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부터 나온 폭스바겐 '각형' 선택 신호…K-배터리 3사는 몰랐다?
폭스바겐, 1월 투자자 설명회서 '단일 셀' 공급 계획 밝혀
배터리 3사 "각형 배터리셀 적용 내용 사전에 파악 못했다"
전문가들 "배터리-완성차 업체간 파트너십 강화해야"
2021-03-31 06:31:18 2021-03-31 06:31:18
[뉴스토마토 백주아 기자] 폭스바겐이 '파워데이' 행사 약 두 달 전부터  자사의 전기차 배터리 내재화 계획을 외부에 밝혀온 것으로 나타났다. 주력 차종 80%에 규격화된 단일 단전지(unified cell)를 적용하는 것은 물론 배터리 재활용을 통한 원재료 사용 계획까지 파워데이에서 내놓은 굵직한 방향성은 이미 공개했던 것이다. 하지만 국내 배터리3사(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006400), SK이노베이션(096770))는 파워데이 당일까지 주요 고객사의 핵심 전략 변화를 사전에 인지하지 못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전문가들은 완성차 업체가 자체 배터리 생산 계획을 밝히며 배터리 기업의 미래를 위협하는 상황에 고객사와의 파트너십 강화와 함께 세심한 경영 전략 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지난 1월28일(현지시간) '폭스바겐 그룹 혁신전략'을 주제로한 투자자 대상 기업설명회(IR) 자료. 자료/폭스바겐 홈페이지
 
30일 폭스바겐 홈페이지에 따르면 폭스바겐 본사는 파워데이 행사가 열린 지난 15일(현지시간)보다 약 두 달 앞선 지난 1월28일 폭스바겐 공장이 위치한 볼프스부르크에서 '폭스바겐 그룹 혁신전략'을 주제로 투자자 대상 기업설명회(IR)를 실시했다. 
 
지난 1월28일(현지시간) '폭스바겐 그룹 혁신전략'을 주제로한 투자자 대상 기업설명회(IR) 자료(왼쪽)와 지난 15일(현지시간) 폭스바겐 파워데이 행사 발표 자료(오른쪽). 자료/폭스바겐 홈페이지
 
당시 프리젠테이션(PT) 발표 내용의 핵심은 '전기차 배터리셀 기술 로드맵'과 관련해 폭스바겐이 향후 생산할 전기차 80%에 단일 셀을 적용하겠다(Battery cell design fixed)는 것이다. 파워데이 발표에서 독자적인 셀 생산 시점을 2023년으로 밝힌 것과 같이 세부 일정은 언급되지 않았지만 큰 틀의 구상은 같다. 단일 셀을 기본으로 배터리 원가절감을 꾀하고 내재화 비중을 확대한다는 것이다. 발표자는 토마스 슈몰 폭스바겐 기술담당 이사로, 그는 파워데이 행사에서 헤르베르트 디스 폭스바겐 CEO 개회사 이후 첫 번째 발표자로 나선 인물이기도 하다. 
 
폭스바겐 코리아 관계자는 "연례 행사든 분기별로든 통상적으로 진행한 IR 미팅으로 최근 글로벌 행사 대부분은 온라인으로 진행하고 있다"면서 "다만 당시 어떤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설명회를 진행했는지 등 발표 관련 세부 내용 등은 확인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지난 1월28일(현지시간) '폭스바겐 그룹 혁신전략'을 주제로한 투자자 대상 기업설명회(IR) 자료(왼쪽)와 지난 15일(현지시간) 폭스바겐 파워데이 행사 발표 자료(오른쪽). 자료/폭스바겐 홈페이지
 
설명회에서 '각형' 단일 단전지로의 전환에 대한 구체적 언급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PT 자료에는 배터리 셀 수급 방안으로 '다양성 최소화를 통한 효율성 집중(Significantly reducing variances supports efficiency)' 전략을 추진하겠다는 내용과 함께 기존 파우치형과 각형을 섞어 쓰는 대신 각형 배터리로의 전환을 암시하는 이미지가 함께 첨부됐다. 이미지는 폭스바겐이 파워데이 당일 공개한 슬라이드와 비교했을 때 거의 유사하다. 이 외에도 설명회에서는 배터리 원재료 재사용과 같이 배터리 생산-유통-폐기-재활용 전주기에 해당하는 이모빌리티 지속가능성을 위한 전략도 언급됐다. 사실상 파워데이 행사는 투자자 설명회의 확장판이었던 셈이다. 
 
문제는 고객사의 중대한 전략 변화에 대해 배터리 3사 모두 발표 직전까지 세부 내용을 파악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폭스바겐 공식 홈페이지의 투자자 설명회 자료와 관련해 배터리 3사는 사전에 확인하지 못했다는 입장을 밝혔다. 지난 15일 파워데이 당일 언론 보도로 폭스바겐의 각형 배터리 개발·생산 계획이 일부 공개됐지만 3사는 공통적으로 '전혀 확인된 바 없다'는 입장을 밝혔었다. 폭스바겐이 3사에 각형 배터리 전환 계획을 통보했다는 것과 관련해서도 3사 모두 확인할 수 없다거나 전혀 통보받은 바 없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업계 관계자는 "폭스바겐의 세부 전략 변화 인지 여부에 대해서는 회사마다 부서별로 차이가 있을 수 있다"면서 "계획대로 기존 고객사와의 파트너십이 유지되고 있다고 판단했다면 IR 설명회와 같이 제한된 청중을 대상으로 비정기적으로 실시하는 행사와 세부 내용을 일일히 확인이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1월28일(현지시간) '폭스바겐 그룹 혁신전략'을 주제로한 투자자 대상 기업설명회(IR) 자료(왼쪽)와 지난 15일(현지시간) 폭스바겐 파워데이 행사 발표 자료(오른쪽). 자료/폭스바겐 홈페이지
 
전문가들은 폭스바겐 파워데이 여파를 계기로 배터리 업체들이 완성차 업체와의 전략적 파트너십을 한층 더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급성장 중인 전기차 시장의 흐름 속에서 고객사의 전략 변화 등에 대해 기민하게 대응해 장기적인 협력 관계를 이어갈 수 있도록 해야한다는 것이다.  
 
박철완 서정대학교 자동차학과 교수는 “세계 배터리 시장을 선점 중인 3사가 이미 2개월 전에 일반인에게도 공개된 고객사 장기 로드맵을 파워데이 때에야 심각하게 인지했다는 점은 배터리사의 경영 전략 수립 실패와 위기대응 부재라고 볼 수 있다"면서 "파워데이를 전후해 조직 개편이나 인적 쇄신 등 장기적인 경영 전략 로드맵 재정비가 절실하다. 안 그러면 경쟁자에게 먹힌다”고 지적했다. 
 
최웅철 국민대학교 자동차학과 교수는 "배터리 업체가 수십조원에 이르는 투자를 통해 생산 라인을 마련한 상황에 주요 고객사를 잃는다는 것은 중대한 손해"라며 "중국 CATL이 테슬라와 협력적 관계를 이어나가는 것처럼 배터리 기업은 완성차 업체가 보다 쉽고 빠른 팩 설계 기술 지원을 뒷받침하는 것은 물론 나아가 배터리 셀 기술 개발 로드맵 공유를 통한 미래 배터리팩 생산, 배터리 관리 기술 지원 협력 등을 통해 고객사와 서로 윈윈할 수 있는 전략을 꾸려나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백주아 기자 clockwork@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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