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칼럼)금융혁신, 또 국회 핑계댈 건가
2018-03-29 08:00:00 2018-03-29 08:23:04
이종용 금융팀장
문재인 대통령이 헌법 개정안을 국회에 발의하면서 정치권이 '개헌 소용돌이' 속으로 급속히 빨려 들어가고 있다. 여기에 오는 6월 치러지는 지방선거에 현 정부의 '중간평가'라는 의미까지 곁들여지면서 여야당 모두 사활을 건 총력전을 대비하고 있다.
 
헌법 개정과 지방선거 이슈는 정치권뿐만 아니라 금융권의 이슈도 빨아들이는 강력한 흡입력을 지니고 있다. 실제로 기자는 요즘 '선거철'이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차기 금융감독원장의 인선 향방이나 금융정책 방향을 취재할 때도 '선거철을 앞두고'라는 말은 어김없이 등장했다. 지방선거 전후로 관가의 상황을 지켜봐야 한다는 의미이겠지만, 금융현안 처리 문제가 정치논리에 그만큼 많은 영향을 받는다는 얘기도 된다.
 
문제는 정치 이슈에 밀려 국회에 묻혀있는 금융 현안 법안들이다. 현재 금융소비자들의 권리를 제고하고 금융회사의 경영 환경을 혁신시킬 수 있는 다수의 각종 금융 법안들이 국회 문턱에 막혀 있다. 선거와 개헌 이슈로 뜨거운 여의도에서 금융법안의 처리 방향을 묻는 게 '한가한 얘기'가 돼 버렸다.  
 
금융업의 혁신을 가져올 수 있는 법안이 국회에서 뒷전이 됐지만, 이 법을 관장해야 할 금융당국이 사실상 손을 놓고 여의도만 바라보고 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굵직한 정치 이슈를 놓고 정당이나 의원 간의 이해관계를 감안할 때 즉각적인 대응이 지금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실제로 금융당국이 야심차게 발표했지만 수개월째 법안만 발의된 채 방치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금융당국이 적극 밀어붙였던 인터넷전문은행의 자본 확충을 위한 은산분리 규제 완화안은 국회에 14개월째 계류돼 있는 상태다. 금융위원회가 은산분리 규제 기반의 '금융혁신지원특별법'을 발의하면서 뒷전으로 빠지는 모양새다.
 
금융사들의 불완전판매에 따른 소비자 피해를 막는다는 내용으로 구성된 '금융소비자 보호법'은 작년 5월 발의됐지만 10개월째 계류 상태다. 법안 통과가 되려면 금융감독원장이 금융위나 국회 정무위원회를 오가며 협의를 이끌어 낼 필요가 있다. 그러나 최흥식 전 금감원장이 채용비리 의혹으로 지난 13일 사퇴하면서 추진동력이 사라졌다는 전언이다.
 
올해 들어서는 금융위원회가 '금융혁신지원특별법'과 '신용정보법 개정'을 대표적으로 내걸었다. 특히 신용정보법 개정안의 경우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직접 공들였다고 알려진 '금융분야 빅데이터 산업 발전'과 관련된다. 빅데이터 활용 방안에는 통신비나 공과금 내역 등을 신용평가에 활용할 수 있게 해 금융소외층의 신용등급을 올려주겠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신용정보법 개정과 관련해선 금융위나 국회 상임위에서 논의는 전무하다. 신용정보법 개정 등을 위해서는 여야당의 협조가 필수적인데, 벌써부터 시민단체 등을 중심으로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우려로 반발 기류가 강하다.
 
이렇듯 문재인정부들어 순항할 듯했던 금융혁신이 공회전하는 느낌이다. 지난해 말 법정금리 인하, 신용카드 가맹점 수수료 인하 등 민생 조치가 이어질 때만 해도 금융혁신에 청신호가 들어오는 듯했지만, 채용비리 의혹으로 수장 인선이 고이고, 정치적 이슈가 몰아치면서 대응이 느려지고 있다. 
 
금융당국 공무원들이 국회 탓을 하는 기저에는 지방선거 직전후에 단행될 것으로 보이는 개각과 정부조직 개편 가능성에 더 신경쓰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선거철에 발생하는 인사 수요에서 금융위원장이 계속 자리를 지킬 수 있을지, 금융감독원 수장은 언제, 누가 내려 올 것인지 더 큰 쟁점이 됐다는 것이다.
 
이 같은 현실은 금융당국 공무원의 복지부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 정치 지형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고 수장의 임기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지금 당장 국회로 달려갈 필요가 있냐는 인식이 만연할 수밖에 없다. 입법기관을 무시하고 금융당국 재량으로 밀어붙이라는 뜻이 아니다. 국회 핑계를 대지 않고 할일은 하는 관료의 모습을 보고 싶을 뿐이다.
 
이종용 금융팀장 yong@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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