔리드에너지시스템
SK(034730)와
현대차(005380) 등이 투자한 미국 솔리드에너지시스템(SES)도 내달 3일(현지시간) 하이브리드 리튬메탈 배터리를 공개할 계획이다. SES의 배터리는 에너지밀도가 리터(L)당 935와트시(Wh)로, 1회 충전에 935㎞ 주행이 가능해 리튬이온 배터리 보다 주행거리가 30% 높은 데다가 충전도 12분만에 90%까지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앞서 치차오 후 SES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7월 "2025년이면 약 800km를 달리는 리튬메탈계 전고체 배터리를 실제 전기차에 장착할 수 있을 것"이라며 "기술과 성능 측면에서 경쟁사 대비 2년 정도 앞서 있다"고 밝힌 바 있다.
SK이노베이션(096770)은 미국 솔리드파워(SP)와 기존 리튬이온 배터리의 니켈·코발트·망간(NCM) 양극재와 실리콘 음극재를 적용한 전고체 배터리 개발에 나선다. 이를 통해 에너지밀도 930Wh/L 이상을 구현할 계획이다. 솔리드파워는 미국 콜로라도주 루이빌에 위치한 본사에서 시험 생산라인을 갖추고 전고체 배터리 시제품과 고체 전해질을 생산 중이다. 양사는 기존 리튬 이온 배터리 제조 설비에서 생산 가능한 전고체 배터리를 개발해 양산 시기를 앞당길 계획이다.
삼성SDI(006400)는 오는 2027년 상용화를 목표로 전고체 배터리를 개발 중이다. 해당 배터리는 1회 충전 시 주행 거리가 900km 이상에 이를 전망이다. LG에너지솔루션(분사 전
LG화학(051910))은 2030년 양산을 목표로 관련 기술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최근 상온에서 급속 충전이 가능한 장수명 배터리 기술을 개발했다.
전고체 전지 개발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지만 이차전지 전문가들은 해당 업체들이 내놓을 전지가 리튬이온 배터리를 능가할 것이라는 기대감은 과도하다고 지적한다. 특히 지난 전지 개발 역사를 돌이켜 봤을 때 선도 업체들이 공개한 전고체 배터리 관련 기술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라는 지적이다.
박철완 서정대학교 자동차학과 교수는 "공개된 전고체 전지는 과거 리튬이온 이차전지 시작 때 경쟁했던 리튬금속폴리머 이차전지 개념과 초소형 전고체 박막 전지 개념에 근간한 것"이라며 "QS, SES, SP 등 3사가 연구하는 ‘애노드 프리’ 타입은 지난 1999년경 미국 ORNL에서 초소형 박막전지용으로 개발한 개념을 적용할 방법을 찾지 못하다가 파우치 셀에 쓰인 스태킹 코어셀 구조 등장으로 이미 30년 전에 리튬이온 이차전지에 패퇴했던 기술을 재등장시킨 것"이라고 설명했다. 에너지밀도 측면에서도 현재 주류인 리튬이온 이차전지를 압도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안전성 측면에서도 안심하기에는 이르다는 설명이다. 익명을 요구한 이차전지 전문가는 "일반적으로 전해질이 고체라 액체 전해질보다 안전하다는 편견이 있지만 음극 물질에 리튬금속이 사용될 때 만약 외부 노출이 발생할 경우 폭발 우려가 높다"면서 "실제 차량에 장착했을 때 테스트 중에 예상치 못한 안전성 문제가 반드시 나타날 것"이라고 지적했다.
업계에서는 차세대 전지 개발과는 별개로 향후 10~20년간 전기차 배터리 시장은 리튬이온 전지가 지배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특히 가격 경쟁력 측면에서 전고체 배터리가 리튬이온 배터리를 압도할 수는 없다는 설명이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자동차 업체들이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선호하는 이유는 가격 경쟁력 높기 때문"이라면서 "업체들이 배터리 원가 절감을 위해 고심 중인 만큼 전고체 배터리 양산이 본격화하는 시기가 되면 리튬이온 배터리의 가격은 훨씬 떨어져 있을 것이고 성능도 훨씬 더 개선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전고체 배터리가 경쟁력을 확보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백주아 기자 clockwork@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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