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
국가 분열 상황이 도를 넘고 있다. 전대미문의 최순실 국정 농단 게이트가 불거진 이후 우리 국민들은 매주 토요일마다 광화문 광장을 분노의 함성으로 가득 메우고 있다. 촛불 민심은 국회에서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되도록 만들었고 헌법재판소의 최종 선고를 기다리고 있다. 박영수 특별검사를 중심으로 한 특검팀은 80여 일 동안 게이트와 연루된 인사들을 수사하고 기록에 남을 수준으로 많은 혐의자를 구속하거나 기소하고 마무리를 지었다. 태블릿 PC로 촉발된 이번 게이트는 다수의 국민들을 공분하게 만들었다. 집권여당은 만신창이가 되어 둘로 쪼개지는 수모를 겪기까지 했다. 현 시점에서 차기 대선후보로 가장 앞서가는 후보들은 거의 대부분 야권 진영 쪽이다.
이 모든 결과는 국민으로부터 나왔고 원인 제공자는 박근혜 대통령이다. 국정 농단에 대한 수사가 이루어졌고 우리 국민들은 수사 과정 곳곳에서 무너지고 왜곡된 현 정부의 국정 내용을 적나라하게 확인했다. 없는 사실을 억지로 가져다 엮지도 않았다. 이 와중에 대통령의 입장을 옹호하는 태극기 집회의 규모가 커지고 참여자의 폭도 늘어났다. 태극기 집회에 힘을 업은 탓인지 탄핵 재판의 대통령 측 변호인들의 발언이 강해졌고 때로는 헌법재판관들로부터 제지를 받을 만큼 변론의 수위도 적정선을 넘나들었다. 누구의 옳고 그름을 따지기 이전에 국민들이 그동안 보여 온 높은 수준의 평화적 행동에 대한 폄하는 곤란하다. 그런 측면에서 이제는 차분하게 헌법재판소의 심판결과를 기다려야 한다.
오랫동안 각국의 시위문화를 연구해온 미국 유타대학의 에리카 체노워스는 ‘3.5%의 법칙’이라는 설명으로 비폭력 평화 시위의 효과를 역설했다. 180만여 명의 우리 국민들이 비폭력 평화적 시위를 하게 되면 문제 해결이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민주주의적 절차에 의해 선출된 국가 최고 지도자가 비선이라는 터무니없는 국정 운영을 한 사실이 들통 났지만 국민들은 물리적인 행동으로 분노를 대신하지 않았다. 탄핵국면 내내 가족과 함께, 동료와 함께 평화적인 태도로 일관했다. 물론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태극기 집회의 의견도 존중받아야 마땅하다. 다른 시각을 가지고 다른 해결 방안을 요구하는 목소리 또한 소중한 민심이기 때문이다. 이 사태까지 이르게 된 배경이 무엇일지라도 태극기 집회에서 내놓은 의견 역시 우리 국민들이 탄핵 국면을 바라보는 시각이고 주장이기 때문에 묵살되거나 몰지각한 세력으로 폄하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현장에서 보여주는 유력 정치인들의 태도는 몹시 실망스럽다. 국민들이야 격앙된 감정으로 헌법재판소 판결에 대한 개인적인 의견을 개진할지라도 정치 지도자들은 헌법 수호의 최후 보루인 헌법재판소의 판결에 존중하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 다음 대통령 선거에 도전하는 유력 정치 지도자들이 언론과의 인터뷰나 집회 현장에서 헌법재판소의 판결에 대한 요구를 하거나 심판결과에 대해 승복하지 못하는 입장을 밝히게 되면 우리 사회의 통합은 공염불에 그치고 만다.
축구 경기나 야구 경기를 볼 때 가장 귀에 거슬리는 표현은 심판에 대한 부정적 해설이다. 물론 인간의 일이기 때문에 심판이 정확하지 못할 때도 있다. 그러나 마치 그 행동이 다른 팀이나 국가를 위한 행동으로 해석해 버린다면 보는 시청자들도 영향을 받게 된다. 심지어 일본 심판이나 북한 심판이 등장한다면 경기를 지켜보기도 전에 편파적일 거라고 단정해 버리기조차 하게 된다. 대체적인 여론조사 결과는 대통령의 탄핵 인용을 높게 예상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종적인 선고는 헌법재판소 8명의 재판관 손의 달려있다. 국민들은 지난 수개월간 개인의 소중한 휴식을 반납한 채 광장으로 나와 국민주권을 외쳤다. 그 중에는 대통령의 탄핵을 당연시하는 국민들도 있고 대통령의 탄핵에 대해 반대 입장을 가지고 있는 국민들도 존재한다. 정치 지도자들은 더 이상 국민 여론을 선동하고 법치주의와 민주주의에 승복하지 않는 태도를 보여서는 곤란하다. 많은 정치인들은 이 지경까지 오기 이전에 대통령을 제대로 견제하지 못하고 부화뇌동한 책임에서 자유롭지도 않다. 특히 법조계를 대표하는 존경받는 원로 법조인들은 우리 사회의 중심을 잡아주어야 마땅한 분들이다. 통합 리더로서의 역할은 고사하고 어느 한쪽의 입장을 편들며 국민 분열을 책동한다면 이 땅에 그들이 설 자리는 없다. 이제는 차분하게 결과를 기다리고 그 결과에 승복해야 한다. 승복하지 않는 자야말로 탄핵 대상이다.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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