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권새나 기자] 북한이 평안북도 영변 플루토늄 원자로를 재가동한 것으로 보인다는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분석이 나왔다. 북한이 핵시설 재가동을 카드로 미국과 대화 재개 과정에서 협상력을 높이려는 의도라는 분석에 무게가 실린다.
29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IAEA는 최근 발간한 북핵 관련 9월 연례 이사회 보고서에서 "북한 영변에서 지난 7월 초부터 냉각수 방출을 포함해 원자로 가동과 일치하는 정황들이 있었다"고 밝혔다.
IAEA는 "원자로 재가동 징후는 북한이 폐연료봉을 재처리해 플루토늄을 분리하기 위해 인근 실험실을 사용한 징후와 일치한다"고 설명했다. 이는 2018년 말 이후 처음 포착된 재가동 징후다. IAEA 보고서에 따르면 영변 핵시설은 2018년 12월 이후부터 올해 7월 초까지 원자로 가동 징후는 없었다. IAEA는 북한이 원자로 재가동에 앞서 지난 2월 중순부터 5개월간 방사화학연구소를 가동한 것으로 파악했다.
상업위성 디지털글로브가 2019년 3월12일에 포착한 영변 핵시설 일대의 모습. 사진/뉴시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북한의 핵시설 가동이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의 외교 정책에 새로운 도전 과제를 추가했다고 지적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북한에 '조건 없는 대화'를 제안해 왔지만, 별다른 유인책을 제공하진 않았다.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부장은 지난 6월22일자 담화에서 미국을 겨냥해 "스스로 잘못 가진 기대는 자신들을 더 큰 실망에 빠뜨리게 될 것"이라고 했다. 리선권 외무상은 다음날 "우리는 아까운 시간을 잃는 무의미한 미국과의 그 어떤 접촉과 가능성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바이든 정부 입장에서는 외교 문제에서 북핵 문제는 아프가니스탄 문제보다 우선순위에서 밀려난 모양새다. 그러나 영변 핵시설 재가동 징후가 포착되면서 바이든 정부가 북핵 문제를 후순위로 미뤄둘 수 없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2019년 2월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 당시 일부 대북제재 해제를 조건으로 영변 핵시설 영구 폐기를 제시했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이 '플러스 알파'(+α)를요구하며 합의가 결렬된 바 있다.
북한은 지속적으로 핵무기 개발을 천명하며 존재감을 키우려 하고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 1월 소형 핵무기와 핵추진 잠수함 개발을 포함한 핵 기술 현대화 계획을 내놓은 바 있다
이런 상황에서 영변 원자로 재가동 징후가 답보 상태인 북미 대화를 재개하는 과정에서 협상카드를 키우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김용현 동국대학교 북한학과 교수는 "(핵 시설 재가동이 사실이라면) 미국의 외교 정책이 아프간 사태로 쏠려 있는 가운데 북한이 시위하는 것"이라며 "북미 대화를 시작하자는 북한의 요구를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양무진 북한대학교대학원 교수는 "북미 대화를 하노이 정상회담 결렬 이전의 상태에서 다시 시작하자는 뜻으로 해석된다"며 "영변 핵시설 폐기를 내걸고 대북제재 해제를 이끌어 내는 구도에서 미국이 충분한 준비를 해 나오라는 메시지"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미국이 하노이 회담 보다 진척된 변화가 없다면, 결국 핵시설 재가동을 통해 핵고도화로 갈 수밖에 없다는 명분확보용 의도"라고 말했다.
김정은 북한 조선노동당 총비서 겸 국무위원장. 사진/뉴시스
권새나 기자 inn1374@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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