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대표의 중도보수 발언 후 민주당 지지율과 탄핵 찬성률이 높아져 그 파장이 컸다. 중도라고 밝힌 응답자들의 지지가 늘어났다. 중도 확장을 위한 아젠다를 선점하고, 극우에 치우친 여당을 오른쪽으로 확실히 밀어내는 상징적 효과도 얻었다.
좀 더 눈여겨봐야 할 것은 이재명 대표 민주당의 대한민국 주류 선언이라는 정치적 의미이다. 재벌, 검찰, 보수 언론, 공안 세력, TK와 영남 출신, 강남 부자, 서울대 출신, 기독교 극우와 거슬러 올라가 이북 출신 반공세력과 친일집단 후손이라는 다양한 조합의 교집합으로 이루어진 기존 주류 세력에 대한 교체 선언이 될 것인가? 과연 비 재벌 옹호, 비 TK, 민주화 세력, 강북 기반을 가진 민주당이 새로운 주류가 될 수 있는가? 민주화 이후 세 번을 집권했고 개헌선에 육박할 만큼 국회도 장악했지만, 정치경제 권력의 주류가 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재벌의 아성에 도전하지 못하고, 사법부 권력에 막히고, 공고한 우파 주류의 여론 공세와 권력 공세에 휘청인다. 대한민국 실질 권력 교체를 얘기하기엔 이르다.
원래 민주당의 기반은 서민, 중산층과 비주류이다. 군사독재 시절 이후의 민주화 세력을 대표하며 친미, 친재벌 보수우파 기득권 세력의 대응세력이었다. 그러나 집권했을 때 민주당 정부는 달랐다. 외환위기 상황에서 국제 자본의 압력을 반영해서 세계화와 유연화를 단행한 김대중 정부, 한미 FTA와 이라크 파병으로 상징되는 미국과 협력과 공존을 선택한 노무현 정부, 촛불 혁명 이후의 열망을 현실로 반영하지 못하고 새 방향 설정에 실패한 문재인 정부가 그렇다. IMF의 요구이기도 했지만 기본 복지제도의 초석을 놓은 김대중 정부,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비정규 법제도화와 복지 사각지대 축소를 통해 양극화 해소를 의제로 설정한 노무현 정부, 가다가 멈추고 뒷걸음질까지 했지만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편 문재인 정부의 모습이 기존 민주당의 이미지와 부합하나, 이 또한 대한민국 주류 질서에 제동을 걸만한 수위나 범위로 전개된 것은 아니었다.
민주당 세 정부의 성적표만 놓고 보면, 이재명 대표가 원래 민주당이 중도보수였다는 표현이 오히려 딱 맞는 말이다. 그러면 재벌 개혁, 중소기업 중시, 노동 존중 등의 가치는 무엇이었나? 도전할 만한 실력이 아니라서 외양과 실제가 달랐거나, 원래부터 도전할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후자가 정직한 정치인의 태도라는 말도 일리가 있다. 진보정당이 일정 지지를 받을 때 범진보라는 이름으로 이 지지를 흡수하려 했으나 괴멸 상태인 지금은 우측으로 확장을 꾀하고 있다. 그럼 민주당에 남는 것은 무엇일까?
경제 불황의 골이 깊어지고 주력 수출 대기업의 경쟁력까지 위협받고 있고, 트럼프 정부의 압력이 거세지며 잠재성장률이 추락하고 있는 지금 경제적 안정과 성장을 중시하고 구조개혁과 양극화 해소의 과제는 뒤로 미루는 것이 중도보수의 선택지일 것이다. 경제 활성화에 주력함으로써 재벌 경제력 집중은 더 심해지고 경제, 소득, 고용의 양극화로 이어지는 양극 분단 사회의 골은 방치된다. 중도보수라는 표현은 한국사회의 신화인 성장주의, 바람직한지 판단은 달라도 불가피하거나 효율적이라고까지 여기는 재벌 경제, 출발점과 사회자본의 차이를 무시한 공정 경쟁의 논리가 될 것이다.
우리 사회 질곡이자 질적 발전의 장애물인 편중된 경제, 편중된 고용, 편중된 소득의 문제는 정치가 반드시 정면으로 대응해야 할 과제이다. 합리적 중도의 실사구시의 자세가 극한적인 이념 대결 국면에서 돌파구일 수 있다. 그러나 상속 때마다 불거지고 앞으로 국제적 압력으로도 다가올 재벌 소유구조, 기후변화 대응과 지속가능발전의 맥락에서 수립되어야 할 산업정책, 집권 전과 집권 후가 다른 민주당의 노동정책에서 노동권 사각지대에 있는 광범위한 불안정 노동과 노동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노동을 포괄해야 할 과제는 중도보수도 외면해서는 안 될 과제이다.
김성희 L-ESG평가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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