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인디씬의 ‘찬란한 광휘’를 위해 한결같이 앨범을 만들고, 공연을 하고, 구슬땀을 흘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럼에도 TV를 가득 메우는 대중 음악의 포화에 그들의 음악은 묻혀지고, 사라진다. ‘죽어버린 밴드의 시대’라는 한 록 밴드 보컬의 넋두리처럼, 오늘날 한국 음악계는 실험성과 다양성이 소멸해 버린 지 오래다. ‘권익도의 밴드유랑’ 코너에서는 이런 슬픈 상황에서도 ‘밝게 빛나는’ 뮤지션들을 유랑자의 마음으로 산책하듯 살펴본다. (편집자 주)
잠비나이는 국내에서보다 해외에서 알아보기 시작한 밴드로 잘 알려져 있다. 해마다 평균 30개 이상의 국가를 돌며 한국을 대표하는 밴드로 무대에 오른다.
2014년 미국 사우스바이사우스웨스트(SXSW), 영국 글래스톤 베리를 시작으로 호주, 프랑스, 스페인, 아일랜드, 덴마크, 칠레, 포르투갈 등의 세계적 페스티벌에 참가했다. 올해 초에는 혁오, 블랙핑크와 함께 미국 최대 음악 축제 ‘코첼라 페스티벌’에도 초청돼 화제가 됐다.
29일 플랫폼창동61에 위치한 이들의 작업실에서 해외 반응이 그토록 뜨거운 이유를 물었다. 잠시 고민하다 멤버들은 소신껏 말을 이었다.
“(보미)미국이나 유럽을 가보면 다른 취향에 굉장히 열려 있다는 느낌이 있어요. 다른 사람과 같아지지 않을 수 있는 것들을 찾아 듣고 즐기는 그런 문화요. 그렇기 때문에 자기 음악을 하는 팀이거나 독특한 소스를 갖고 있는 팀이라면 더 좋아해주시는 것 같고, 인지도가 점점 생길 수 있는 것 같아요.”
“(일우)외국에선 관객들 반응도 굉장히 적극적인 편인 것 같아요. 자기 흥에 취하면 춤도 추고 소리도 지르고. 대체로 공연장 에너지가 굉장히 세서 좋게 작용했던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는 영국 악탄젠트 페스티벌에서 했던 공연이 인상적이었어요. 마지막 곡까지 했는데도 ‘Ten more song(텐 모어 쏭)’ 이라며 난리가 났었어요. 정말 뿌듯했던 기억이에요.”
2016년 공연 후 해외 팬들과 사진을 찍고 있는 밴드 잠비나이. 사진/플랫폼창동61
지난해 밴드는 세계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평창 동계올림픽의 폐막식 무대에 서기도 했다. 한국적이면서도 세계적인 소리로 완성된 곡 ‘소멸의 시간’을 연주하며 전 세계에 조화와 화합의 의미를 전했다.
“(재혁)당일 본식에 들어가니 정말 공연을 하는구나 싶더라고요. 무대 정중앙에 우리가 있는데 마치 세계의 중심에 서 있는 느낌이었어요. 우리가 뭔가 해냈구나 싶었고,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될 것 같아요.”
“(은용)저 역시 거문고를 연주하지만 80여명의 거문고 연주자들과 협연을 해본 건 처음이었어요. 연주자분들은 대체로 고등학생, 대학생이었는데 숙소가 춥고 열악했는데도 서로 으쌰으쌰 하던 분위기가 인상적이고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어요.”
“(일우)평창 올림픽 무대에 선다는 자체 만으로 너무나도 영광이었고 기뻤죠. 연습하는 과정도 재밌고 행복했던 것 같아요. 강원도 지역이라 춥기도 했지만 근처 바닷가에서 해산물도 먹고 올림픽도 같이 보고. 재밌었어요.”
평창올림픽 폐막식 때 잠비나이의 무대. 사진/유튜브 캡처
올해는 상반기에 정규 3집 앨범을 내고 본격 활동할 계획이다. 1, 2집이 시끄럽고 반항적인 소리들이었다면 이번 앨범에는 상대적으로 '긍정의 소리들'이 담겼다.
“(일우)얼마 전 잠비나이 단독공연에 왔던 부모님께서 신곡을 들으시더니 ‘굉장히 밝다’ 하시더라고요. 기존 앨범들보다 ‘긍정적인 사운드’인 건 맞는데, 그렇다고 또 대책 없이 명랑하고 밝은 것만은 아니에요. 기존 앨범에서 보였던 분노나 불안 같은 감정이 수그러 든 느낌. 뒤에서 배킹으로 존재하던 베이스와 드럼도 이제는 부각될 거에요.”
지난달 말 발표한 선공개곡 ‘스퀘어 웨이브(Square Wave)’는 앨범의 방향을 살피기 좋은 곡이다. 멤버들의 연주 하나, 하나가 이제는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마치 기계의 ‘부품’처럼 맞물려 돌아간다.
밴드는 곡을 발표할 때마다 영상이나 무용 등 타예술과의 접점도 만들곤 했다. 대체로 밴드의 곡을 관심 있게 들은 아티스트들이 먼저 요청을 해오는 경우가 많았다. 이번 3집에서는 뮤직비디오, 앨범 재킷에서 신경을 써보려는 생각도 갖고 있다.
“(일우)아티스트로서 함께 작업하는 분들의 생각을 존중하는 편이에요. 영상이나 무용이나 저희가 어설프게 아는 것으로 이렇게, 저렇게 해달라고 하는 건 큰 실례라 생각하거든요. 신뢰나 소통을 기반으로 믿고 맡기는 식으로 진행하는 편인 것 같아요.”
밴드 잠비나이의 공연 모습. 사진/플랫폼창동61
잠비나이든, 그들의 음악이든 하나의 여행지라고 가정했을 때 어떤 곳에 비유가 될 수 있을까. 질문을 던진 후 몇초간의 정적이 흐른 끝에 재혁이 대표로 입을 열었다.
“(재혁)해외 투어 일정이 많아서 그런지 이런 대답을 하게 될 수도 있는데요. 저는 듣도 보도 못한 무인도 같은 느낌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대체로 저희 음악을 처음 듣는 분들이 그렇거든요. 인트로 듣다 ‘어? 얘네 뭐야? 나 잘못 들어왔나. 지금 그냥 나가야 하나’라는 생각을 하실 거고, 2~3번째 곡까지 가면 조금 적응해서 공연을 즐기시기도 할 것이고.”
“마치 잘못 찾아왔는데 나만 알고 싶고 또 가야지 하는 매력 있는 낯선 섬처럼요. 그런 공간이 우리의 음악이 아닐까 싶어요.”
다른 의견은 없냐 묻자 다른 멤버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 짓는다.
“너무 적절한 것 같네요.” “너무 좋은 것 같습니다!”
1월29일 플랫폼창동61에서 만난 잠비나이. 사진/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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