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한동인 기자] 집권 여당이 밟고 있는 '가속페달'에 대통령실이 직접 '제동장치'를 거는 모습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출범 초 검찰 개혁과 사법 개혁 이슈부터 재판중지법까지, 당의 정책 속도에 대통령실이 직접 자제를 요청하고 있는 건데요. 정무 라인 차원의 설득은 어느덧 이재명정부 2인자인 비서실장의 '공식 브리핑'까지 단계가 올라왔습니다. 사실상 용산의 '마지막 경고'라는 평가가 나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여당 '과속'에 속앓이…강화된 '경고' 수위
6일 대통령실과 여권에 따르면 지난 8월2일 취임한 정청래 민주당 대표는 취임 초부터 당정 관계에서 삐걱거리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12·3 비상계엄과 탄핵이라는 초유의 국정 공백 속 출범한 이재명정부였던 만큼 당·정 '원팀' 기조를 통한 국정 수습이 필요했는데요. 정작 신임 지도부는 검찰 개혁 등의 사법 개혁에 있어 속도를 높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대통령실은 당에 '속도 조절'을 요청했습니다. 우상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난 9월16일 여권에서 키운 조희대 대법원장 사퇴 요구에 대해 "대통령실은 대법원장의 거취를 논의한 바 없으며 앞으로 논의할 계획도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조 대법원장에 대한 사퇴론에 대통령실이 힘을 싣고 있다는 해석이 나오자 기자들과 만나 직접 해명한 겁니다.
당시는 이재명 대통령의 취임 100일 기자회견과 유엔(UN)총회 기조연설 등의 주요 일정이 이뤄졌던 시기로, 여당의 대법원장 사퇴론은 정부의 주요 이슈를 가렸습니다. 이 때문에 이 시기부터 당에 대한 대통령실의 불만이 드러나기 시작했다는 관측이 제기됐습니다.
다만 대통령실은 국회와의 소통 창구 역할을 하는 정무라인을 통해 의견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집니다. 하지만 추석 연휴를 앞두고 또다시 당이 '검찰 개혁'에 과도한 속도를 내면서 우 수석이 직접 나서는 모습까지 보였습니다.
우 수석은 지난달 6일 <KBS> 라디오에서 "당 입장과 운영 방향에 대해 취지는 전부 동의하지만, 가끔 속도나 온도의 차이가 날 때가 있지 않느냐"며 "(당에) 대통령의 생각을 잘 전달했을 때 당이 곤혹스러워할 때가 있다"고 언급했습니다. 각종 개혁 입법의 과정에서 당과 대통령실의 생각 차이가 분명했다는 점을 공식적으로 밝힌 셈입니다.
특히 우 수석은 인터뷰에서 "'개혁하는 것은 좋은데 너무 싸우듯이 하는 게 불편하고 피곤하다' 그런 피로도를 말씀하는 분들이 있다"며 "개혁을 좀 시끄럽지 않게 하는 접근 방식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했습니다. 사실상 첫 번째 공식 '경고장'입니다.
급기야 비서실장이 직접 '대통령 의중' 전달
대통령실의 경고장이 무색하게도 당은 재판중지법을 '국정안정법'으로 칭하며 법안 처리를 예고했습니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대한 성과를 정리해야 하는 시점에, 당이 다시 이 대통령을 정쟁의 한가운데로 내몬 겁니다.
이에 대통령실의 경고는 '최후의 경고장'으로 단계가 높아졌습니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재판중지법이 불필요하다는 것이 대통령실의 일관적인 입장이고, 그 입장에 대해서는 바뀐 바가 없다"고 직격했습니다. 이후 30분 만에 강 실장이 직접 나서 "더 이상 (대통령을) 정쟁에 끌어들이지 않고, 우리가 민생을 살리고 경제를 살리는 데 집중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했습니다. 우 수석과 강 대변인의 공식적 발언을 넘어, 대통령실 2인자인 강 실장이 직접 이 대통령의 분명한 경고성 메시지를 공식화한 겁니다.
다만 강 비서실장은 이날 국회 운영위원회의 대통령실 국정감사에서 재판중지법이 민주당을 겨냥한 것이냐는 곽규택 국민의힘 의원의 질문에 "야당도 함께 양해해달라는 것"이라며 "여야 모두가 대통령을 정쟁에 끌어들이지 말고 민생과 경제를 살리는 데 도와달라"고 해명했습니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과 강훈식 비서실장, 위성락 국가안보실장 등 증인들이 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운영위원회의 대통령비서실 등 국정감사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정청래호, 취임 100일 '기로'
대통령실의 공식적 경고는 취임 100일을 앞둔 '정청래호'에 리더십 시험대로 작용할 전망입니다. 이미 정청래 민주당 대표는 이른바 '명·청(이재명 대통령·정청래 대표) 갈등'은 물론 김병기 민주당 원내대표와의 갈등의 주인공입니다.
이는 강성 지지층에 기댄 '강경 일변도' 기조를 이어온 탓이기도 한데요. 정 대표가 강경한 기조를 이어갈 경우 당정 관계도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당정 갈등설을 잠재우지 못하고 불협화음이 계속된다면 내년 지방선거에서 '정청래 체제'가 가능하겠냐는 의심을 품는 시선이 많아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도 합니다. 때문에 정 대표는 최근 갈등설 진화에 초점을 맞추고 당정 '소통'에 방점을 찍겠다는 구상입니다.
한동인 기자 bbha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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