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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05월 14일 06:00 IB토마토 유료 페이지에 노출된 기사입니다.
퇴직연금 시장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지난해 10월31일 퇴직연금 실물이전 제도 시행 이후, 증권사를 중심으로 연금자산 유치 경쟁이 치열해졌다. 이전까지는 자산 이동 시 펀드나 ETF, 채권 등을 현금화해야 했지만 이제는 보유 자산을 그대로 옮길 수 있게 되면서 시장 판도가 크게 바뀌었다.
경쟁의 선봉에는 증권사들이 서 있다. 고용노동부와 금융감독원 발표에 따르면 제도 시행 첫 3개월 동안 은행에서 증권사로 6491억원의 적립금이 유입됐다. 증권사 간 순유입은 4051억원, 은행은 4611억원 순유출을 기록했다. 2024년 말 퇴직연금 적립금은 427조원에 달한다. 이 중 증권업계는 104조원을 차지했다. 다양한 상품과 낮은 수수료를 무기로 시장 점유율을 넓히고 있는 중이다.
(출처=KB금융)
문제는 경쟁과열에 따른 과도한 마케팅이다. 자칫 본질을 훼손할 수 있다.
퇴직연금은 은퇴 후 안정적인 노후 자산을 위한 장기 투자다. 단기 수익률보다 위험 분산과 안정성이 중요하다. 하지만 일부 금융사는 주식형 펀드 등 고위험 상품을 중심으로 마케팅을 펼친다. 투자자들이 상품의 리스크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상황에서 이동, 불완전판매도 우려된다.
시장 양극화도 문제다. 실물이전 제도는 소비자 편의성을 높였지만 '부익부 빈익빈'을 부추기고 있다.
미래에셋증권(037620)(약 30조원), 한국투자증권(약 16조원) 등 대형 증권사들은 AI 로보어드바이저와 다양한 ETF로 자산을 빨아들이지만, 시스템 구축 비용이 부담스러운 중소형 금융사는 손가락만 빨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편중은 정보 비대칭과 시스템 리스크를 키울 수 있다. 특정 금융사에 자산이 쏠리면 시장 생태계의 건강성이 훼손되고, 소비자는 제한된 선택지에 노출되기 때문이다.
실물이전 제도는 원리금 보장상품(예금, ELB), 공모펀드, ETF를 대상으로 손실 없이 자산 이동을 가능케 하지만, 주식·보험형 계약 등은 제외돼 한계도 있다.
제도의 취지를 살리려면 금융당국의 역할이 중요하다. 금융감독원이 통합연금포털로 비교공시를 제공하고 있지만 오히려 수익률 차이에 따른 상대적 박탈감만 느낄 뿐이다. 투자자 교육과 상품 리스크 안내, 불완전판매 방지 가이드라인을 강화해야 하는 이유다.
정부는 중소형 금융사들의 실물이전 시스템 구축을 위한 정책 지원, 표준화된 API 제공, 공동 플랫폼 구축 등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제도 시행 초기부터 시장 주도권이 대형사에 집중돼 공정성과 소비자 선택권이 훼손될 수 있어서다.
금융사들은 상품권이나 수수료 면제 등 단기 이벤트보다 상품 구조 설명과 장기 수익률에 집중해야 한다. 마케팅 가이드라인을 통해 과도한 단기 유인을 제한하고, 중소형사의 시스템 구축을 지원해 시장 균형을 맞춰야 한다.
퇴직연금은 고령화 시대의 핵심 자산이다. 단기 수익 경쟁보다 중요한 것은 소비자와의 신뢰를 바탕으로 한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노후 보장이다. 시장 균형과 제도 본질이 훼손되지 않도록 정부와 업계 모두가 함께 고민해야 할 때다.
유창선 금융시장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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