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산업재해가 발생하면 먼저 물어야 할 것은 얼마나 보상했느냐가 아니다. 왜 노동자가 죽었고, 누가 안전의무를 다하지 않았느냐가 먼저다. 그런데 대법원 양형위원회의 중대재해범죄 양형기준 수정안을 보면 이 원칙이 충분히 반영됐는지 의문이다.
양형위는 중대산업재해치사의 기본영역을 징역 1년6개월~4년, 가중영역을 3~10년으로 제시했다. 특별가중 사유가 있으면 최대 15년까지 권고할 수 있도록 했다. 피해 회복이나 처벌불원 등은 감경요인으로 반영된다.
법리적으로 15년이라는 기준을 정한 것 자체가 위법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사망사고에 대해 ‘1년 이상 징역’이라는 하한을 두고 있을 뿐 상한을 두지 않았다. 양형기준도 법률상 형벌의 상한을 새로 만드는 규정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양형기준은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법관이 이를 존중해야 하고, 기준에서 벗어나면 그 이유를 판결문에 적어야 한다. 결국 15년이라는 숫자가 재판에서 강한 기준점으로 작용할 가능성을 무시하기 어렵다.
특히 아리셀 참사를 떠올리게 한다.
2024년 화성 아리셀 공장 화재로 23명이 숨졌다. 박순관 대표는 1심에서 징역 15년을 선고받았지만, 올해 4월 항소심에서는 징역 4년으로 감형됐다. 박 대표가 피해자 유족 전원과 부상 피해자들에게 피해를 변제하고 합의한 점 등이 양형에 반영됐다. 항소심은 비상구 설치 의무 등 일부 법적 판단도 1심과 달리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합의 자체를 문제 삼는 것이 아니다. 피해 회복과 처벌불원을 양형에서 고려하는 것은 일반적인 형사재판의 원칙이다. 실제로 중대재해 사건에서도 유족과의 합의나 처벌불원이 감경요소로 자주 고려돼 왔다는 분석이 있다.
문제는 산업재해 사망사건에서 합의의 의미를 어디까지 볼 것이냐는 데 있다.
개인 간 범죄와 달리 중대산업재해의 핵심은 사업주가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제대로 이행했는지다. 사고 이후 유족에게 충분한 보상을 했다고 해서 사고 이전에 안전조치를 소홀히 한 책임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합의를 감경요소로 삼더라도 단순히 ‘합의했다’는 사실만 볼 것이 아니라 보상의 실질성, 합의 과정의 자발성, 책임 인정 여부, 사고 이후 실효적인 재발방지 조치 등을 함께 따져야 한다. 특히 재발방지 조치는 사고 원인을 제대로 조사하고 같은 위험이 반복되지 않도록 안전관리체계를 실제로 개선했는지가 중요하다.
15년이라는 기준도 따져볼 필요가 있다.
양형은 사망자 수만으로 결정할 수 없다. 그러나 피해 규모를 외면해서도 안 된다. 안전의무를 얼마나 중대하게 위반했는지, 위험을 알고도 방치했는지, 반복적인 안전관리 부실이 있었는지, 사고를 예방할 현실적인 기회가 있었는지 등을 종합해 책임의 차이를 만들어야 한다.
23명이 숨진 아리셀 참사에서 1심은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그렇다면 아리셀보다 훨씬 많은 노동자가 희생되는 참사가 발생했을 때는 어떻게 형량을 더 무겁게 할 것인가. 양형기준이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면 15년은 법률상 상한이 아니더라도 재판 현실에서는 강한 천장으로 작용할 수 있다.
양형기준의 목적은 처벌을 무조건 높이는 데 있지 않다. 범죄의 책임에 맞게 형량을 정하고 법관의 자의적 판단을 줄이는 데 있다. 그렇다면 중대재해 양형기준도 얼마까지 처벌할 것인가보다 책임의 크기에 따라 형량이 어떻게 달라지는가를 분명하게 보여줘야 한다.
중대재해를 막으려면 사고 뒤의 합의보다 사고 전의 안전책임을 더 무겁게 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