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전염병과 한국의 약한 고리
2020-03-03 06:00:00 2020-03-03 06:00:00
불과 얼마 전만 해도, 한국은 중국에서 늘어나는 확진자 숫자를 보며 안도하고 있었다. 질병관리본부는 훌륭한 전염병 통제능력을 보여주었고, 일본 크루즈에서 벌어지는 전근대적인 대응을 보며, 한국 정부에 자부심을 갖기도 했다. 바로 그 시기에 물리학자 김범준은 중국에서 발표하는 확진자 수를 ‘로지스틱 모형’에 대입해 2월 말이면 코로나19의 확산이 멈출 것이라고 예측했다. 여러 조건을 걸긴 했지만, 그의 예측은 일주일도 되지 않아 예상치 못한 복병을 만나 무너졌다. 신천지다.
 
기독교 계열의 단체들은 신천지를 이단이라 부른다. 이단이라고 해서 사이비 종교는 아니다. 이단은 비주류 종교의 다른 말이다. 통일교는 기독교에 의해 이단이 됐지만, 더이상 비주류가 아니다. 신천지도 신도수가 수십만에 이르는 종교로 성장했으니, 비주류를 벗어났는지 모른다. 사이비는 사회적인 개념이다. 종교적 형태를 갖췄지만 미풍양속과 사회규범을 저해하는 집단을 보통 사이비 혹은 사이비종교라고 부른다. 신천지는 코로나19의 가장 큰 피해자가 본인들이라고 주장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코로나19의 확산이 급격히 증가한건 신천지의 종교집회 때문이었고, 그들이 정부에 제대로 협조하지 않은건 사실이다. 만약 이번 사태에서 신천지가 사회적 공익을 무시하고 조직의 논리로만 작동하는 종교집단임이 밝혀진다면, 남들이 사이비종교라 불러도 할 말이 없다.
 
사이비종교와 더불어 한국사회에 큰 피해를 주는 집단이 유사과학단체다. 과학적 권위를 이용해 시민들을 현혹하고, 그렇게 현혹된 시민들의 주머니를 털어 자신들의 사업을 번창시키는 유사과학단체는 한국에 사이비종교 숫자만큼이나 많다. 나는 그런 유사과학단체 중 뇌과학을 참칭해 각종 뇌교육단체와 학교를 만든 이를 고발했다가 고소를 당했다. 과학기술정통부까지 속아넘어간 그들의 유사과학활동은 일반인이 쉽게 알아차릴 수 없다는 점에서 사이비종교보다 훨씬 위험하다. 그들이 만든 청소년 대상 뇌교육 학원 하나가, 자신들의 뇌교육 프로그램을 수행하면 면역력을 키워 코로나19로부터 몸을 보호할 수 있다는 13만원짜리 프로그램을 홍보중이다. 이번 코로나19 사태는 그동안 우리가 무시해왔던 사이비종교와 유사과학이 국가적 재난 상황에서 얼마나 큰 위험의 도화선이 될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코로나19의 진단에는 실시간 유전자 증폭기술이 사용되며, 이 기술의 특성 상 최대 6시간이 소요될 수 밖에 없다. 현재 질병본부는 이 기술로 검사결과를 확진하며, 한국은 이 진단법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압도적인 우위에 서 있다. 코로나19의 확진을 유전자증폭으로 하는 이유는, 검사의 민감도와 신뢰도가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6시간이라는 시간과 병원에 가야 한다는 불편함이 존재한다. 이에 한 생명공학 기업이 10분 안에 코로나19를 집에서 간편하게 검진할 수 있다며 대대적인 홍보를 진행중이다. 이 뉴스가 나가고 나서 해당 기업의 주가는 30% 가까이 올랐다. 하지만 의료전문가들은 해당 기업의 진단키드는 민감도가 떨어져 사용할 수 없다고 지적했고, 질병본부도 정확도가 떨어진다는 이유로 긴급사용 승인 대상이 아니라고 밝혔다. 하지만 해당 기업의 대표는 긴급사용 승인이 순조롭게 진행중이라고 항변한다. 주가를 올리기 위해서는 무슨 짓을 해도 상관 없다는 한탕주의 또한 한국사회의 큰 약점이다.
 
포스텍 석좌교수 송호근은 25일 대학 교수내부통신망에 글을 올려, “이대로 정부에 맡겨두면 사망자가 150명에 이를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가 근거로 내세운건 자신의 거친 예상 뿐이다. 그는 정부가 과학자 집단의 권고를 듣지 않는 바람에 현 사태가 발생했다고 주장한다. 그 과학자 집단의 권고라는게 중국인 입국을 제한하자는 의협의 권고인지, 아니면 2월 말이면 코로나19의 확산이 끝난다는 김범준 교수의 예측인지는 모르겠다. 게다가 당장 태스크포스팀을 본인이 재직 중인 포스텍에 세워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의과대학은 물론 전염병 연구자 한 명 없는 포스텍에 도대체 왜 태스크포스를 설치해야 하는지 모를 일이다. 인문학자가 전염병 사태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이럴 때 인문학이 돕는 방법은, 질병본부처럼 최전선에서 싸우는 이들을 도우라는 지혜 정도일 것이다.
 
코로나19가 한국사회의 약한 고리들을 드러내고 있다.
 
김우재 초파리 유전학자(Woo.Jae.Kim@uottawa.ca)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지난 뉴스레터 보기 구독하기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