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43년 간 멤버 교체 없이 달려온 U2는 살아있는 록의 역사였다.
60세를 앞두고도 2시간10분 가량 진행된 공연에서 이들은 지친 기색 하나 보이지 않았다. 얼굴의 깊은 주름에도 소리는 ‘영생’처럼 다가왔다. 인권·반전·환경의 범지구적 메시지는 이 날도 반세기를 관통하며 국경을 몇 개나 넘었다.[뉴스토마토 기사 참조,
(리뷰)존 레논 잃은 날, U2 종합예술 ‘평화’를 새기다]
핑크플로이드와 U2 공연이 인생 버킷리스트임을 깨달은 시간. 지난 8일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역사적 내한 공연은 그 증명의 현장이었다.
내한 공연 역사에 획을 그은 이날 국내 여러 뮤지션, 전문가도 현장을 찾았다. 어쩌면 열악하다고도 볼 수 있는 국내 밴드 환경에서 오랜 시간 ‘음악 장인’으로 활동한 뮤지션들은 어떻게 관람했을까. 오늘날 관심이 상대적으로 미약해진 록 장르를 오래 분석해 온 전문가들은 어떻게 공연을 봤을까.
지난 8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43년 만에 열린 U2의 첫 내한 공연. 사진/라이브네이션코리아
30주년 ‘조슈아트리’의 역사적 상징성
우선 ‘조슈아트리(1987)’ 앨범 30주년 일환으로 진행된 이번 공연은 그 역사적인 상징성이 컸다. 실제로 앨범은 당대 스트레이트하고 둔탁한 소리가 지배적이던 기존 U2의 전작들을 탈피, 모던 록 전형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신비롭고 서걱거리는 디엣지의 기타와 아련하게 다가오는 앰비언트 뮤직 거장 브라이언 이노의 신시사이저, 광활한 자유의 땅을 거닐며 보고 느낀 사색과 탄압에 대한 저항 메시지….
록 매거진 파라노이드의 송명하 편집장은 “조슈아 트리는 포스트 펑크 냄새가 강했던 U2가 전작 사운드에서 벗어나, 변화를 시작한 첫 앨범”이라며 “이후 세대의 수많은 밴드에게도 영향을 준 록의 기념비적 음반이라 볼 수 있다”고 설명한다.
“앨범 작업 당시 U2 보노(59·보컬)가 롤링스톤스와 함께 지내는 시간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루트 락에 관심을 기울이게 됐고, 그것이 이 음반 사운드에 큰 영향을 미쳤다 볼 수 있습니다. 기존 앨범에서 보여주던 사회적 메시지 역시 놓치지 않았고요.”
국내에서는 이 앨범 첫 발매 당시 중반 4곡(‘Bullet The Blue Sky’부터 ‘Running To Stand Hill’, ‘Red Hill Mining Town’, ‘In God's Country’까지)이 금지곡으로 지정되는 사태도 있었다. 사회적 탄압과 착취, 통제에 관한 격렬한 비판이 당시 한국 군사정권을 비춘다는 이유에서였다. 송명하 편집장은 “발매 당시 4곡이 빠져 있었기 때문에 한국 팬들에게는 더 각별한 느낌도 있었다”며 “비워져 있던 퍼즐을 맞추는 느낌으로 봤다”고 했다.
결성 26년차 밴드 EOS(김형중·배영준·조삼희) 멤버들은 조슈아트리 앨범을 '음악사에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앨범'이라고 말한다. “그런 앨범을 만들었다는 자부심이 그들을 깨우고 자극하는 역할을 했을 것”이라며 “모든 예술가들에겐 사회적 의미, 인기와 무관하게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작품이 반드시 필요하다. 우리도 그런 앨범을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아일랜드(U2의 고국) 전통음악에 기반을 둔 포크 밴드 ‘바드’ 출신인 뮤지션 루빈은 “처음 음악을 시작하던 시기 듣던 앨범”이라며 “30년이란 짧지 않은 시간 여전히 그렇게 큰 영향력을 갖고 감동을 줄 수 있는 점이 놀라웠다”고 돌아봤다.
지난 8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43년 만에 열린 U2의 첫 내한 공연. 사진/라이브네이션코리아
한 편의 뮤지컬, 극강의 종합 예술
U2 공연은 빨간 섬광을 지나 ‘The Joshua Tree’ 전곡 실연에 들어서며 경이에 이르는 경험이 됐다. 도로를 달리는 영상으로 시작된 이들의 여정은 광활한 미국 대자연을 비추더니 인종, 성별 구분 없이 군용 헬멧을 착용하는 장면으로, 현란한 색의 죠슈아 트리로 시시각각 변했다. 스크린에 길고 웅장하게 분사된 이 종합예술은 단순한 관람 수준을 넘어 촉각적 체험에 가까운 전율을 일으켰다.
올해 데뷔 20주년을 맞은 밴드 넬(김종완·이정훈·이재경·정재원) 멤버들도 이날 다 같이 공연을 관람했다. 중고교 동창으로 밴드를 시작한 이들 역시 고교 스쿨 밴드로 출발한 U2와 결성 계기가 유사하다. 넬 멤버들은 “넬 초창기 때부터 U2는 롤 모델이었다.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며 함께 공연장을 찾은 이유를 밝혔다.
밴드 역시 국내 공연계에선 시후각적 요소들을 활용하는 무대로 유명하다. 매 연말 시즌 열리는 브랜드 공연 ‘크리스마스 인 넬스룸(CHRISTMAS IN NELL'S ROOM)’은 로즈향 향수, 입체적인 큐브형 대화면 등을 청각과 결합, 종합 예술처럼 구현해낸다. 이들은 “맞는 표현일지는 모르겠지만 상상했던 것 보다 뮤지컬적인 느낌이 있어 ‘좋은 의미’로 놀랐다”며 “고화질로 준비된 영상들도 좋았지만 몇몇 곡에서의 중계가 특히 좋았다”고 얘기했다.
이날 U2는 줄곧 아파트가 누운 듯한 거대 화면(가로 64m, 세로 14m 크기)에 자신과 2만8000여 관객들을 비췄다. 핸드헬드 기법으로 어지러운 착시, 현실처럼 비춰낸 순간은 넬 멤버들 말처럼 “묘한 즉흥성과 현장성을 느끼게” 했다.
지난 20년 간 밴드 활동을 이어온 피아의 드러머 양혜승 역시 “대화면 스크린이 모든 조명 역할을 했던 공연이었다”며 “라이브 연주와 단 1의 레이턴시(부조화)도 생기지 않는 완벽한 기술력, 호소력 있는 보노의 보컬, 멤버들 연주력이 하나 된 지구상 최고의 공연이었다”고 생각을 전했다.
지난 8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43년 만에 열린 U2의 첫 내한 공연. 사진/라이브네이션코리아
음향 문제? 고척돔 특수성으로 봐야
이번 공연에선 높은 천장의 돔 특성상 음의 딜레이나, 울림 현상이 종종 발생되는 아쉬움이 있었다. 애덤 클래이턴(59·베이스)과 래리 멀렌 주니어(58·드럼)의 리듬 파트는 상대적으로 센 보노와 디엣지(58·기타)의 멜로디 파트에 종종 묻혔다. 특히 기타에 공간감을 주거나 시간을 지연시켜주는 모듈레이터 이펙터 울림이 애덤의 베이스 중저대역을 지워버리는 경우가 잦았다.
하지만 각기 다른 위치에서 관람한 전문가들, 뮤지션들은 관람 후 다양한 의견을 냈다. 스탠딩석에 가까울수록 대체로 괜찮았다고 한 반면, 멀어질수록 반향음의 울림을 세게 느꼈다. 그럼에도 이들은 대체로 고척돔의 특수성으로 봐야한다는 공통 의견을 냈다.
2층 좌석 맨 앞에서 봤다는 송명하 편집장은 “보노가 마이크에 대고 멘트를 할 땐 심하게 울리는 듯 했지만, 다시 연주가 시작되면 괜찮은 느낌이 있었다”며 “공연 전체적으로는 초반 뭉개지는 부분이 많았다가 후반으로 갈수록 괜찮았다. 실내 공연장이다 보니 어느 정도 반향음이 있었고 자리에 따라 다르게 느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넬 멤버들은 “고척돔이란 공간 특성이 있었을 것”이라며 “드럼과 베이스가 묻히는 반면 보컬에 많은 포커스를 둔 사운드라고 혹자는 생각할 수 있었겠지만 밴드, 스텝 의도가 있었을 테니 쉽게 얘기하긴 힘든 부분인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드럼이 조금 더 잘 들렸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고 얘기했다.
U2 사운드의 ‘정수’라는 보컬, 기타 사운드가 잘 들려 만족했다는 평가도 있었다. 스탠딩 정중앙에서 관람했다는 양혜승은 “기타, 보컬 사운드가 U2 사운드의 핵심이라 느끼기 때문에 드럼, 베이스가 상대적으로 부각이 안 되게 느껴질 수 있었지만 1층 정중앙은 드럼, 베이스도 적절하게 잘 들렸다”고 말했다. 스탠딩석 좌측에서 봤다는 EOS 멤버들 역시 “1층 사운드는 나쁘지 않았다”면서도 “애초 전문 공연장이 아닌 돔 형식 구장에서 모든 좌석에 좋은 사운드를 공급하기란 쉽지 않았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일각에서는 고척돔 특유의 설계 문제를 지적하기도 한다. 김성환 음악저널리스트는 “야구장과 전문 공연장 기능을 모두 고려한 도쿄돔과 고척돔은 천장을 짓는 방식부터 다른 것으로 안다”며 “도쿄돔에서도 밴드 공연을 본 적이 있는데 그때는 이번 U2 공연의 특정 순간처럼 소리 자체가 일그러지거나 왜곡되는 느낌은 거의 발견할 수 없었다”고 비교했다. 또 U2 공연의 전체적인 소리와 관련해서는 “조슈아트리로 넘어가면서부터 전반적으로 좋았던 기억이 난다”며 “각각 좋고 나쁜 타이밍이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 8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43년 만에 열린 U2의 첫 내한 공연. 사진/라이브네이션코리아
어쩌면 지금이 전성기…늘 현재진행형인 U2
그래미 22회 수상과 1억8000만장의 앨범 판매, 가스펠과 록, 팝 EDM까지 전 방위적으로 아우른 장르적 실험…. U2는 지난 43년 간 멤버 변동 없이 세계 대중음악계에 굵직한 족적을 남겨왔다. 공연 직전 일각에선 “전성기를 지나 한국에 왔다”는 비판도 있었지만, 이날 본 그들은 여전한 ‘현재진행형 뮤지션’이었다.
송명하 편집장은 “혹자는 U2가 환갑 나이에 와서 안타깝다는 말을 하지만 돌아보면 오히려 30년 전보다 지금 와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고 말한다. ‘조슈아트리’ 앨범이 나왔던 1987년 무렵 한국은 헤비메탈 붐이 들끓던 시기였기 때문. 그는 “당시 U2의 경우 'Sunday Bloody Sunday' 같은 곡들이 들려지긴 했지만 오히려 그때 한국에 왔다면 아레나급 무대에 설 수 있었을지 의문”이라고 짚었다. 이어 “이번 공연에서 느낀 건 그때 U2와 함께 커온 사람들 간의 공감이었고, U2는 세월을 건너 충분한 보상을 해줬다는 생각을 한다”고 돌아봤다.
넬 멤버들은 “주름만 늘었을 뿐 항상 전성기인 느낌이라 그냥 ‘아 U2가 한국에 왔구나. 즐겨야지!’라는 생각만 했다”며 “멤버들에게서 느껴지는 여유로움, 그 속의 진지함이 참 멋있었다. 중간 중간 과감하게 던지는 메시지 또한 흥미로웠다”고 소감을 얘기했다. 또 “넬이라는 밴드의 버킷리스트 중 한 개를 이룰 수 있었다. 멤버 교체 없는 그들은 늘 현재진행인 느낌을 준다”고도 말했다.
연주의 합 자체를 넘어 밴드 자체의 호소력을 중히 본 이들도 있다. 양혜승은 “U2의 장르 자체는 그들 특유의 분위기, 감성에 기반하고 있다고도 생각된다”며 “U2보다 합이 더 좋은 밴드 공연은 수없이 봐왔으나 그런 호소력은 그들 만이 할 수 있는 음악”이라고 전했다. 또 “고교 친구 4명이 스쿨밴드를 만들어 세계 최고의 밴드가 된 그들은 영화에나 나오는 비현실적 스토리를 써가고 있다. 가장 되고 싶은 형태의 이상적인 밴드 모습”이라고 덧붙였다.
지난 8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43년 만에 열린 U2의 첫 내한 공연. 사진/ⓒRoss Stewart
인권·반전·환경 등 폭넓은 인도주의적 문제를 다룬 가사들은 공연장에서도 그들이 여전히 살아 있음을 느끼게 했다.
폴란드 민주화 운동(곡 ‘New Year’s Day)과 북아일랜드 런던 데리시에서 발생한 ‘피의 일요일’(‘Sunday Bloody Sunday’), 부의 격차와 개인의 영적 탐구(‘Where The Streets Have No Name’),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와 비폭력 저항운동(‘Pride’), 독일 통일에서 본 갈등과 화합, 평화, 공존(‘One')….
오랜 기간 아일랜드 전통 음악에 관심을 가져온 루빈은 “‘Sunday Bloody Sunday’ 가사처럼 아일랜드는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테러로 무구한 사람들이 희생돼 왔다”며 “한국과 같은 분단국가였다는 점에서 이들 마음 깊이엔 한국인들과 비슷한 정서가 많다. 무대에서 보여준 아일랜드 국기, 마지막 태극기, 평화와 화합 이야기에 가슴이 뭉클했다”고 얘기했다.
EOS 멤버들은 “박애주의, 환경, 인류애, 평등과 같은 사회적 메시지에 대한 멤버들의 오랜 공감, 그것들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영상미술가 안톤 코르빈과의 교류가 있어야 가능했던 공연이었다”며 “43년을 함께 해 온 U2 멤버십, 예술성에 존경심을 느꼈다. 좋은 뮤지션 이전에 좋은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의 에너지와 호흡이 느껴져서 더 좋았다”고 봤다.
향후 U2가 또 온다면 뮤지션들은 어떤 부분을 기대하고 있을까.
“U2는 매 투어시 항상 새로운 콘셉트의 무대를 보여줬습니다. 하트 무대, 360도로 돌아가는 설치물 같은, 또 어떤 새로운 콘셉트를 펼칠지 기대 됩니다.”(피아 양혜승) “다시 한 번 이들의 합을 느껴보고 싶습니다. 또 더 나은 공연장을 기대합니다.”(루빈)
“늘 그래왔 듯 , 또 한번의 새로운 무대, 그리고 변함없이 멋진 모습!”(넬) “아무 것도 더 기대하지 않습니다. 이미 충분히 완벽했으니까. 자주 오기나 했으면 좋겠고 그 때 우리의 상황도 좀 변해 있으면 좋겠습니다. 종전 선언을 한다든지.”(EOS)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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