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트럼프 ‘기후 백래시’의 근원
2025-03-14 06:00:00 2025-03-14 06:00:00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기후 ‘백래시’가 예상을 뛰어넘고 있다. 예고했던 파리협정 탈퇴는 물론이고 손실과 피해 기금 이사회 탈퇴, 정부 기관 소속 과학자의 IPCC 보고서 참여 제한 등 기후 대응의 손발을 자르며 제1기 행정부 때보다 강력한 조치를 단행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트럼프가 추진하는 기후 정책의 후퇴가 세계적인 에너지 전환의 대세를 거스르지 못할 것으로 봤다. 그러나 불안감이 점점 커지고 있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미국이 기후 대응 대열에서 이탈하면 어떤 결과가 초래될까? 더 나아가, 선거 운동 과정에서 “Drill, baby, drill”(시추해, 친구, 시추해)이라고 외친 트럼프의 기조가 전 세계를 자국 중심주의로 몰아가지 않을까? 
 
기후 대응은 모두 협력해야 살 수 있는 ‘죄수의 딜레마 게임’이다. 1992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역사적인 기후변화협약이 성사된 건 미국의 리더십 덕분이었다. 미국에서는 정부 기관 소속 과학자들이 온난화의 실태를 밝혀내면서, 민주주의 선진국답게 뉴스 담론과 미디어 콘텐츠, 시민사회의 운동과 정부 정책에 빠르게 스며든 터였다. 1988년 상원 청문회에서 제임스 한센 국립항공우주국(NASA) 소속 연구원이 온난화에 대해 증언한 것은 세계적으로도 지구온난화가 과학계를 넘어 공론장에 오른 신호탄이었다.  
 
그러나 이후 미국 정부의 기후 대응은 분열과 혼선을 거듭했다. 분열증 환자처럼 자국중심주의와 세계시민주의, 다른 말로 화석연료 고수와 재생에너지 개발이라는 양극단을 오갔다.
 
1997년 세계는 ‘선진국이 1990년 대비 온실가스 배출량을 평균 5.2% 줄이자’는 교토의정서를 체결했지만, 미국은 내부 반대 여론에 부딪혔다. 공화당 정치인들을 중심으로 “왜 선진국만 온실가스 감축 의무를 부담해야 하느냐’는 반발이 거셌다. 그해 7월 미국 상원은 ‘버드-헤이글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이는 “중국, 인도 등 주요 개발도상국이 미국과 동등한 법적인 의무를 수락하지 않는 한 미국 정부는 어떠한 기후협약상의 의무도 부담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었다. 결국 교토의정서는 미국 상원에서 비준받지 못한 채, 2001년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공식적으로 탈퇴를 선언했다.
 
2015년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 평균기온 상승치를 1.5~2도로 제한하자’는 파리협정이 체결됐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파리협정을 상원 비준이 필요한 ‘조약’이 아닌 ‘행정협정’으로 보고, 이듬해 9월 시진핑 중국 주석,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함께 비준 서명식을 열었다. 미국 내에서의 지속성은 짧았다. 후임 트럼프 대통령이 2017년 탈퇴를 선언했기 때문이다. 2021년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으로 미국은 다시 파리협정에 복귀했으나(기후 대응 역사 중 가장 찬란한 4년이었다), 다시 트럼프가 당선되면서 현재 상황에 이른 것이다. 이렇게 따져보면, 1997년 이후 미국이 기후 대응을 위한 국제 체제에서 완전하게 활동한 기간은 5년 남짓에 불과하다.
 
이처럼 오락가락하는 미국의 정부 정책이 시장에 불확실한 신호를 줄 법했지만, 재생에너지 시장은 오히려 놀라운 성장세를 보였다. 2023년 풍력과 태양광 발전이 처음으로 석탄을 제치고 미국 전력 생산의 17%를 차지했다. 지난 11일 발표된 한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신규 발전 용량 84%가 태양광 및 에너지 저장 장치에서 나왔다. 이는 기후 과학자와 환경운동가의 지속적인 노력 그리고 재생에너지와 신기술을 개발하고 판매하는 혁신가의 분투가 정부의 오락가락 정책을 능가했기 때문이다.
 
발전 설비의 건설부터 폐기까지 발생하는 모든 비용을 합산한 값으로, 각 발전원의 경제성을 비교하는 ‘균등화 발전비용(LCOE)’ 지표를 보면, 세계적으로도 이미 모든 재생에너지원이 화석에너지보다 낮게 나타나고 있다. 한국의 경우 아직 재생에너지 발전비용이 화석연료와 비슷하거나 높지만, 이러한 대세가 크게 흔들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의 기후 정책 후퇴에 놀라 한국이 가던 길을 되돌아가는 성급한 판단을 내릴 필요는 없다. 국제 정세를 냉정하게 관찰해야겠지만, 미국의 역사는 에너지 전환의 주동력이 이미 정치에서 시장으로 넘어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남종영 KAIST 인류세연구센터 객원연구원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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