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권익도기자] 위안부 증언을 최초 보도했다는 이유만으로 삶이 송두리째 흔들린 이가 있다. 바로 우에무라 다카시 전 아사히신문 기자다. 1991년 위안부 피해자 증언 사례를 한국과 일본 최초로 기사화한 그는 일본 우익과 일부 언론, 여론의 표적이 됐다. ‘날조 기자’라는 누명을 쓰며 혹독한 시련과 싸워가야 했다.
‘나는 날조기자가 아니다(푸른역사)’에는 그런 우에무라의 고난의 세월과 투쟁 상황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위안부 문제를 바라보는 일본사회의 삐딱한 시선을 꼬집고 잘못된 사실을 하나하나 바르게 교정해나간다.
책은 올해 초 그가 윤동주 시비를 찾아가는 데서 출발한다. 시비 앞에서 ‘서시’의 시 구절을 되새기는 그는 일본 사회가 “부끄럼 없는 인생(7쪽)”을 살기를 바란다는 소망을 던지며 회상을 시작한다.
사건의 시작은 하나의 녹음 테이프였다. 1991년 8월10일 서울에 방문한 그는 익명으로 증언한 김학순(1924~1997) 할머니의 녹음테이프를 듣고 최초로 신문에 보도했다.
이후 1992년부터 니시오카 쓰토무를 포함한 위안부 부정 세력에게 전방위적인 공격을 받는다. 급기야 2014년에는 일본 대형 주간지인 ‘주간문춘’의 공격성 보도로 딸의 살해 협박까지 당한다.
비판의 핵심은 기사 속에 위안부를 정신대로 잘못 표현했다는 점, 위안부가 강제연행 당한 것처럼 묘사했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우에무라는 당시 한국에선 정신대가 위안부와 같은 의미로 사용됐다는 점, 강제 연행이 아닌 군인들에 속아서 위안부가 됐다고 썼다는 점을 들어 반박한다.
또 위안부 문제의 본질은 위안부 피해자의 강제연행 여부가 아닌 위안소에서 이뤄진 인권침해였다고 주장하며 반대 세력의 허술한 논리를 깨부순다.
처음에 등을 돌렸던 여론은 점차 돌아서기 시작했다. 우에무라를 응원하는 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됐고 그를 도우려는 변호사들이 집결하기 시작했다. 뉴욕대 등 미국 6개 대학에서의 강연은 전 세계 연구자들의 지지를 이끌어냈다. 결국 지난해 1월9일 도쿄지방법원에서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했다. 투쟁은 현재까지도 지속되고 있다.
책의 말미엔 저자가 김학순 할머니의 묘비를 찾는 장면이 나온다. 묘비 앞에선 그는 오랜 기간 불합리한 공격에 시달려 위안부 문제에 거리를 뒀던 스스로를 반성하며 “앞으로는 다시 한 번 저널리스트로서 위안부 문제를 다뤄가고 싶습니다.(234쪽)”라고 굳게 다짐한다.
책에는 자신을 비판했던 언론과의 실제 인터뷰 질문과 대답, 위안부 주제 관련 실제 아사히 신문과 다른 주요 신문들의 지면 비교 등도 낱낱이 실려 있다. 굴복하지 않겠다는 자세로 세밀한 부분까지 수집한 그의 노력은 자신의 기사를 날조라고 비판했던 반대세력이 결국 날조였음을 우리에게 증명해 보인다.
책 '나는 날조기자가 아니다' .사진/푸른역사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