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백주아 기자] 전기차 배터리업체 LG에너지솔루션(
LG화학(051910) 전지사업부문)과
SK이노베이션(096770)의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 영업비밀 침해소송 최종 판결이 1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최종 판결 전 극적 합의안이 도출되는 것이 최상의 시나리오지만 합의금 규모를 놓고 양사의 입장 차가 좁혀지지 않은 만큼 소송이 장기화될 우려도 높아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분쟁이 지속될 경우 국익 측면에서 상당한 손해가 예상되는 만큼 양사가 대화를 통해 적절한 합의 시점·방안에 관한 의견 조율에 나서야 한다고 조언했다. 특히 기업 간 민사소송에 정부가 개입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고 제3의 전문가 집단 등이 조정·중재위를 꾸려 합의금 규모 등을 산정하는 식의 대안도 제시했다.
3일 업계에 따르면 LG와 SK의 영업비밀침해 소송 관련 미국 ITC 최종 판결이 오는 10일(현지시간) 나올 예정이다. ITC의 최종 결정이 나오게 되면 LG측이 지난해 4월 미국 델라웨어주 연방지방법원에 제기한 영업비밀 침해 소송 재판이 진행된다.
ITC 조기패소 판결이 최종 인용될 경우 'LG에 유리'
6인의 전문가들은 양사간 배터리 소송전에서 LG측이 현재 우위를 점하고 있다는 점에 대해 이견이 없었다. 앞서 ITC는 LG가 제기한 영업비밀침해 소송에 대해 SK의 증거인멸 등 불법행위가 있다고 보고 지난해 2월 SK의 조기패소 판결(예비결정)을 내렸다. 이후 같은 해 4월 SK의 이의 제기에 따라 재검토가 결정됐지만, 예비판결 결정 이후 1년이 지난 지금까지 최종판결이 나지 않은 상태다. 당초 지난해 10월5일로 예정됐던 최종 판결은 두 차례 연기를 거쳐 오는 10일로 늦춰지면서 소송이 장기전에 돌입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미국의 영업비밀 보호 관련 최근의 정부 입장이 엄격하게 유지되고 있고 전기차 배터리 문제는 차세대 핵심산업 이익이 관련된 만큼 SK가 기대하는 ITC위원회 재검토 지시 등은 기대하기 어렵다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가능성 'SK에 희망'
다만 조 바이든 행정부의 친환경 정책 및 산업 육성책에 따라 ITC의 전면 재검토 지시 또는 최종 결과가 뒤집힐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현재 SK가 약 3조원을 투자해 미국 현지에서 조지아 1·2 공장 운영하며 약 2600개 일자리를 창출하는 등 지역 경제에 미치는 파급 효과 등을 감안해 바이든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ITC 조기패소 결정이 최종 인용될 경우 SK의 배터리 부품에 대한 미국 내 수입이 금지돼 현지 공장 가동에 심각한 제한을 받을 수 있는 만큼 양사가 최종 판결 전 극적 합의안을 도출하거나, 최종 결정 이후 합리적 수준에서 합의금 규모를 결정하는 식의 결론이 날 가능성도 있다.
미국 현지에서는 양사의 분쟁과 관련해 정치권 및 각 지역별 이해관계자에 따라 의견 나뉜다. 지난해 12월 척 플라이쉬먼 테네시주 공화당 하원의원, 버디 카터 조지아주 공화당 하원의원, 샌포드 비숍 조지아주 민주당 하원의원 등 3인은 “양사 모두 미국의 경제 성장과 지역 일자리 창출 등에 크게 이바지했다”며 “만약 ITC에서 한 회사가 부정적 판결을 받을 경우 공익 측면에서 피해가 상당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LG가 공장을 짓고 있는 오하이오주의 경우 영업비밀의 중요성과 공정한 결정을 요청하고 있다. 셔로드 브라운, 라브 포트먼 오하이오 상원의원은 ITC에 제출한 공동 의견서를 통해 “LG화학의 오하이오와 미국 내 성공적인 투자는 공정거래와 영업비밀 보호가 바탕이 돼야 한다"면서 "ITC가 지난 2016년 통과한 미국영업비밀보호법(DTSA)에 따라 영업비밀 보호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는 만큼 공정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밝혔다.
합의금 규모 온도차 상당…업계 "LG 3~6조원 VS SK 5000억원"
가장 큰 문제는 합의금 규모를 놓고 양측의 입장 차가 전혀 좁혀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LG측이 ITC 조기 판결을 근거로 막대한 합의금을 요구하는 가운데 SK측은 터무니없는 제안에 결코 응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다만 ITC의 최종 결정 이후 양사가 민사 소송을 이어간다면 소송 장기화에 따른 비용 등 양측에 상당한 출혈이 예상되는 만큼 판결 직후 본격적인 합의 협상이 진행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한지영 조선대 법학과 교수는 "국내 대기업이 원만하게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타국에서 지식재산권 소송을 벌이는 것과 미국 로펌들에 소송 비용으로 수 천억원을 지불해 가면서 1년 반 넘게 공방을 벌이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라며 "양 당사자가 조속한 시일 내에 적절한 양보를 통해 합의를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고 이상적인 결과"라고 말했다.
영업비밀침해 소송 합의로 끝날 가능성 90% 이상
통상 기업간 영업비밀침해 소송의 경우 양사 간 합의로 끝날 가능성은 90~95%에 이른다. 따라서 합의 가능성이 여전히 열려 있지만 최근 서로간 주고받은 말의 수위를 놓고 보면 감정의 골이 상당히 깊어진 것도 사실이다. 이에 정세균 총리가 ‘남 좋은 일’, ‘부끄럽지 않나’라며 노골적인 질책을 내놓으며 양사의 합의를 촉구했지만 전문가들은 정부의 이같은 개입은 오히려 추후 비슷한 분쟁 사안에서 잘못된 선례를 남길 수 있다고 지적한다.
손승우 중앙대 산업보안학과 교수는 "소송 규모가 워낙 커서 그렇지 사실상 정부가 기업 간 소송에 감 놔라 배 놔라 할 사안은 아니며 분쟁에 개입하는 것 또한 옳지 않다"면서 "영업비밀침해는 기업의 존폐가 걸린 사안이므로 이에 대한 법적 판단을 받겠다는 것을 질책하기 보다 미국의 증거개시 제도인 '디스커버리 제도' 도입 등 자유로운 소송 환경 만들어주는 것이 제2·3의 배터리 분쟁 막는 길"이라고 지적했다.
양사 합의에 도달할 수 있는 조정·중재 방안도
합의금 규모에 대한 인식 차이로 양사가 평행선을 달리는 상황에 국내에서 상호 합의에 따라 제3자가 나서서 분쟁을 조정할 수도 있다. 특허청 소속 산업재산권분쟁조정위원회에서 지식재산 전문가에 의한 조정 또는 중재를 통해 객관적인 시각에서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는 합의금 수준 등을 정하는 방식이다. 조정위원의 권고에 따라 분쟁 당사자가 상호 양보를 통해 합의를 하게 되면 확정판결과 같은 효력이 발생한다. 다만 미 ITC 최종 판결과 관련한 제3자 중재는 불가능하다.
정차호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대한상사중재원이나 지식재산권 분야 교수진 등 객관적 조언해줄 수 있는 전문가 집단이 나서 조율하는 방법도 대안"이라면서 "제3자 조정의 경우 LG의 용단이 관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지식재산권 분쟁소송에서는 소송 비용이 큰 경우에 비용이 저렴하고 신속 간이한 절차인 대체적분쟁해결수단(ADR)에 의해 해결하는 것도 효과적인 방법일 수 있다. ADR에는 화해, 알선, 조정, 중재 등 다양한 절차가 있다.
백주아 기자 clockwork@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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