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광표 기자] 유통업계가 각종 규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골목상권과의 상생 프레임을 앞세운 규제 폭탄이 유통 대기업에 집중 투하되고 있다. 특히 규제 종합세트인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 통과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라 유통업계가 극도의 긴장국면에 놓여 있다.
14일 업계에 따르면 제20대 국회는 '유통산업발전법 일부개정법률안'에 대한 연내 통과를 추진 중이다. 이 개정안에는 30여건의 규제 법안이 무더기 발의돼 있는 상황이다. 일부 안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전통시장 상권을 보호하기 위해 대기업의 골목상권 진출을 규제하고, 대형마트에 이어 복합쇼핑몰까지 의무휴업 대상에 포함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특히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1월 대표발의한 유통산업법 개정안은 각종 규제를 한 데 모은 '종합 유통규제 개정안'으로 꼽힌다. 이 법안의 주요 내용은 전통상업보존구역을 전통시장 등 기존 상권이 형성된 지역인 상업보호구역으로 확대 개편하고 상업진흥구역을 신설하는 내용을 담았다.
이어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의 계열회사 또는 일정면적 이상의 복합쇼핑몰에 대해 지방자치단체장이 영업시간 제한을 명하거나 의무휴업일을 지정할 수 있도록 했다. 또 상권영향평가서의 대상업종 확대 내용을 담고 있다. 홍 의원을 비롯해 국회 대다수 의원들이 규제 일변도의 법안을 추진하면서 유통업계가 궁지에 몰리는 형국이다.
서비스업으로 분류되는 유통산업은 그동안 정부 규제로 인한 타격이 적지 않았다. 대형마트는 의무 휴업 이후 출점이 거의 멈춰섰고 기존 대형마트도 일부 폐점 및 구조조정을 단행 중이거나 창고형 할인점으로 변경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여기에 최근엔 복합쇼핑몰도 의무휴업을 적용하겠다는 법안까지 새롭게 추진되면서 업계의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은 연내 통과될 공산이 크다는 게 정치권과 업계 안팎의 전망이다. 여·야를 떠나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는 여론을 의식해 법안을 저지할 명분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유통업계 내부에선 "유통산업발전법이 아니라 성장에 발목을 잡는 유통산업발목법이 돼 가고 있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1997년 처음 등장한 유통산업발전법은 제정 당시에는 '규제'보단 '성장'에 방점을 뒀었다. 하지만 20년을 지나는 동안 정권의 성향에 따라 혹은 정치권이 활용하기 좋은 포퓰리즘 수단이 되며 개정을 반복해왔다.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의 변천사를 들여다보면, 2010년 11월에는 전통상업보존구역 지정 제도가 신설됐고, 전통시장 경계로부터 500미터 이내에는 대형마트나 SSM 출점이 금지됐다. 이듬해인 2011년에는 전통상업보존구역 지정 범위가 기존 500미터에서 1킬로미터로 확대됐고, 2012년 들어서는 대형마트와 SSM의 영업시간 제한(00~08시) 규정이 신설됐다. 의무휴업일 규정도 이 때 생겨났다. 2013년에는 영업시간 제한이 오전 10시로 연장됐고, 의무휴업일도 매월 2회로 명시됐다. 대형 유통업체들의 성장세도 이 때부터 본격적으로 꺾이기 시작했다. 특히 최근 몇 년 사이에는 영업제한이나 휴업 등 직접적인 제재에서 벗어나 신규 출점 기준을 강화하는 쪽으로 규제가 강화돼 대형마트는 완전한 사양산업으로 저무는 분위기다.
일각에선 이같은 유통규제의 목적이 골목상권 보호와 전통시장 활성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정작 뚜렷한 효과는 거두지 못해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실제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이 발표한 '전통시장·상점가 및 점포경영 실태조사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전통시장 당일 평균 매출액은 2013년 4648만원에서 2016년 4988만원으로 약 3.7% 증가하는데 그쳤다. 하루 평균 전통시장을 찾는 소비자 수는 4170명에서 4486명으로 약 3.2% 늘었다. 2013년부터 2016년까지 소비자 물가상승률이 4.0%인 점을 감안하면 전통시장 매출 상승률이 물가 상승률에도 미치지 못하는 셈이다.
소비자 후생 측면에서도 부정적 여론이 늘고 있다. 대형마트나 SSM의 영업시간이 단축되고 의무휴업 제도가 도입되면서 소비 활동이 더 불편해졌다는 목소리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대다수의 가구가 맞벌이 부부인 상황에서 주말에 몰아서 장을 보는데 소비권리가 제한되고 있다"는 불만이 지속되고 있다.
이에 학계와 업계 안팎에선 유통산업발전법이 규제에만 매몰될 게 아니라 대기업과 골목상권이 함께 성장하는 '상생'에 방점을 두는 프레임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도 높아지고 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골목상권 활성화를 목적으로 무작정 대형 유통업체에 대한 규제만 해왔는데 정작 실효성이 없다"며 "규제만 외칠 것이 아니라 상생할 수 있는 모델을 개발하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다. 정치권과 업계가 머리를 맞대고 이같은 환경을 조성하려는 노력이 시급해 보인다"고 강조했다.
이광표 기자 pyoyo81@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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