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복합위기와 노동의 미래
2020-12-10 06:00:00 2020-12-10 06:00:00
한 해를 마감하는 12월인데, 코로나19의 3차 확산으로 연말 분위기가 싸늘하다. 백신과 치료제가 개발되었다고 하지만, 코로나의 위세는 더 거세다. 코로나 팬데믹이 9개월째 지속되면서 국민들의 피로감이 쌓이고 정신 건강이 피폐해지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자영업자와 노동자의 일자리가 줄어들고 생계가 팍팍해지는 고용과 민생 위기이다.
 
코로나가 휩쓸고 간 세상은 불평등을 더 확대하였다. 전체 노동자들의 임금도 줄어들었고 이렇게 쪼그라든 총액에서 하층노동자층이 가져가는 몫은 더 줄었다. 국제노동기구(ILO)는 ‘ILO 모니터-코로나19와 노동의 세계’ 보고서 6판에서 2020년 1~3분기 전 세계 노동소득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약 4,070조원, 비율로는 10.7% 감소했다고 밝혔다. 이는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5.5%에 해당하는 수치이다. 그런데 모든 사람들의 소득이 줄어든 것은 아니다. 세계적으로 코로나의 외상은 저숙련노동자, 영세 자영업자, 의료체계 사각지대 등 사회안전망 바깥의 취약계층에게 집중되고 있다.
 
우리도 크게 다르지 않다. 통계청의 ‘2020년 3/4분기 가계동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올 3·4분기 균등화 처분가능소득 5분위 배율은 4.88배로 전년 동기 대비 0.22배 포인트 높아졌다. 균등화 처분가능소득은 1분위(소득 하위 20%)와 5분위(소득 상위20%) 간의 소득을 대비한 것으로 수치가 높을수록 분배가 악화됐음을 보여준다. 소득 하위 20%에 해당하는 1분위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163만7000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1% 감소한 반면 상위 20%에 속하는 소득 5분위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1039만7000원으로 2.9% 증가했다. 1분위의 근로소득은 55만3000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0.7% 감소했다. 탈출구가 쉽게 보이지 않는 것이 위기의 본질이며, 노동이 직면한 현실이다.
 
올해는 한국 노사관계에서 역사적으로 조명해야 할 많은 일들이 일어났던 해이다. 노동운동의 불꽃을 피워낸 전태일 열사 50주기이며, 민주노조운동의 깃발을 든 민주노총 설립 25년이 되는 해였다. 예전 같으면 각종 행사들이 떠들썩하게 개최되었겠지만 코로나의 영향으로 취소되거나 약식으로 치러졌다. 전태일 학술토론회에 참석하면서 느낀 안타까움은 노동의 가치와 의미가 갈수록 형해화되고, 노동조합이 한국사회 개혁을 선도하는 주체로 국민들에게 뿌리 내리지 못했다는 평가이다. 노동조합은 1987년 노동자대투쟁이후 사회적 시민권을 획득하여, 저임금 및 장시간노동의 굴레를 깨뜨리는 선도자였다. 노동운동의 성과로 주5일근무제가 시행되고, 최저임금도 인상되었다. 주면 주는 대로 시키면 시키는 대로 일하는 수동적인 근로자가 아닌 직장의 주인인 노동자로 성장하였다.
 
하지만 외환위기 이후 노동운동은 자본의 공세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하였다. 전체 노동자의 이익을 도모하는 계급연대와 사회연대에 소홀하였다. 기업별노조와 교섭에 안주하였다. 비정규직 활용과 아웃소싱 확대는 개별 기업의 합리적 선택이라 할 수 있지만, 사회 전체의 효용성은 약화되고, 공동체가 부담해야 할 짐은 갈수록 커졌다. 그 결과는 낮은 노조조직률, 고용형태 다변화에 대한 대응력 취약, 기업복지 확대에 따른 사회복지의 지체, 노동운동의 사회적 지지 약화 등으로 나타났다. ‘경쟁과 효율’이라는 자본의 공세를 ‘연대와 공생’의 담론으로 극복하지 못하였다, 노동운동의 역할 축소 및 영향력 약화는 노사관계뿐 아니라 한국사회 전체의 위기로 나타났다. ‘노동 없는 민주주의’의 위기를 심화시키고 있다.
 
한국의 노동조합운동은 대·내외적인 전환기적 상황에 직면해 있다. 노동조합은 90% 가까운 노동자들을 포괄하지 못하며,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는 노사관계의 이중구조로 확대되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외부 환경이 급격히 변화하고 있다. 디지털 전환이라는 새로운 기술체제와 업무 시스템은 노동자에게는 축복이 아닌 위협이다.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레온티에프는 “말이 자동차와 트랙터에 밀려났듯이 우리는 컴퓨터와 로봇에 밀려난다.”고 기술발전에 따른 고용 위험을 경고한다. 한 공간에서 8시간씩 같이 일하는 집합 노동은 과거가 되고, 노동자와 사용자의 경계에 있는 법적으로 근로자 지위를 받지 못하는 새로운 노동형태가 양산된다. 코로나19는 이 변화를 더 촉진하고 앞당긴다. 비대면 노동이 확산되고, 재택근무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된다.
 
물론 기술 발전에 따른 미래는 결정되어 있지 않다. 노동의 대응 여하에 따라 그 미래는 달라진다. ILO는 노동의 대응 방향으로 인간 중심(human-centred)을 제시한다. 기술 변화에 인간이 수동적으로 함몰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주도적으로 기회로서 활용해서, 인간의 역량을 높이고 안전한 노동을 보장하는 것이다. 디지털 전환과 코로나 위기라는 복합위기 상황에 놓인 노동의 대응 방안은 분명하다. 다만 그 힘을 어떻게 준비하고 형성할 것인가가 열쇠이다. 한국의 노동은 과거 유산의 청산과 함께 새로운 노동의 미래를 재구성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미래의 길은 누구도 모른다. 준비하는 사람들의 몫이다.  
 
노광표 한국고용노동교육원 원장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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