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광역시가 추진 중인 '광주형 일자리' 사업에 현대자동차가 참여하기로 했다. 광주시가 사업주가 되어 자동차 공장을 세우고, 현대차는 이 공장에 자동차 생산을 맡기는 모델이다. 현대차는 이미 참여 의향서를 광주시에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위탁생산은 이미 여러 업종에서도 흔히 사용되는 방식이다. 이를테면 화장품에서도 제품 생산만 전문으로 하는 업체가 있는가 하면, 경쟁업체에게 생산을 위탁하기도 한다. 최근 분식회계 논란에 휩싸인 삼성바이오로직스도 사실은 바이오 의약품을 위탁생산하는 업체다.
위탁생산을 통해 발주자는 저렴한 비용으로 생산할 수 있고, 수주자는 안정적인 일감을 확보할 수 있다. 나아가 광주시로서는 지역 노동자의 채용이 늘어나는 등 지역경제를 활성화할 기폭제가 될 수도 있다. 현대차의 경우 광주공장에서 전기차나 수소차 등 친환경차의 생산을 맡길 가능성이 점쳐진다. 기존의 사업장보다 훨씬 낮은 인건비로 생산할 수 있으니 마다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현대차 노조는 반대 의사를 밝혔다. 정규직 임금 수준을 하향 평준화시키고 조합원들의 고용 불안을 초래한다는 것 등이 반대의 주된 이유다. 실제로 광주공장에 고용되는 노동자는 기존의 현대차 노동자들 임금에 비해 상당히 낮은 수준에서 책정될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다. 절반 수준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따라서 앞으로 현대차 노사가 이 사업을 둘러싸고 갈등을 겪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
어쨌든 현대차는 지금까지의 고임금과 고생산비 구조에 대해 한계를 느끼고 방향 전환을 모색하기 시작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군산공장을 폐쇄한 한국지엠처럼 극단적 선택을 할리는 없지만, 어떤 방법으로든 국면을 타개해 보고 싶은 속내가 엿보인다. 광주형 일자리 사업은 국면 타개를 위한 우회적인 방법이라 할 수 있다. 한국지엠 구조조정에 이어 광주형 일자리 사업이 본격화되면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의 고임금 고비용 생산구조에도 큰 변화가 초래될 것으로 보인다. 전면적인 붕괴는 아닐지라도 일각이 무너질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나아가 광주형 일자리 모델이 성공적으로 안착할 경우 다른 지방자치단체에도 자극을 줄 것이다. 이를테면 현대중공업에 이어 한국지엠이 떠난 군산과 전북 역시 강한 의욕을 갖게 될 것이다. 다른 제조업체들도 해외공장 설립을 꾀하지 않고 그런 모델을 따르는 지역을 찾으려 할 가능성도 있다. 이렇듯 광주형 일자리 사업은 광주광역시나 현대차뿐만 아니라 국내 산업 전반에 걸쳐 예사롭지 않은 변화를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사실 현대차가 고임금 같은 요인을 탓하지 않고 세계시장에서 앞선 기술과 우수한 품질로 압도적인 경쟁력 우위를 차지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일이다. 그런 소망스런 방향으로 가지 않고 광주형 일자리 모델을 찾는다는 것 자체가 이미 자신감 상실을 의미하는 것 같아 걱정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지금 상황에서 광주형 일자리가 유력한 돌파구가 될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현대차가 한국지엠의 경우처럼 극단적인 상황에 몰린 것은 물론 아니다. 그렇지만 현대차도 국내외 판매 부진으로 여전히 힘들어하고 있지 않은가. 게다가 만약 미국이 공언한 대로 수입차에 25%의 고관세를 부과한다면, 현대차는 심대한 타격을 입을 것이 자명하다. 그러니 결코 한가한 상황은 아니다.
국내 자동차 시장에 새로운 환경이 조성되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이미 수입차들이 가성비를 앞세워 물밀듯이 들어오고 있다. 구조조정을 마무리한 한국지엠은 앞으로 국내시장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더 공격적인 판매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르노삼성은 SM3 승용차의 가격을 75만~115만원까지 인하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앞으로 국내 시장에서 가성비 경쟁이 예전보다 더 치열하게 벌어질 가능성이 점쳐진다.
그런데 현대차 노조는 노사 협상을 진행하면서 지난해 순이익의 30%를 성과급으로 지급하라고 요구했다. 지난해 순이익이 4조5000여억원이었으니 1조3000여억원을 내놓으라는 것이다. 현대차가 그처럼 거액의 성과급을 지급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오히려 가성비를 높이기 위해 제품 가격을 인하하는 것이 순리일지도 모른다.
이제 국내 자동차 산업 안팎에는 적지 않은 변화가 일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 변화의 흐름을 ‘진실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현대차도 예외는 아니다. 노사는 물론이고 소비자와 투자자가 모두 공감할 수 있는 대응 방안이 필요하다.
차기태(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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