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IMF 외환위기가 일어난지 꼭 20년이 되는 해이다. '6·25 이후 최대의 국난'이라 불렸던 IMF 외환위기는 기존의 금융, 회계, 기업경영의 패러다임은 물론 경제, 사회 전반의 근간을 완전히 바꾸어 놓는 계기가 되었다. 여러 이해관계자(stakerholder)간의 합의와 공동체를 강조하는 일본 및 독일중심의 이해관계자중시 자본주의 체제는 주주이익의 극대화와 고용의 유연성을 중시하는 영미식의 주주중시 자본주의로 대체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경제의 효율성과 투명성을 높였지만 양극화와 고용불안이라는 부작용을 야기했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IMF 외환위기는 기업과 국가의 외환보유고 부족이 직접적인 원인으로 알려져 있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과거 고도성장 과정에서 누적된 병폐, 즉 대기업중심의 호송선단형 경영, 외형확충과 차입경영, 비효율적인 기업지배구조와 불투명한 회계, 이로 인한 금융기관의 부실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였다. 특히, 외형중시경영의 산물인 과잉설비(over-capacity)는 과잉생산과 과잉고용, 과당경쟁을 초래하여 결국 기업의 생산성을 악화시켰고 고비용·저효율의 경제구조를 고착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IMF 구제금융하의 구조개혁은 이 같은 고비용·저효율의 산업구조 개선에 초점을 맞춘 것이었다. 정부는 대기업들로 하여금 부채비율을 200% 이하로 낮추도록 하는 한편, 빅딜(big deal)을 통해 핵심 계열사 위주로 사업구조를 재편하도록 유도했다.
그러나 문제는 이 같은 구조조정이 상시화 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글로벌 경기 회복세와 맞물려 정부의 수출주도 정책이 성과를 내면서 무역수지가 곧 흑자로 반전되었다. 이 덕분에 외환 보유고가 크게 늘어 IMF 구제금융을 단기간에 극복하였지만, 이로 인해 구조조정의 시계도 그대로 멈춰 버렸다.
이후 2007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세계 경제가 또다시 어두운 터널로 진입하는 과정에서 선제적·상시적 구조조정에 안이했던 기업 및 산업이 다시금 어려움에 직면하게 됐다. 대한민국 경제의 최전선에 있던 조선, 철강, 해운, 석유화학, 건설 등의 업종은 취약산업으로 전락했다. 또한 지난해 상반기 기준 외부감사 대상 기업 가운데 영업이익으로 이자비용조차 갚지 못하는 한계기업의 비율이 33.9%에 달할 정도로 부실 위험이 경제 전반에 확산됐다.
우리 경제의 재도약과 활력회복을 위해서는 이들 한계기업 및 취약업종에 대한 상시적 구조조정시스템을 구축하고 더불어 시대흐름에 맞는 산업구조를 설계해 나가야 한다. 과거 고도 성장기의 압축성장과 중후장대형 장치산업 중심의 성장 패러다임은 이미 한계에 봉착하였으며, 성장성과 기술력을 갖춘 다양한 개성을 지닌 신성장기업들이 선도자(first mover)로서 역할을 해야 한다. 따라서 우리 경제의 해법도 이제는 규모의 확대가 아닌 창의와 아이디어로 무장한, 작지만 강한 기업을 육성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기술력과 성장성을 갖춘 '빠른 물고기'를 육성할 수 있는 경제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현재 이들 성장형 기업들이 가장 힘들어 하는 것은 창업이후 기술과 아이디어를 실용화할 때까지 맞게 되는 소위 '죽음의 계곡'을 넘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기술력과 성장성을 보유한 기업의 자금조달 창구인 코스닥시장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과거 수년간 코스닥의 주력 업종은 기존의 자동차와 IT부품에서 바이오와 헬스케어, 디지털 컨텐츠, 소프트웨어 등 신성장산업으로 재편돼 왔고, 앞으로도 이러한 현상은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그동안 코스닥시장은 보다 많은 혁신기업들이 상장을 통해 필요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도록 문호를 확대해 왔다. 특히 금년부터는 '테슬라요건'을 도입해 당장에 이익을 내지 못하더라도 성장 잠재력만으로도 상장이 가능하도록 했다. 이로써 대한민국 경제의 미래를 주도할 수 있는 많은 혁신기업들이 코스닥시장에 진입하게 될 것이다. 테슬라요건은 적자 기업이더라도 성장성이 있으면 코스닥에 상장할 수 있게 해 주는 제도다. 미국의 전기차 업체 테슬라가 적자 상태에서 나스닥에 상장됐고 여기서 조달한 자금을 기반으로 세계적인 기업이 된 성공 사례를 따른다는 의미에서 테슬라라는 이름이 붙었다. 올해부터 시행된 이 제도는 금융위원회가 작년 10월에 발표한 '역동적인 자본시장 구축을 위한 상장·공모제도 개편방안'에 따른 것이다. 기존에도 기술 특례 상장 제도를 통해 적자 기업이어도 기술력이 인정되면 전문평가기관의 기술성과 성장성 평가를 거친 후 코스닥에 상장할 수 있었다. 테슬라요건은 기술성 평가를 받지 않아도 일정 수준 이상의 시장 평가와 영업 기반을 갖춘 경우 코스닥에 진입할 수 있도록 문턱을 더 낮춰줬다.
산업구조 조정은 국가경제의 체질을 개선하고 미래 성장동력을 키우는 외길과도 같다. 기존의 경제논리와 경영패러다임이 지속적으로 도전받고 있는 상황에서 신성장산업에 대한 지원과 육성은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래야 차세대 산업과 그 다음 세대의 산업이 발굴·육성돼 우리 경제가 단절없이 순항할 수 있을 것이다.
김재준 한국거래소 코스닥시장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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