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배한님 기자] 인터넷TV(IPTV) 업계가 콘텐츠 '선계약 후공급'에 관해 다소 전향적인 입장을 밝혔다. 선공급 후계약 관행이 장기적으로 이어졌던 만큼 업계 특성을 고려해 단계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었지만, 유료방송 플랫폼 업계에서 처음으로 '선계약 후공급'에 긍정적인 의견을 낸 것이다. 오랜 기간 팽팽했던 유료방송 플랫폼 사업자와 콘텐츠 사업자 사이의 입장 차이가 좁혀지기 시작한 것으로 풀이된다.
유료방송시장 콘텐츠 거래 합리화 방안 정책 세미나. 사진/홍익표tv 유튜브 생중계 갈무리
김혁 SK브로드밴드 미디어플랫폼본부장은 8일 더불어민주당 홍익표 의원이 주최한 '유료방송시장 콘텐츠 거래 합리화 방안' 정책 세미나에서 "(유료방송 콘텐츠) 선계약 후공급은 해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유료방송 시장 상생을 위해 선계약 후공급 제도를 정착시켜야 한다는 김용희 오픈루트 전문위원의 제안에 답한 것이다.
김 전문위원은 이날 세미나 발표에서 유료방송 콘텐츠 거래시장 제도 개선 방안으로 '선공급 후계약 관행'이 개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콘텐츠 사업자(PP)는 지난 2013년 종합편성방송(종편) 출범 이후 유료방송 플랫폼 사업자(SO)에 콘텐츠를 먼저 공급하고 하반기에 프로그램 사용료 계약을 맺어왔다. 종편이 제작한 프로그램 없이 채널 계약을 맺게 되면서 시작된 관행이다.
콘텐츠 사업자들은 이런 관행이 제작비 회수 가능성을 예측하기 어렵게 하는 불공정 구조라고 주장해왔다. 더불어민주당 정필모 의원과 국민의힘 정희용 의원 등이 관련 법안도 발의한 상태다. 하지만 협상력이 낮은 중소 PP나 신규 채널의 시장 진입 기회를 막아 이들의 생존을 위협한다는 지적에 해결되지 못했다.
김 전문의원은 '선계약 후공급'을 원칙으로 하되, 제도 연착륙을 위한 방안도 마련했다. 그는 "차년도 1분기 내로 계약하면 선계약 후공급으로 인정하는 대안을 검토해야 한다"며 "아울러 각자의 계약서에 콘텐츠 대가와 관련된 모든 기준이 표시가 되고 계약서에 기반해 분쟁을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본부장이 '선공급 후계약'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목소리를 낼 수 있었던 것도 제도 변화를 보완할 방안이 등장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김 본부장은 다만 객관적인 평가지표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디테일하게 살펴보고 합의했으면 좋겠다"는 김 본부장의 발언이 이를 보여준다.
김 본부장은 "선계약을 바로 도입하면 2년 치 계약을 한꺼번에 해야한다"며 "그 계약에 있어서 기준이 되는 것은 플랫폼의 분기별 평가 등이 고려돼야 해 전년도 4분기부터 올해 3분기까지 성적을 기반으로 하고 그 위에 정부와 학계 등이 제안하는 평가를 동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문제로 IPTV 업계와 장기간 갈등을 이어온 CJ ENM은 고무적이라는 반응이다. 서장원 CJ ENM 전략지원실장은 "예전에 말씀하시던 것과 입장이 조금씩 바뀌는 것 같은 게 연초만 해도 IPTV나 이쪽에서 (선계약 후공급을) 많이 반대하셨다"고 언급했다. 서 실장은 "불공정을 우려해서 선계약 후공급을 안한다가 아니라 불공정한 부분이 있으면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나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정통부)가 분쟁에 개입하고 조정하는 심판자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콘텐츠 사업자인 CJ ENM도 선계약 후공급에 있어 객관적인 평가지표를 만들어야 한다는 사실에 동의했다. 서 실장은 "평가 기준이 정성적인 비중이 너무 높으면 안 되고 투자·시청률 등 고객을 끌어들일 혁신 요소에 더 많은 비중이 배분돼야 한다"고 했다.
케이블TV 사업자인 LG헬로비전은 기존 입장을 고수하는 모습이었다. 임준현 LG헬로비전 컨슈머사업담당은 "상거래적으로 보면 선계약 후공급은 상식이고 기본이긴 하지만, 중소 PP들은 본인들의 생존 문제가 걸려 있어 거의 동의를 안 한다"며 "우리 시장이 그동안 흘러온, 나쁘게 말하면 관행인 이 특성이 고려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선계약 후공급에 대한 의견이다"고 말했다.
정부는 이같은 내용이 담긴 '콘텐츠 대가 산정 가이드라인'을 곧 공개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2월부터 방통위와 과기정통부가 관계자들과 운영한 '대가산정협의회'의 결과물이 나오는 것이다. 배중섭 방통위 방송기반국장은 "조만간 협의회에서 논의한 실무적인 초안이 나올 것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오용수 과기정통부 방송진흥정책관(국장)도 가이드라인에 대해 "전체 대가산정 부분은 PP평가 기준과 채널 계약 가이드라인 기준 2단계로 나뉠 것 같다"고 밝혔다. 선계약 후공급 방안에 대해 오 국장은 "중소 PP를 어떻게 보느냐가 상당히 어렵다"며 "지상파든 종편이든 대형 PP와 니치 콘텐츠를 제공하는 중견·중소 PP 등이 어떻게 갈 건가 하는 룰은 사업자 스스로가 먼저 만들고 제안하는 것이 결론적으로 가장 바람직하다고 본다"고 했다.
배한님 기자 bh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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