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태의 경제편편)삼성 스스로 부지런하면 된다
2019-09-04 06:00:00 2019-09-04 06:00:00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다시 서울고등법원으로 출두해야 할 상황이 됐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에 연루된 이 부회장의 상고심에서 대법원이 2심을 파기하고 다시 재판해야 한다고 판결했기 때문이다. 이 부회장에게는 불리한 판결이다. 그에게 적용된 3가지 핵심적인 혐의 가운데 2가지가 ‘유죄’ 낙인을 받았다. 
 
이 부회장은 최근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몹시 분주하게 움직였다. 삼성그룹의 여러 사업현장을 찾아가는가 하면, 일본이 경제보복을 감행할 무렵에는 일본으로 날아기도 했다. 외관상 올 들어 실적부진과 경제보복 등으로 인한 삼성그룹과 한국 경제의 어려움을 타개하는 데 힘을 보태려는 행보였다. 그렇지만 동시에 대법원 재판을 염두에 둔 행보로 읽혔다. 자신의 노력을 참작해 달라는 무언의 메시지 같았다.  
 
그러니 이번 대법원 판결은 그에게 실망과 낙담을 안겨줬을지도 모른다. 또는 ‘나름대로 애썼는데 그 대가가 이뿐인가’라면서 속으로 부글부글 끓어오를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더욱이 2심 재판이 열리면 이 부회장이 재구속될지도 모른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물론 그것은 최악의 시나리오다. 그러나 그것은 논리적 추론일 뿐이다. 그런 시나리오대로 될지는 아직 미지수다.
 
요컨대 이 부회장의 입장에서 볼 때 상황이 불리해진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렇지만 그가 재구속된다고 예단하기는 어렵다. 판사의 ‘작량감경’을 통해 집행유예로 끝낼 여지는 여전히 남아 있다. 
 
게다가 다시 2심 재판을 거쳐 대법원 최종판결이 내려질 때까지 얼마나 긴 세월이 걸릴지 아무도 모른다. 세월이 흐르는 사이에 정치사회적 분위기가 바뀌어 이 부회장의 운신 폭이 넓어질 가능성이 없는 것도 아니다. 재벌에 대한 정부의 태도가 그 사이 바뀌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도 없다. 20년동안 오디세우스를 기다렸던 페넬로페 같은 자세를 정부가 견지할 것이라고 누가 단언할 수 있을까? 한마디로 이 부회장에게는 아직 시간 여유가 충분한 것이다.  
 
삼성도 바로 이런 변화를 은근히 기대할 것이다. 그래서 일단 낮은 자세를 보이려는 것 같다. 지난달 29일 대법원 재판이 끝난 후 "그동안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려 대단히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한 입장문에도 그런 삼성의 속마음이 묻어난다. 삼성은 아울러 "갈수록 불확실성이 커지는 경제 상황 속에서 삼성이 위기를 극복하고 국가 경제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많은 도움과 성원 부탁한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이제는 뻣뻣한 법리대결보다는 차라리 읍소작전으로 바꾼 듯하다. 사실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이런 ‘겸손한’ 입장이 차라리 더 현명해 보인다. 
 
삼성의 태도변화에 대해 평가하기는 아직 이르다. 굳이 평가할 필요도 없어 보인다. 중요한 것은 삼성의 실제 움직임이다. 삼성이 불미스러웠던 과거와는 절연하고 새로운 자세로 국가경제 발전에 이바지한다는 것을 실천으로 보여주면 된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이 격화되는 등 최근 국내외에 누적되는 경제악재도 삼성을 도와주는 듯하다. 일본이 한국의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산업을 겨냥해 날린 경제보복 화살을 삼성은 지금 최전선에서 맞고 있다. 정부도 이런 상황을 외면할 수 없다. ‘경제왜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삼성을 비롯한 대기업의 협조도 필수적이다. 이처럼 어려운 상황과 여건이 이재용 부회장의 신상에는 우호적으로 작용할 개연성이 커 보인다. 
 
국가경제에 이바지한다는 것이 단순히 홀로 기술개발 많이 하고 공장만 많이 짓는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스스로의 생존을 위해서도 그것은 더욱 열심히 해야 한다. 거기서 머무르지 않고 선진적인 지배구조와 경영정신으로 모범을 보여야 하는 것이다. 다른 재벌은 물론 중소기업과 새로운 창업자들에게도 귀감이 될 수 있는 선례를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해야 정부와 국민의 호의를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고대 그리스의 철인 플라톤이 상상력 풍부한 말년의 저서 <티마이오스>에서 강조했듯이, 자신을 알고 자신의 일을 행하는 것이 최고의 지혜다. 그렇게 하면 뜻하지 않게 행운의 여신이 미소지을 수도 있다. 이 부회장과 삼성그룹이 지금 좌고우면하지 말고 자신의 일을 부지런히 하면 되는 것이다. 그것이 이 부회장에게도 유익할 것이다. 
 
걱정되는 마음에서 덧붙인다면, 대법원 판결이 불리하게 내려졌다고 이 부회장이 그 이전에 보여주던 행보를 그만두면 곤란하다. 그러면 진심을 의심받는다. 지금 필요한 것은 일관성이다. 
 
차기태 언론인(folium@nate.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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