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정기종 기자] 해외제품 의존도를 벗어나 '백신주권'을 확립 중인 국내 제약사들이 세계무대 입지 강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연간 4조원 규모의 국제기구 의약품 조달시장에서 존재감을 키우는 한편, 신규 진입을 위한 전문회사 설립에 나서는 등 잰걸음을 하고 있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GC녹십자와 LG화학 등 국내 제약사가 제조한 백신들이 국제기구 조달시장에서 영향력을 키우고 있다. 국제기구 조달시장의 경우 규모가 방대하고 공급이 안정적인 만큼 회사마다 입지 강화에 힘을 기울이는 모습이다.
GC녹십자는 수두와 독감 백신에서 두각을 보이고 있다. 특히 녹십자가 지난 1993년 전 세계에서 두번째,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개발한 수두 백신의 경우 2017~2018년 범미보건기구(PAHO) 수두백신 입찰에서 약 725억원 규모를 수주하며 PAHO 수두백신 전체 입찰분의 66%를 차지했다. PAHO는 세계보건기구(WHO) 산하기관으로 유니세프와 함께 세계 최대 백신 수요처 중 하나로 꼽힌다. 같은 기간 독감백신도 약 497억원 규모의 입찰에 성공하며 합계 1200억원 이상의 성과를 냈다.
B형간염과 뇌수막염 백신 등을 국산화 하는데 앞장 선 LG화학 B형간염 백신 부문에서 존재감을 나타내고 있다. 유엔 구호물량의 절반 이상을 자사 제품으로 채우며 세계 70여개 국가에 수출을 진행 중이다.여기에 지난해 10월에는 자체 개발한 유펜타 백신이 유니스페 입찰에서 약 900억원 규모의 계약을 따내기도 했다. 유펜타 백신은 디프테리아와 뇌수막염 등 5개 질병을 예방할 수 있는 백신이다. 또 글로벌 기업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인 빌 게이츠와 그의 부인이 설립한 세계 최대 자선단체 '빌&멜린다 게이츠 재단'이 소아마비 백신 개발 프로젝트에 140억원을 지원하기도 했다.
최근 백신사업부 독립을 본격화하며 글로벌 백신업체로의 발돋움에 시동을 건 SK케미칼 역시 국제기구 조달시장을 노리고 있다. 전 세계 두번째로 대상포진 백신 '스카이조스터' 개발에 성공하며 기술력을 입증한 SK케미칼은 백신 전문업체 출범을 통해 국제기구 조달시장 진출을 위한 추진력을 얻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SK케미칼 백신사업부는 최근 지속적으로 세계보건기구(WHO) 필수의약품 조달시장 사전적격심사(PQ) 인증에 공을 들이고 있다. WHO PQ는 국제기구 의약품 조달시장에 참여하기 위한 전제조건으로 의약품의 안전성과 유효성 등을 평가하는 심사다. 이밖에도 DK케미칼은 백신 파이프라인 가운데 3종을 상용화했으며 로타바이러스와 자궁경부암, 장티푸스, 수두 백신 등을 개발 중이다.
이 같은 국내 기업의 해외무대 진출 박차는 안정화 단계에 접어든 국산 백신 자급률과 관계가 있다. 국내 백신 자급률은 지난 2014년 32% 수준에 불과했다. 병원균을 약화시킨 바이러스를 사람 몸에 직접 주입하는 백신 특성상 요구되는 높은 기술 경쟁력이 부족했던 탓이다. 때문에 대부분의 수량을 글로벌 제약사 제품에 의존해왔다.
하지만 지난 2009년 신종플루 사태 이후 정부 차원에서 백신 자급률의 중요성에 무게를 싣기 시작하면서 국산 백신 개발에 속도가 붙었다. 정부는 지난 2010년 '글로벌 백신 제품화 지원단'을 출범, 국내사들의 효율적 백신 개발을 지원했다. 제품 개발을 위한 허가 및 심사, 임상시험, 의약품 제조 및 품질관리(GMP) 등에 대한 맞춤형 기술을 지원하는 식이다.
이후 GC녹십자와 SK케미칼 등이 신종플루백신과 디프테리아, 대상포진 백신 등을 잇따라 개발해내면서 2009년 7개에 불과했던 국산 백신은 지난해 14종으로 2배로 껑충 뛰었다. 전세계에서 생산되는 28종의 백신 가운데 절반을 국내에서 생산 가능하게 된 셈이다.
업계 관계자는 "국제기구 조달 시장의 경우 개발도상국 등으로 들어가게 되는 만큼 입찰에 성공해도 기술문턱이 높은 선진시장 진입에 큰 도움이 되진 않지만 중남미와 아시아 등 방대한 3국 시장으로의 진출이 용이한 이점이 있다"고 말했다.
SK케미칼 연구원이 대상포진백신 배양을 위한 공정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SK케미칼
정기종 기자 hareggu@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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