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이 확정됐다. 전기본은 향후 15년간 전기가 얼마나 필요한지를 계산한 뒤 필요한 만큼의 전력을 생산하기 위해 석탄·원자력·LNG·재생에너지 등을 조합하는 ‘에너지 믹스’를 어떻게 구현할 것인지를 정하는 계획으로 2년마다 수립된다. 정부에 따르면, 11차 전기본은 AI와 반도체 등 새롭게 늘어나는 전력수요에 안정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원전, 재생에너지, 수소 등 다양한 무탄소전원을 조화롭게 활용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11차 전기본도 이전 전기본 수립 과정에서와 마찬가지로 첨예한 갈등이 반복됐다. 정부는 지난해 5월 31일 11차 전기본 실무안을 발표했고, 9월 26일이 되어서야 공청회를 개최했다. 공청회 시작 전 정부안의 백지화를 요구하던 지역 주민과 기후·활동가 18명이 연행되기도 했다. 전기본에 따라 원전 건설·운영·폐로, 재생에너지 보급, 석탄발전소 폐지와 정의로운 전환, 전력망 확충, 탄소중립 목표 달성 등 다양하면서도 중요한 이슈가 결정되는 만큼 이해관계를 둘러싼 갈등과 대립이 첨예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러한 갈등과 대립의 근저에는 전기본의 수립 과정과 내용에 대한 불신이 있다. 11차 전기본 실무안에 대해서도 전력수요의 과다 예측과 수요관리 수단의 부재, 전원 구성에 있어 재생에너지 비중 축소와 탄소중립 및 국제적 기준 미달, 노후 원전 수명 연장과 신규 원전 추가 건설, 상용화도 되지 않은 소형모듈원전(SMR) 포함, 부족한 석탄 발전 감축 속도와 LNG발전 대체의 문제, 수소·암모니아 발전의 실현가능성 문제 등이 지적됐다. 하지만 지적된 문제들은 이번에 확정된 계획에 대부분 반영되지 않았고, 신규 원전 3기 중 1기를 유보하는 대신 태양광을 소폭 늘리는 선에서 마무리됐다.
결국 탄핵 심판을 앞둔 윤석열 정부의 원전 ‘올인’과 재생에너지 축소 정책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점이 전혀 고려되지 않은 계획이 확정된 셈이다. 이전 10차 전기본의 계획 기간이 2036년까지라는 점에서 2038년까지를 계획하는 11차 전기본을 지금 시점에 왜 급하게 결정해야 했는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일각에서 신규 원전 2기라도 ‘알박기’하려는 ‘정치적 거래’에 국회가 동참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이제는 전력수급기본계획 자체를 폐기할 때가 되었다는 주장이 학계와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비중 있게 제기되고 있다. 전기본은 신규 원전 건설이 본격화되던 시기에 정부가 원전과 석탄 등 대규모 발전 계획을 수립하고 전원개발촉진법에 따라 인허가를 대행하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계획 방식이다. 과거 고도성장기에는 중앙계획적인 전기본이 경제 성장을 뒷받침하는 역할을 했으나 이제는 낡은 에너지계획 수립 방식을 폐기하고 탄소중립과 에너지전환 시대에 걸맞은 비전과 방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어떠한 비전과 방식이냐에 대해서도 다양한 주장이 나올 수 있다. 그중에서도 해외 주요국의 사례와 같이 정부는 일방적 계획 수립이 아닌 시나리오별 전망(outlook) 형태로만 제시하고 송전망 확충에 집중하며 발전 사업 인허가는 독립적인 에너지위원회에 맡겨야 한다는 주장이 주요하게 제기돼 왔다. 이를 위해서는 국회 입법조사처가 지적한 바와 같이 전망의 방법론, 주요 입력 전제, 데이터, 전망 주체 및 구성 등에 대한 투명한 정보 공개가 우선돼야 하고 전망의 법적 성격?지위, 다른 상?하위 법정 계획과의 관계, 정합성 등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2035년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 설정과 함께 2050년까지의 탄소중립 로드맵을 구체화해야 한다. 탄소중립기본법 제정 과정에서 없어진 에너지기본계획(에기본)을 복원해 상위 기후 대응 목표에 상응하는 시나리오별 에너지 전환 전망과 방안을 담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전기본이 필요하다면, 상위 계획인 탄소중립과 에기본의 비전과 전망에 부합하는 수단일 경우에만 존재해야 할 것이다. 꼬리가 몸통을 흔들던 구습은 이제 타파되어야 하고 탄핵해야 한다.
권승문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기획위원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