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야만적인 노예제 시대의 일화입니다. 소크라테스 역시 시대의 한계를 이길 위인은 못 되어서 개인 노예를 두었습니다. 당시 노예를 매로 다스리는 일은 일상이었는데 소크라테스는 자기 노예의 잘못 앞에서 “지금은 내가 분노하고 있으니 때리지 않겠다. 분노하지 않았더라면 오히려 때렸을 것이다”라고 하며 매를 내려놓습니다. 분노는 필요 이상으로 타인을 질책하고 해하기 때문입니다. 분노는 자기가 해를 입더라도, 공동체 질서가 훼손되더라도, 상대에게 해를 주려 합니다. 화가 난 자는 자기 행위가 무엇이 되었든 정당화하려 합니다.
기원전 태어난 로마의 정치인(집정관) 그나이우스 피소라는 자는 세 명의 무고한 병사를 사형시켰습니다. 사건은 이렇습니다. 두 명의 병사가 휴가를 갔다가 한 명만 돌아오자 그나이우스는 복귀자가 미복귀자를 살해한 것으로 의심하여 분노하며 사형선고를 내립니다. 그런데 얼마 후 미복귀자가 돌아오게 되고 사형 집행 담당 간부는 사형 집행을 미루고 이 사실을 급히 그나이우스에게 보고합니다. 그러자 이미 분노해 있었던 그나이우스는 더욱 분노해서 복귀자, 미복귀자, 간부를 모두 그 자리에서 처형해버렸습니다. 그가 내민 이유는 복귀자는 이미 사형선고를 받았고, 미복귀자는 복귀자에게 사형선고를 내리게 한 빌미를 주었고, 간부는 사형 집행 명령을 어겼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분노는 진실이 자신의 기대와 다르면 오히려 진실을 향해 더 큰 분노를 보입니다. 파괴적인 분노의 속성을 통제하지 못해 자신과 타인과 세상을 파멸케 한 역사는 수도 없이 많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위 예시들처럼 위정자들의 분노가 공적 영역에 작용하게 되면 그 악한 결과는 걷잡을 수 없게 됩니다. 정치인과 공직자는 재판관의 본질과 같이 이성적이고 평온해야 합니다(실제 재판관들이 모두 그렇다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지나친 분노에 휩싸여 있습니다. 분노는 다른 감정들과 달리 집단 전염성이 매우 빠릅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화해를,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진정성과 책임정치의 교훈을 후대가 받아안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후대 대통령 이명박, 박근혜와 그 세력들은 정반대의 정치를 했습니다. 이는 소위 민주 진영의 분노를 끓어오르게 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동기가 설명된다고 결과가 당연히 용인되는 것은 아닙니다. 복수의 정치, 분노라는 정념에 휩싸인 정치, 확증편향에 빠진 아전인수, ‘내로남불’, 위선의 정치는 그 어떤 동기에도 불구하고 합리화되기 어렵습니다. 원칙이 무너지고 결국 국가 공동체가 악덕으로 가득 찬, 예상치 못한 파멸로 우리를 이끌기 때문입니다.
'도자기 박물관에 들어온 코끼리'의 모습을 형상화했다. (사진=챗GPT)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 이후 정당한 분노는 모이고 모였습니다. 훗날 민중의 촛불이 되어서 극우 정권을 교체했습니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 집권 이후 정부 여당의 구체적 정치 행태는 촛불의 열망을 담아 보편적 정의가 만발하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정적을 타도하고 ‘우리’ 진영을 집결하는 데에 너무 많은 힘을 들이는 실망스러운 것이었습니다. 그야말로 감정적 정치였습니다. 조국 사태로 대표되는 위선과 분열 조장, 검찰에 대한 복수심이 지나쳐서 졸속·아마추어식으로 진행된 검경 수사권 조정, 헌법 파괴적인 위성정당, 민주당 주요 인사 연관 재판에 대한 개입 및 사법부 독립성 침해, 유튜브 정치, 최근 특정 연예인의 소년범 사건을 둘러싼 기괴한 논리들에 이르기까지 우리 정치와 공론의 장은 전혀 민주적이지 않은, 정념으로 가득찬 디스토피아적 방향으로 깊어만 갑니다. 이제 그만두어야 합니다. 분노를 통제해야 합니다.
어느 유명 평론가는 윤석열정권을 “도자기 박물관에 들어온 코끼리”라 비유했습니다. 지금의 정부 여당은 “도자기 박물관에 들어온 호랑이”와 같다고 느껴집니다. 국가의 주인인 시민들이 이제는 그 호랑이 등에서 내려, 야수와 같이 무분별한 분노 정치, 유치하지만 대단히 위험한 위정자들의 언행에 제동을 걸어야 할 때입니다. 화가 난 얼굴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경솔하게 판단하여 결국 문제를 해결하지도 못합니다. 산적한 민생 문제들을 평온한 얼굴로, 그리하여 대단히 차분하고 치밀하게 이성적으로 풀어가는 새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류하경 변호사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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