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윤영혜 기자] 전 세계적 탈원전 바람이 주춤해지고 있습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에너지 안보 위기가 심화되고 막대한 전력을 요구하는 인공지능(AI), 로봇, 빅데이터 등 디지털 시대가 도래하면서 전력 수요가 증가하고 있기 때문인데요. 기후 위기 가속화로 원자력이 '저탄소 에너지원'이라는 공감이 확산되면서 우호적 분위기도 조성되고 있습니다.
국제사회가 탈원전을 폐기하는 흐름 속에 주목해야 할 국가는 '중국'입니다. 중국은 정부 차원에서 모빌리티 전동화 방침을 수립하는 등 전 산업이 고도화 과정에 있습니다. 전력 수요가 급증할 수밖에 없는데요. 14억명 중국인들을 먹여 살리는 농업 분야에서도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이 필수적인 상황에서 '원전'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큰 손 중국, 원전 건설 100기 넘어
석탄 화력 의존도가 높은 중국은 대기오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오는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05년대비 60% 수준으로 낮추고 2030년을 정점으로 탄소 배출량을 감소세로 전환할 방침입니다.
이를 위해 중국은 원전 확대를 추진하는 중입니다. 지난 2022년 3월 국가발전개혁위원회(NDRC)와 국가에너지부(NEA)는 제14차 5개년 계획(2021~2025)을 통해 향후 15년간 150기 이상의 원전을 건설할 계획을 밝혔습니다.
우선 2025년까지 원전 설비용량을 70기가와트(GW)까지 확대하는데요. 2025년 원전 발전량 비중은 전체의 3.1%까지 올라갑니다. 2060년 목표 원전 비중은 18.7%입니다.
올해 중국의 신규 원전 건설 승인은 연간 최대 규모입니다. 중국 국무원 상무위원회는 지난 8월 리창 총리 주재로 연 회의에서 신규 원전 11기를 짓는 총 5개 프로젝트를 승인했습니다.
중국 핵에너지산업협회(CNEA)에 따르면 중국에는 현재 56기의 원전이 가동 중입니다. 중국 총 전력 수요의 약 5%에 해당하는 용량인데요.
건설 중인 원자로는 30기입니다. 중국 국영 투자은행인 중신증권(CITIC Securities)은 중국 정부가 향후 3년에서 5년 동안 매년 약 10기의 신규 원자로를 승인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구체적으로 제시된 원전 건설 계획 등을 종합하면 중국에선 총 100기가 넘는 원전이 건설되는 셈입니다.
관련 프로젝트도 활발히 추진하고 있습니다. 신규 원전 건설, 가스냉각고속로(GFR)·소형모듈원자로(SMR)·부유식 원자로 등 첨단 원전기술 실증 프로그램, 원자력 기반 청정 난방 시스템 구축, 해수 담수화 등입니다. SMR 연구개발과 실증·상용화에도 약 90억달러(12조1230억원)가 투자되고 있습니다.
현재 최다 원전 보유국은 93기를 보유한 미국이지만 건설 중인 원전은 1개뿐입니다. 중국은 원전 가동국 순위로는 프랑스(56기)와 함께 세계 2위입니다. 블룸버그 통신은 "중국이 2030년까지 프랑스와 미국을 제치고 세계에서 가장 많은 원전을 보유하게 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지난 6월 19일 중국 장쑤성 롄윈강시에 건설 중인 톈완 원자력 발전소의 모습. (사진=신화,연합뉴스)
반도체·배터리 이어 원전까지 추격
중국이 2030년까지 원자력 발전에서 미국마저 능가할 것으로 전망되면서 미국 내에서도 경고의 목소리가 나옵니다. 지난달 미국 내 첨단기술·혁신정책 분야 최고 싱크탱크인 정보기술혁신재단(ITIF)은 미국 하원 미중전략경쟁특별위원회 행사에서 중국의 혁신에 따른 도전에 대처할 것을 촉구했는데요.
스티븐 엣젤 ITIF 부대표는 원자력, 반도체, 인공지능(AI), 전기차, 재료과학 등 핵심 기술 분야 중국 기업 44곳의 혁신 성과에 대해 20개월간 조사를 진행한 결과 "중국의 혁신 시스템이 완벽하지는 않지만 이전보다 훨씬 강하다는 것을 발견했다"고 말했습니다.
중국 기업들의 반도체 혁신 속도는 보통이지만, 원자력, 전기차, 배터리에서 최고의 성과를 내고 있다는 분석인데요. 4세대 원자로의 배치 규모에서 중국은 미국보다 10∼15년 앞설 가능성이 크다는 설명입니다.
전기차, 배터리, 반도체 등은 한국 기업의 주요 수출 분야입니다. 다행히 현재 중국은 자국 내 원전 건설이 시급해 한국과 경쟁 구도가 치열하지는 않은데요. 이 같은 추세라면 한국을 따라잡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됩니다. 임채영 한국원자력연구원 원자력진흥전략본부장은 "사실 중국이 언제 (서방 등) 해외 시장에 본격적으로 나올 지가 걱정"이라며 "조선, 반도체 등 다른 산업과 마찬가지로 원자력 분야에서도 중국이 노하우를 많이 축적하고 있어 한국의 경쟁자가 될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세계원자력협회에 따르면 중국 원자력 기술의 뿌리는 프랑스, 캐나다, 러시아지만 한국은 미국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는데요. 중국도 최근에는 미국 기술을 적극 받아들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중국은 CAP1400 원자로 개발과 이후 화룡 원 원자로 개발을 통해 완전한 연료주기 능력을 바탕으로 원자력 기술을 수출한다는 확고한 정책을 가지고 있습니다. 중국의 경제 및 외교적 영향력을 활용해 정치적으로 높은 수준에서 추진되고 있는데요. 파키스탄, 루마니아, 아르헨티나, 이란, 남아공, 케냐, 이집트, 수단 등에 중국 원전이 건설 중이거나 협의가 진행 중입니다.
다만 원자력 피해와 관련해 민사 책임에 대한 국제원자력기구(IAEA) 협약에는 아직 가입하지 않은 상태입니다. 사용 후 연료 회수를 위한 준비가 아직 돼 있지 않은 점도 한국에 기회로 작용할 전망입니다.
윤영혜 기자 yy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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