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재영 선임기자] 전기료 부담 경감 차원에서 전력산업기반기금 요율을 줄이기로 한 정부가 그 중 상당부분을 반도체에 쓰기로 했습니다. 용인반도체클러스터 송전망 구축에 드는 공공비용 예산출처가 전력산업기반기금으로 확인됐습니다. 요율을 줄였으니 기금은 줄 수밖에 없는데 그 한정된 예산도 반도체에 쏠리면 다른 산업과 형평성 문제가 생깁니다. 기금을 충당하기 위해 다시 요율을 올린다면 전기요금 인상, 국민 물가부담으로 연결됩니다. 클러스터를 수도권에 지으면서 막대한 송전망 투자에 따른 한국전력 부담으로 전기료 인상 유인이 커지는 문제와도 중첩됩니다. 이처럼 비용 문제 속에 RE100(신재생에너지 100%)도 해결되지 않아 클러스터의 투자 실현 가능성에 대한 의문도 상존하고 있습니다.
수도권 지중화, 전력산업기반기금으로
3일 김정호 의원(산업통상자원위원회 위원, 더불어민주당)실에 따르면 정부는 용인국가산단과 용인일반산단을 지원하기 위해 짓기로 한 송전선로와 변전소 건설비 7000억원, 송전선로 지중화 비용 약 1조8000억원 중 상당 부분을 정부가 분담하기로 했는데 그 예산 출처가 전력산업기반기금으로 파악됐습니다. 산업부 측은 “기재부와 관련 예산을 논의할 때 전력산업기반기금으로 충당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본래 송전선로 지중화 비용의 경우 한전과 지자체가 5대5씩 부담합니다. 국비가 들어가지 않지만 정부는 분담한다는 방침입니다. 이전에도 국비로 한시 지원했던 사례는 있습니다. 현재 국회 발의돼 있는 반도체 특별법 중엔 별도 기금을 조성하는 근거도 포함돼 있습니다. 김정호 의원실 관계자는 “관련 법이 국회 통과 되면 새 기금으로 (비용지원을)추진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내다봤습니다.
전반적으로 이런 지원 내용은 반도체에 대한 특혜 논란을 야기합니다. 의원실 관계자는 “한전과 지자체가 5대5로 내게 돼 있는 현재 규정에도 불구하고 특정산업에 대해 국비를 지원한다는 것은 산업별 형평성에도 맞지 않고, 반도체기업이 대기업 중심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형평성 문제, 수도권에 클러스터가 들어선다는 걸 고려할 때 지역 형평성 등 다양한 문제가 발생한다”고 지적했습니다. 특히 “지역별로 지중화율이 8배까지 차이 나는 상황에서 수도권에 국비로 지중화를 한다는 것은 지역균형발전 정책에도 위배될 수밖에 없다”고 평가했습니다.
앞서 같은 산자위 소속 박지혜 의원(더불어민주당)이 한전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서울의 지중화율은 62.2%인 반면, 경상북도는 7.8%로 집계됐습니다. 두 지역 편차가 약 8배에 이릅니다. 한전과 지자체 5대5 비용구조상 지자체의 부족한 예산이 지방의 지중화율이 저조한 이유로 분석되는데, 전력산업기반기금으로 수도권 클러스터 지중화만 지원한다면 예산 형평성과 지역 발전 편차 문제를 가중시킵니다.
지역 편차 키우는 반도체 지원 정책
김정호 의원실 관계자는 "윤석열정부가 전력산업기반기금 요율을 줄여서 규모가 이미 줄었다"며 "전기요금 낮춰준 건데, 규모를 줄여놓고 전력기금에서 또 대규모로 돈을 쓸 일을 만드는 게 문제라고 볼 수 있다. 재생에너지, 에너지 효율화 지원 분야 등에 써야 하는 전력산업기반기금 규모가 그만큼(반도체 송전망에 드는) 줄어들 것”이라고 짚었습니다.
전기사업법 제48조에 따르면 기금 사용 대상 사업은 신재생에너지 발전사업자와 전력수요 관리사업, 전원개발 촉진사업, 도서벽지의 주민 등에 대한 전력공급 지원사업, 전력산업 연구개발, 전기안전 분야 등 폭넓게 규정돼 있습니다. 이를 반도체에 더 할애할수록 지원 예산이 줄게 되는 분야도 많아진다는 의미입니다.
애초 신재생에너지 개발에 용이한 지방이나 해안가에 클러스터를 지었다면 RE100 달성 가능성을 제고해 삼성과 SK가 약속한 수백조원 반도체 투자 실현 가능성도 높이고 막대한 송전망 비용과 그에 따른 국민 부담도 덜했을 것이란 지적이 나옵니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RE100 달성 환경이 열악한 대만의 경우 TSMC가 역내 투자를 약속하면서 RE100 이행 계획까지 내놨습니다. 반면 국내 삼성과 SK는 국내 RE100 관련 공개한 구체적 계획이 없고 투자 일정도 미뤄지고 있어 약속 이행 여부에 대한 우려가 나오는 형편입니다.
한편, 막대한 송전망 투자는 한국전력 적자부담을 키웁니다. 지난 3분기 한전의 영업적자는 7737억원(별도)으로 전체 유가증권시장 상장사 중 최하위였습니다. 여기에 투자부담이 늘어나면 한전의 전력요금 정상화 요구도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또 용인반도체클러스터는 LNG발전소로 급한 전력수요부터 해결한다는 계획입니다. 이 때문에 RE100 달성 문제도 생깁니다. 애플, 퀄컴, 엔비디아 등 글로벌 빅테크들이 RE100 탓에 TSMC 등 글로벌 경쟁사와 비교해 국내 기업을 공급망에서 밀어낼 수 있다는 우려입니다.
이재영 선임기자 leealive@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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