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결정을 연기했다.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결과다.
국민연금은 26일 기금운용운용위원회를 열어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을 의결할 예정이었다. 오랜 시간 연구용역과 내부 검토를 거치고 공청회를 통해 경제계와 시민사회 등 각계의 의견을 수렴했다는 점에서 의결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경영 참여와 관련한 주주권 행사를 두고 의견차가 좁혀지지 않으면서 의결이 무산됐다. 국민연금은 지나친 경영 간섭 우려와 운용상의 제약 등을 고려해 경영 참여를 제외한 주주권부터 순차적으로 행사하기로 했었다. 이날 의결하려던 도입안도 같은 내용이다. 하지만 일부 위원이 경영 참여 주주권 행사가 포함돼야 한다고 주장했고 이에 반대하는 의견이 나오면서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
전체적인 합의를 중요하게 생각해 한번 더 논의하겠다는 것을 비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미 오래전부터 노출된 이슈에 발목이 잡혔다는 것은 문제다.
정부가 각계의 다양한 이해를 조율하는 데 실패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경영 참여에 대한 이견은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논의 당시부터 계속 있어왔다.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에 대한 연구용역 보고서가 나온 뒤로만 따져봐도 벌써 수개월이다.
기금운용위 회의 날짜를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의 국회법제사업위원회 일정과 겹치도록 잡은 것에 대해서도 정부가 안일한 태도를 보인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은 그동안 외풍에 시달리며 소극적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던 국민연금 운용에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다. 박 장관의 말처럼 정치·경제 권력으로부터 독립적이고 투명한 의사결정 구조를 만들어 기금의 수익성을 높이는 동시에 국민연금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첫걸음이기 때문이다. 첫발을 떼지 못하면 앞으로 나갈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이지만 도입에 힘을 실어주고 있는 것은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일가의 갑질 사태 등으로 눈높이가 높아진 사회적 요구다. 관계자들의 합의와 부작용 최소화도 중요하지만 사회적 분위기에 호응하기 위한 확고한 의지와 속도감 있는 실행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방향이 맞다는 확신이 있다면 지나치게 눈치를 살필 필요도 없다. 우리나라의 기업문화가 선진화돼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를 국민연금이 더욱 심각하게 인식해야 할 시점이다.
전보규 증권부 기자 jbk8801@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