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 우리 조상들에게 있어서 100은 단순한 수의 개념을 넘어서 극에 달한, 완전이라는 상징성이 있었다. 그렇다면 100주년이라는 것은 우리 조상에게 있어 극에 달한 기간, 완전한 기간이라는 의미이다. 올해 우리나라에서 100주년을 맞는 것이 몇 가지 있다. 이중섭·윤동주 탄생. 또 하나 탄생한지 100주년 되는 것이 있다. 1917년 5월 17일 전남 고흥 소록도에 병원을 세워 한센인들을 집단수용한지 올해로 100년이 되었다.
하늘 위에서 내려다보면 새끼 사슴처럼 보인다는 이유로 소록도(小鹿島)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평화로울 것만 같은 이미지의 이면에는 한센인의 아픔이 자리하고 있다. 한센병은 나균에 감염되어 발생하는 만성 전염성 질환을 말한다. 흔히들 ‘나병’ 혹은 ‘문둥병’으로 알고 있지만 한센병이 올바른 표현이다. 일제강점기 때부터 전염될 수 있다는 이유로 한센인을 일상에서 격리, 통제하고 강제노역과 일상적인 폭행 감금을 행했다. 한센인들은 극에 달할 정도의 기간 동안 배제당한 것이다. 현재는 많은 한센인들이 세상을 떠나고 과거 병력을 포함해 550여명만이 남아 있다. 소록도 한센인들에 관해 알아보려 10년째 팀장 자격으로 봉사활동을 다니고 있는 자원봉사자 K 씨를 만나보았다.
그가 소록도에 대해 알게 된 것은 우연이었다고 말했다. “EBS의 다큐멘터리를 우연히 보고 소록도에 가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마침 2006년에 제가 다니는 교회에서 가는 선교·봉사활동 선택지에 소록도가 있었어요. 원래 저희 셀(모임)은 가까운 곳으로 가는 것이었는데 리더에게 이야기해서 소록도로 바꿨죠.”
전염이 걱정되지는 않았을까. “공기랑 접촉하는 순간에 균이 죽어서 옮길 확률이 없다고 봐도 무방하고, 설사 옮더라도 알약 하나만 먹으면 나아서 무섭지는 않아요.” 실제로 현재 소록도에 한센병을 앓고 있는 환자는 9명으로, 나머지 한센인은 모두 완치된 과거의 환자이다. 병이 진행되는 초기에 먹으면 일반 사람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심하신 분들은 약이 나오기 전에 이미 진행이 많이 된 상태였던 거죠. 그런 분들은 이제 거의 다 돌아가셨어요. 제가 처음 갔을 때에 비하면 1/10 정도 남으셨나?”
그는 한센인들도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고 했다. 그가 봉사활동을 간 초기에는 강제로 끌려온 사람들이 많았고, 요즘은 스스로 오는 사람들이 많다. 강제로 끌려온 사람들은 강제 노동에도 동원되었다. 일제강점기 시절의 일본인들은 한센병 환자들이 손이 없어도 숟가락을 손목에 동여매서 흙을 파게 하여 건물을 만들었다. 강제노동뿐만이 아니었다. 한센병을 유전병이라고 생각해서 환자들을 거세도 했다.
현재는 한센인들에게 당연히 그런 강제노동은 행해지지 않으며 보통 개인적인 시간을 보낸다. “거의 대부분이 개신교나 천주교를 믿으셔서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세요. 몸이 성하지 않으니까 치료받으시고요. 겨울에는 이런 경우도 있어요. 감각이 없으시니까 방바닥이 뜨거운 걸 못 느끼시는 거예요. 한참 앉아계시다가 일어날 때 살이랑 바닥이랑 붙어서……. 이런 경우가 많으니까 남아서 계속 치료·관리를 받으시죠.”
가족이나 친구들을 만나는 일도 드물다. 오래 전 강제로 끌려온 사람들에게는 더더욱 힘든 일이다. 동네사람들이 한센병을 앓고 있는 걸 알게 되면 다들 돌을 던지면서 나가라고 했던 시대이기에 부모도 자식을 버릴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는 “제가 들은 슬픈 경우는 밤마다 아버지가 칼을 가셨대요. 칼을 들고 자기가 있는 방을 한참 쳐다보다가 포기하고. 이걸 매일 반복해서 결국엔 도망쳐서 오신 거래요. 17살 때 끌려오신 분도 계세요. 그 이후에 가족을 못 보셨대요.”고 덧붙였다.
완치가 되어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곳이 없는 사람들도 있고, 돌아갈 곳이 있어도 포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진행이 많이 된 사람들은 완치가 되어도 눈으로 문드러진 부분이 보이기 때문이다. 완치가 되어 일반인과 다를 바가 없다고 해도 그 사실을 잘 모르기 때문에 가까이 가지 않으려 한다. 아예 가족에게도 비밀로 하고 오는 사람들도 있다. “한센인인 엄마를 둔 것보다 아예 엄마가 없는 게 낫다고 판단하고 소록도로 오신 분도 계세요. ‘너희 엄마 한센병이지’라는 소리를 듣게 하느니 그냥 엄마 없는 자식 소리를 듣는 게 더 낫다고. 이런 걸 겪으신 분들이니까 돌아가시지 않죠.”
그는 진행이 덜 되어 비교적 멀쩡하게 보이는 사람들의 대부분도 돌아가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이유를 묻자, “다 한센인이니까 좋잖아요. 자기가 한센병이라는 사실을 주변 사람들이 알게 됐을 때 대하는 태도에 이미 상처를 받는대요. 그래서 돌아가고 싶지 않대요. 최근에 스스로 오신 분들도 이미 상처를 받았기 때문에 오신 거예요. 돌아가려면 내가 한센병에 걸렸었다는 걸 알고 있는 사람들의 기억을 지워야 가능하겠죠.”라고 답했다.
“한센인 중에 손가락만 조금 문드러져서 심하지 않으신 분이 계세요. 그분이 서울에서 열리는 한센인 행사에 참가하셨는데 원래는 행사가 끝나고 밥을 같이 먹는 게 일정이었어요. 그런데 자기를 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너무 불편해서 행사가 끝나고 바로 소록도로 돌아오셨어요. 심하지 않은 분들도 그런 시선을 받고 계신 거예요.”
그럼 소록도의 한센인들은 돌아가고 싶지 않은 걸까. 그는 그렇지 않다고 대답했다. 그가 개인적으로 힘든 일이 있을 때 소록도에 내려와서 살고 싶다고 하자, 한 한센인이 사람들 사이에서 사는 게 좋은 거라고 말했다고 한다.
한센인이 원하는 대로 사람들 사이에서 섞여 살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 걸까? “완치된 환자가 우리와 다를 것 없다는 것을 알게끔 해야겠죠. 시민을 상대로 한 캠페인이나, 학생들이 교육받는 방법 등이 있어요.”소록도에서 43년간 한센인들을 돌보다 지난 2005년 모국인 오스트리아로 돌아간 마리안느 수녀도 최근 한국에 방문하여 진행한 인터뷰에서 “수녀나 한센인 모두 똑같은 사람”이라며 한센인들이 보통 사람임을 강조했다.
코시모 로셀리의 <산상설교와 나병환자를 고치심>. 오른쪽 아래 나병환자를 고치는 예수의 모습이 보인다. 사진/바람아시아
K 씨는 올해 2월에 다녀온 소록도 봉사활동을 끝으로 더 이상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제는 소록도에 봉사를 받을 만큼 상태가 심하신 분이 없어 자원봉사자가 필요하지 않다는 이유였다. “몇 년 만 더 지나 지금 계신 분들이 다 돌아가시면 한센병은 성경이나 옛날 책들에서나 볼 수 있는 병이 될 거예요.”
**이 기사는 <지속가능 청년협동조합 바람>의 대학생 기자단 <지속가능사회를 위한 젊은 기업가들(YeSS)>에서 산출하였습니다. 뉴스토마토 <Young & Trend>섹션과 YeSS의 웹진 <지속가능 바람>(www.baram.asia)에 함께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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