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계 금융회사가 한국에서 돈을 버는 것을 문제 삼을 이유는 없다. 해외 자본이 들어오고 새로운 금융기법과 서비스가 경쟁하는 것은 국내 금융시장에도 도움이 된다. 국내 금융회사 역시 외국계 회사와 경쟁하면서 상품과 서비스를 개선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을 번 뒤다. 이익을 어떻게 나누느냐만 볼 것이 아니라, 그 이익을 만드는 과정에서 고객과 직원, 금융시장의 안전을 얼마나 챙겼는지를 함께 봐야 한다. 최근 라이나생명을 둘러싼 논란이 눈에 들어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라이나생명은 미국 처브그룹 계열사다. 보도된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2025년 별도 기준 당기순이익은 3,564억 원이었다. 전년보다 23.2% 줄었지만 결산배당은 2,200억 원으로 결정됐다. 최근 3개 사업연도의 결산배당을 합치면 6,400억 원이다.
배당이 많다는 이유만으로 비판할 수는 없다. 기업이 이익을 주주에게 돌려주는 것은 정상적인 경영활동이다. 주주가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배당을 제한해야 할 이유도 없다.
눈여겨볼 것은 다른 곳이다. 같은 시기에 라이나생명과 자회사 라이나원의 IT 인력 97명 가운데 28명이 희망퇴직을 신청했고, 19명은 다른 부서로 이동하는 대상이 됐다는 보도가 나왔다. 노조는 IT 업무 외주화를 위한 사실상의 인력 감축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회사 측은 아직 인사가 확정되지 않았고 노조와 협의 중이라는 입장이다.
이 문제를 단순히 ‘배당은 늘었는데 직원은 줄었다’는 식으로 볼 필요는 없다. 조직을 바꾸고 비용을 줄이는 것은 기업의 경영 판단이다. IT 업무를 외부 전문업체에 맡기는 것도 그 자체로 잘못이라고 할 수 없다.
다만 금융회사의 IT는 일반 기업의 비용 항목과는 다르다. 보험 가입자의 계약정보와 개인정보가 시스템에 저장되고, 보험료 납부와 계약 관리, 보험금 지급도 대부분 전산으로 처리된다. 시스템에 문제가 생기면 고객은 외주업체가 아니라 보험회사에 연락한다. 업무를 밖으로 넘길 수는 있어도 책임까지 넘길 수는 없는 이유다.
현장에서 더 중요한 것은 숫자로 잘 드러나지 않는 경험이다. 어떤 시스템이 오래됐는지, 특정 프로그램의 어느 부분에서 오류가 반복되는지, 장애가 발생했을 때 누구에게 연락해야 가장 빨리 복구되는지를 아는 사람은 단순한 인건비 항목이 아니다. 수년간 업무를 맡아온 직원이 빠져나가면 이런 경험도 함께 사라진다. 당장은 비용이 줄어도 나중에 장애나 보안사고가 발생하면 절감한 비용보다 더 큰 대가를 치를 수 있다.
보험회사는 특히 장기적인 신뢰가 중요한 업종이다. 고객은 몇 달 쓰고 버리는 서비스를 사는 것이 아니다. 수년, 수십 년 동안 보험료를 내고 언젠가 필요할 때 약속한 보험금을 받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계약한다. 그러니 회사의 성과를 순이익과 배당만으로 판단해서는 곤란하다. 자본 여력과 지급여력, 계약자 보호, 보안과 시스템 투자까지 함께 봐야 한다.
인력 감축도 마찬가지다. ‘희망퇴직’이라는 이름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회사가 조직개편의 이유를 얼마나 설명했는지, 직원에게 실질적인 선택권이 있었는지, 퇴직 이후 같은 업무를 외부업체에 맡기는지도 따져볼 필요가 있다. 특히 숙련된 IT 인력을 내보낸 뒤 동일한 업무를 외주화한다면 회사가 얻는 것이 정말 비용 절감뿐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런 기준은 외국계 금융회사에만 적용할 일이 아니다. 국내 금융회사에도 똑같이 적용해야 한다. 외국계라는 이유로 더 엄격하게 대할 필요도 없고, 해외 자본을 유치한다는 이유로 눈감아줄 필요도 없다.
외국 자본은 한국에서 자유롭게 돈을 벌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투자도 계속 들어오고 금융시장의 경쟁도 살아난다. 대신 한국에서 사업하는 동안 지켜야 할 책임도 분명해야 한다. 고객정보를 안전하게 지키고, 금융 시스템을 안정적으로 운영하고, 필요한 전문인력을 유지하는 것은 국적과 관계없이 금융회사라면 감당해야 할 몫이다.
결국 물어야 할 것은 ‘외국계냐 국내 기업이냐’가 아니다. 한국에서 번 돈으로 무엇을 남겼느냐다.
배당을 많이 했다고 나쁜 회사도 아니고, 인력을 줄였다고 곧바로 잘못된 경영이라고 할 수도 없다. 중요한 것은 그 과정에서 고객의 신뢰가 훼손되지 않았는지, 금융의 안전판이 약해지지 않았는지, 회사 안에 필요한 경험과 전문성이 남아 있는지다.
외국계 금융회사에 한국 기업이 되라고 요구할 필요는 없다. 다만 한국에서 돈을 버는 금융회사라면 한국의 고객과 시장에 대한 책임도 함께 져야 한다. 자본의 국적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자본이 어떤 방식으로 수익을 만들고, 그 과정에서 무엇을 남기느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