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성휘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한반도 비핵화 및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보폭을 넓히고 있다. 북미협상의 ‘중재자’ 역할에 그치지 않고 비핵화 로드맵을 주도하는 한반도 ‘운전자’로서 가속페달을 밟는 모양새다.
문 대통령은 최근들어 한반도 문제를 남북미뿐만 아니라 국제사회 전체 이슈로 부각시키는 데 주력 중이다. 금방이라도 성사될 것 같았던 2차 북미 정상회담이 미국 중간선거일인 11월6일 이후로 미뤄지고, 북미 간 비핵화 실무협상이 진전을 보지 못하면서 직접 비핵화 추동력을 확보하려 나선 것으로 보인다.
프랑스를 국빈방문중인 문 대통령은 15일(현지시간)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고 북한의 비핵화 진정성을 설명하고 프랑스와 유엔 등 국제사회의 적극적인 역할을 당부했다. 프랑스는 미국, 중국, 러시아, 영국과 함께 ‘거부권’(비토, Veto)을 가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이다.
18일에는 교황청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을 예방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북한 초청의 뜻을 전한다. 전 세계 13억 천주교(가톨릭) 신자들의 최고지도자인 교황이 초청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에 적극 지원의 뜻을 밝힌다면 비핵화는 물론 북한의 개혁·개방 행보도 한층 탄력을 받을 것으로 기대된다. 18~19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리는 아시아와 유럽, 두 대륙 정상들의 모임인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 아셈)에서도 50여개국 정상들이 모인 가운데 한반도 평화체제 조성을 위한 협조를 요청할 것으로 예상된다.
문 대통령은 외신과 접촉도 넓히며 광폭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유럽순방을 계기로 영국 BBC, 프랑스 르피가로와 인터뷰를 하고, 교황청 기관지(로세르바토레 로마노)에 16일 특별 기고문을 싣는다. 지난달 UN총회 참석차 미국 뉴욕을 방문했을 때는 폭스뉴스와 인터뷰했다. 문 대통령은 이들 매체와 만나 “김 위원장이 체제안전을 보장받는 대신 핵을 포기하겠다는 전략적 결단을 내린 것”이라며 “북한은 비핵화 합의를 어길 경우 미국과 국제사회로부터 받게 될 보복을 감당할 능력을 갖고 있지 않다”면서 북한의 비핵화 진정성을 대변했다.
일각에선 그간 협상을 이끌어온 미국이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문 대통령이 비핵화 드라이브에 더욱 적극적으로 임하게 된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그 계기로 지목되는 것이 지난 7일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방북 및 방북결과 설명을 위한 청와대 방문이다. 문 대통령은 바로 다음날인 8일 국무회의에서 북러-북중-북일 정상회담 가능성을 언급했다. 대통령이 타국의 외교일정을 공식석상에서 언급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문 대통령은 “한반도에 새로운 질서가 만들어지고 있다”면서 “지구상에 남은 마지막 냉전 체제를 해체할 수 있도록 미국 외의 다른 관련국들과 협력해 나가는 데에도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며 정부의 주도적 역할을 강조했다.
여기에 강경화 외교부장관은 10일 외교부 국정감사에서 “관계부처와 5·24 조치 해제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무감각이 부족한 강 장관의 말실수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지만, 여론반응을 살피기 위해 여권이 일종의 ‘합’을 맞춘 것 같다는 시선도 있다. 다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그들은 우리의 승인(approval) 없이는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라고 외교결례에 가까운 말로 선을 그었다. 미 재무부도 국내 은행들에게 대북제재 준수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재인 대통령이 14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르 트레지엠 아트 공연장에서 열린 한-불 우정콘서트를 관람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이성휘 기자 noirciel@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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