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통과 악다구니로 일관하던 그가 또 ‘기생’ 발언으로 사고를 쳤다. 국악인들의 분노와 후폭풍에 얼버무린 사과를 하기는 했다. 이전에도 그랬던 그가 이후에 바뀌기를 기대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마침 노벨문학상의 쾌거를 안겨준 한강 작가의 낮은 목소리와 대조되면서, 정치인과 문학 작가가 다를 수밖에 없음에도, 빗나간 호통과 악다구니가 우리 정치의 황폐함을 대변하는 듯했다.
권력투쟁의 정치현실에서는 악다구니가 나올 수 있다. 때로는 필요하다. 시대적인 분노도 담아내야 한다. 억압받는 자, 차별받는 자를 대변하고 비리를 향해 호통치는 고함도 필요하다. 그러나 요즘의 막말과 호통, 악다구니는 품위를 잃은 권력남용이다. 공의를 위한 분노가 아니라 빗나간 악다구니다.
진영정치가 극단화되면서 동반된 현상이다. 공격적일 수밖에 없는 야당의 역할에 사법리스크까지 겹친 민주당 쪽에서 더 두드러진다. 이제 한계에 달한 듯하지만, 정치의 최종 주체인 국민들의 상당수도 이런 진영정치에 포섭돼 있다.
정치가 공동체의 가치를 위한 경쟁이 아니라, 자신들의 권력이권을 위한 투쟁이다. 진영의 권력 이권이 그들에게 최고의 가치다. 직접적인 폭력 전투만 없을 뿐, 사실상 전쟁의 정치가 된다. 마약 조직 카르텔의 싸움과 다를 바 없는 진영 카르텔을 위한 권력투쟁이다. 극단적인 언사를 쓰는 사람들이 전사처럼 나선다. 나찌 이론가 칼 슈미트(Carl Schmitt)가 ‘적과 동지를 구분하는 것’이라고 규정했던 정치, 그런 정치가 구현되는 양상이다.
정치세력이 독점화되면 진영정치가 극단화될 가능성이 더 커진다. 굳이 기득권의 손실을 감내하는 자기혁신에 나서려고 하지 않는다. 제로섬게임의 권력구조이기 때문이다. 상대의 몰락을 기대하고 상대에 대한 공격으로 돌파하려 한다. 정치적 리더십의 성향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요즘 우리 정치 상황이 딱 그렇다. 더구나 양 쪽 진영이 서로 결정적 취약점을 안고 있다. 한국 정치사 초유의 상황이다. 알다시피 윤석열 정권은 집권 중반임에도 정권 말기인 듯 수렁에 빠지고 있고, 야당의 대표는 김민석 의원이 자인하듯 국제적 망신 상황에 처해 있다. 물론 김 의원은 망신 상황의 책임을 이재명 대표 자신이 아니라 검찰에 두고 있다.
지난 몇 년 동안 막말 정치는 거의 일상적이다시피 했다. 이전에도 그런 정치인들이 간혹 있었으나 특이한 개별 정치인들의 특성에서 비롯된 이변이었다. 간혹 나타난 분노의 정치도 국민의 분노를 담아내는 카타르시스였다. 최근 막말, 악다구니 정치는 비생산적일 뿐 아니라, 우리의 정치 풍토를 황폐화시키고 있다.
진영정치와 맞물린 권력정치는 정치인의 덕목과 품위를 뒷전으로 밀어내고 있다. 예의염치나 책임의식에 별로 주목하지 않는다. 심지어 정치가 도덕과 법치를 넘어서는 것이라는 황당한 소리를 하는 어느 유명인사도 있다. 현실의 정치에서는 속이 시꺼멓고 얼굴 두꺼운 후흑의 정치인이 성공하기 쉽다 하더라도 우리는 정치인의 사람됨에 주목해야 한다. 그래야 진영도 혁신되고 최악의 한국정치 상황도 제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며칠 전 발표된 2024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들이, 국가별 차별적 발전의 배경을 분석하면서, 경제발전과 민주화를 건전한 방식으로 이뤄내 성공한 나라로 한국을 추켜세웠다. 그러나 요즘 정치상황은 참담하다. 올해를 넘기기 전 판가름이 날 양 진영의 위기가 한국정치 전환의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김만흠 전 국회입법조사처장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