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측정 거부'로 범칙금 냈다면 기소해도 '면소'
2025-05-30 10:25:01 2025-05-30 10:25:01
[뉴스토마토 김민승 법률전문기자] 헌법 제13조 제1항은 '이중처벌금지의 원칙'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모든 국민은 동일한 범죄에 대해 거듭 처벌받지 않는다고 규정한 겁니다. 이에 따라 형사소송법은 확정판결이 있는 사건과 동일한 사건에 대해 공소제기가 있으면 면소(실체 판결로 나아가지 않고 소송을 종결시키는 것)판결을 선고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제주시 연북로에서 본격적인 봄 행락철을 맞아 동부경찰서 소속 경찰관들이 집중 음주운전 단속을 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최근 대법원에서 전동휠을 운전한 피고인이 음주측정거부로 범칙금을 납부한 후, 동일한 사실관계로 기소됐다면 범칙금이 잘못 부과된 것이라도 면소판결을 선고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습니다.
 
이 사건은 한 음식점에 술에 취한 피고인이 전동휠을 운전하고 들어왔다는 신고가 접수되면서 시작됐습니다. 출동한 경찰이 음주측정을 요구했지만 피고인은 이에 응하지 않았고, 경찰은 피고인이 운전한 전동휠을 개인형 이동장치로 보고 범칙금 통고 처분을 했습니다. 피고인이 범칙금을 낸 후 경찰은 피고인이 운전한 전동휠이 원동기장치자전거에 해당한다고 판단해 기존의 범칙금 통고 처분을 오손처리하고 검찰에 송치했고, 검찰은 피고인을 음주측정거부 혐의로 기소한 겁니다.
 
1심과 2심은 피고인에게 면소를 선고했습니다. 도로교통법이 범칙금을 낸 사람은 범칙행위에 대해 다시 벌 받지 않는다고 규정하는 점을 지적하면서, 수사기관의 착오로 범칙금의 통고 처분을 한 이상 원칙적으로 즉결심판을 청구할 수 없고 형사소추를 위해 통고 처분을 임시로 취소할 수도 없다고 본 겁니다. 검찰은 범칙행위가 아닌 행위에 대해 착오로 범칙금 통고처분이 이뤄져 법률상 효력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대법원도 이러한 결론을 긍정해 면소판결이 그대로 확정됐습니다.
 
도로교통법은 술에 취한 상태에 있다고 인정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음에도 음주측정에 응하지 않으면 1년 이상 5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만원 이상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합니다. 다만 처벌 대상이 자동차 등 또는 노면전차를 운전한 경우로 한정돼 위 사건에서 문제가 된 겁니다. 음주측정거부를 처벌하는 대상인 자동차 등에는 자동차와 원동기장치자전거만 포함되고 개인형 이동장치는 포함되지 않습니다.
 
개인형 이동장치는 원동기장치자전거 중 배기량 125㏄ 이하(전기를 동력으로 하는 경우 최고정격출력 11㎾이하)의 원동기를 달고 시속 25㎞ 이상으로 운행할 경우 전동기가 작동하지 않고 차체 중량이 30㎏ 미만인 것을 말합니다. 2025년 3월18일을 기준으로 이러한 개인형 이동장치에 해당하면 음주측정을 거부하더라도 개인형 이동장치의 경우 13만원, 자전거의 경우 10만원의 범칙금만 부과받게 됩니다.
 
도로교통법 제164조 제3항은 이러한 범칙금을 낸 사람은 범칙행위에 대해 다시 벌 받지 않는다고 규정합니다. 이중처벌금지 원칙에 따른 규정으로 볼 수 있습니다. 형사소송법은 일단 발생한 형벌권이 사후의 사유로 소멸한 경우에 면소판결을 선고하도록 합니다. 면소 사유에는 △확정판결이 있은 때 △사면이 있은 때 △공소의 시효가 완성되었을 때 △범죄 후의 법령개폐로 형이 폐지되었을 때 등이 있습니다. 도로교통법상의 통고 처분에 따른 범칙금 납부가 위 사유 중 확정판결에 포함되는 겁니다. 대법원은 확정판결의 기판력이 미치는 범죄사실의 범위는 범죄사실의 기초가 되는 사회적 사실관계가 기본적인 점에서 동일하면 충분하고 그 규범적 요소도 고려해야 한다고 봅니다.
 
면소 사유에는 범죄 후의 법령개폐로 형이 폐지되었을 때도 포함됩니다. 대법원은 ‘법령의 개폐’를 법령의 제정이유인 법률이념의 변경에 따라 종래의 처벌 자체가 부당했거나 과형이 과중했다는 반성적 고려에서 법령을 개폐한 경우를 말한다고 오랜 기간 한정적으로 해석해 왔습니다.
 
하지만 2022년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이른바 ‘동기설’을 폐지하고, 범죄의 성립과 처벌에 관한 형벌 법규가 법령의 변경에 따라 범죄를 구성하지 않게 되거나 형이 가벼워진 경우, 종전 법령이 범죄로 정해 처벌한 것이 부당했다거나 과형이 과중했다는 반성적 고려에 따라 변경된 것인지 여부를 따지지 않고 원칙적으로 형법 제1조 제2항과 형사소송법 제326조 제4호가 적용되도록 입장을 바꿨습니다. 오랜 기간 비판이 있었던 입장을 변경해 형사법의 기본 원칙에 충실한 입장으로 변경한 겁니다.
 
이상과 같이 면소 사유가 있는 경우에 법원은 면소판결을 선고하게 되고 실체에 관해 심리해 무죄판결을 선고할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최초 수사단계에서 정확한 판단을 통해 법적용이 이뤄져야 하고,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라도 이중으로 처벌받는 것은 금지되므로 본인의 행위에 대한 처벌이 적법한 것인지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김민승 법률전문기자 lawyerms@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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