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여기 방탄소년단이라도 왔어요? 뭐 이리 사람이 많아요?"
지난 6일 저녁 8시 서울 올림픽공원 내 체조경기장(KSPO 돔) 앞. 산책 나온 한 중년 여성이 수많은 인파에 쓸려 가던 중 물었다. 경기장 앞은 세대, 국적을 불문하고 인산인해. 특히 10대들의 비중이 꽤 컸던 탓에 그리 오해할 법도 했다.
미국의 일렉트로닉 팝 듀오 체인스모커스 공연이 있던 날. '헬맷'으로 상징되는 다프트 펑크를 음악적 영웅으로 삼고, '소리 실험'을 추구하는 두 뮤지션 앞에 8000여명의 인파가 몰려들었다.
6일 저녁 8시 서울 올림픽공원 내 체조경기장(KSPO 돔)에서 열린 체인스모커스 내한 공연. 사진/Photo credit: © Danilo Lewis
체인스모커스는 알렉스 폴(34·DJ 겸 프로듀서)과 앤드류 태거트(30·DJ 겸 보컬)로 구성된 그룹. 세계적인 EDM 열풍의 선봉에 서고 있는 팀이다. 2017년 빌보드 싱글 차트 10위권에 올린 곡만 3곡. 비틀스와 비지스 이후 처음 있는 일. 같은 해 그래미어워즈에서는 데뷔 3년 만에 '최우수 댄스 레코딩' 상도 수상했다.
주로 멜로디컬한 팝적 요소를 일렉트로닉 댄스 뮤직(EDM)과 버무려내는 게 장기. 몽환적인 서정미가 돋보이는 대표곡 '클로저(Closer)'는 유럽에서 아이부터 어른까지 따라부르는 '성가'에 가깝다.
국내에서는 방탄소년단(BTS)의 '베스트 오브 미(Best of me)' 프로듀서로도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지난 2017년 이들의 첫 단독 내한 공연 때는 BTS 멤버들이 게스트로 출연하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번 내한은 듀오의 두 번째 단독 내한이자 페스티벌까지 합치면 총 네 번째 내한. 공연 4개월 전 미리 서면으로 만나봤던 이들은 "다양한 소리 실험은 '영웅' 다프트펑크(프랑스 전자음악 듀오) 영향으로 시작됐다"며 "우리에게 한국은 제 2의 집 같은 느낌"이라고 했었다.(뉴스토마토 5월31일자 <체인스모커스 "우린 음악 실험 좋아해, 다프트펑크는 영웅"> 참조)
체인스모커스 내한 공연. 사진/Photo credit: © Danilo Lewis
이날 듀오는 10분이 조금 지나고서야 무대에 등장했다. 칠흑 같은 암전 속 미세한 하얀 빛 줄기가 이들의 실루엣을 그려냈다. 거친 질감의 기계 굉음 때문인지 원형 경기장은 곧 수직 발사될 거대 우주선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첫 곡 'Take Away'를 시작으로 이들의 '소리 실험'이 돔을 가득 울렸다. 드럼과 전자패드로 찍어내리는 비트가 중심을 잡고, 샘플러 기계로 터치한 멜로디가 일렁이며 교차했다. 팝아트 같은 영상 그림들은 뭉개지며 청각을 부지런히 시각화 시켰다.
이날 가장 흥미로웠던 경험은 '움직이는 공연장' 체험. 'Roses', 'Paris', 'Call you mine' 이후 지정석 관객들이 우측 시야제한석으로 거대 이동을 시작했다. 흡사 초원 위 자유로운 버팔로 떼나 대륙을 넘나드는 유목민 느낌. 이들은 다 못 푼 한을 풀듯 일어나 떼창을 하고 전자음악에 몸을 맡겼다.
체인스모커스 내한 공연. 사진/Photo credit: © Danilo Lewis
"지금 이 순간이 마법 같습니다." 태거트의 멘트가 홀을 진동시키던 시점은 공연 클라이막스. 그가 "에오!"를 선창하자 공연장이 떠나갈 듯 진동했다. 지난해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에서 그려진 1985년의 역사적 공연 '라이브 에이드'의 완벽 재현. 밴드 '퀸'의 보컬 프레디 머큐리(1946~1991)처럼 그는 경기장을 지휘했다. 8000여 관객들과 함께 부른 'Closer', 'Something Just Like This'에 경기장이 떠나갈 듯 진동했다.
이날 공연을 마치고 나오는 길. 기자는 초등학생부터 40~50대의 부모들, 외국인 등 다양한 세대와 국적을 지닌 이들과 인터뷰를 시도했다. 서울의 한 국제학교를 다닌다는 중학생 3명은 "유럽에서 초등학교를 다녔는데 '클로저'가 너무 유명해서 그 때부터 체인스모커스를 알게 됐다"며 "오늘 공연장에 와 보니 라이브가 훨씬 더 좋았고, 흥이 나 무대 오른쪽으로 가서 춤을 추게 됐다"고 소감을 전했다.
최한결(14) 학생은 "또래 친구들과 비슷하게 방탄소년단 같은 케이팝 그룹도 좋아하지만 마룬파이브, 체인스모커스 같은 음악도 좋아해 오게 됐다"고 했다. 학생의 어머니 김영빈씨는 "이런 음악을 아들과 함께 즐긴다. 대구에서 아들이 학교 끝나자마자 대기하고 있다가 서울로 넘어왔다"며 "실제로 공연을 보니 그렇게 연주를 잘하는지 몰랐다. 음원보다 훨씬 좋았다"고 말했다. 영국에서 왔다는 엠마 씨는 "콜드플레이, 스노우패트롤을 좋아한다"며 "체인스모커스는 DJ이기에 그들보다 조금 자연스럽진 않은 느낌은 있다"며 살짝 아쉬워 했다.
7일 저녁 서울 이태원 현대카드 뮤직 라이브러리에서 열린 '하우스 오브 반스'에 출연한 미국 힙합 뮤지션 JID. 사진/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결은 조금 달랐으나 다음날 다른 공간에서도 '마법' 같은 체험을 했다. 7일 저녁 서울 이태원 현대카드 뮤직 라이브러리에서 열린 '하우스 오브 반스'의 마지막 공연 순서. 2010년부터 활동을 시작, 현재 무섭게 떠오르고 있는 미국의 힙합 뮤지션 JID의 첫 내한. 검은 레게 머리를 치렁거리며 무대에 오른 그는 이날 무대를 뒤집어 놓다시피 했다.
그의 음악은 주로 트램펄린처럼 통통 튀는 소리의 랩핑이 핵심. 동시에 Jay-Z와 같은 미 동부 힙합 비트, 악틱 몽키스와 같은 록적 폭발이 교묘히 결합된 음악이다. 실제로 주요 외신에 따르면 그는 이와 같은 뮤지션들에게 큰 영향을 받았다고 고백한 바 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지난해 말 2019년을 빛낼 가수로 그를 조명하며 "현 시대에 기술적으로 가장 감명 깊은 미국의 래퍼"라며 "트랩과 올드 스쿨의 합과 릴 웨인의 목소리를 뒤튼 듯한 랩핑이 아주 기술적"이라고 평가했다.
DJ의 믹스 비트에 맞춰 그가 '폭격기' 같은 랩핑을 쏟아냈다. 음악이 부리는 또 한 번의 '마법' 같은 순간. 국적 막론의 경도된 힙스터들이 일제히 광신도처럼 두 팔을 치켜 들었다.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