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재영 선임기자] 고려아연 공개매수에 경영권 분쟁 중인 장씨(장형진 영풍 고문)와 최씨(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일가가 상호 법적 위반행위를 주장합니다. 장씨는 최씨에 여러 상법 위반과 사익편취 의혹 등을 제기했습니다. 최씨는 장씨가 펀드에 경영권을 넘기는 것은 영풍에 대한 배임이라 주장했습니다. 고려아연 내 개인주주 비중이 적어, 기관투자자들이 주된 공개매수 대상인 가운데, 이같은 대리인 문제가 기관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칩니다. 더욱이 울산 토착기업에 대한 해외자본으로의 매각 이슈가 불거져, 국내 기관은 이 부분도 고려하게 됩니다. 기관투자자를 설득하기 위한 양측의 명분 싸움이 치열합니다.
19일 고려아연 공개매수 관련 기자회견에서 김광일 MBK파트너스 부회장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이재영
해외이탈 우려에 “고용유지·국내매각” 약속
19일 MBK파트너스는 공개매수에 대한 기자회견을 열고 해외자본 매각 이슈에 대한 입장을 상세히 밝혔습니다. 우선 중국에는 팔지 않겠다는 입장을 못박았습니다. 다만, 영풍과의 주주계약이 장기간이 될 것이라며 펀드의 엑시트는 먼 나중 일이라고 미뤘습니다. 그러면서도 고려아연이 국가 기간산업임을 명확히 인식하고 있다며, MBK파트너스가 국내 허가 받은 토종펀드로서 정부와 반목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김광일 MBK 파트너스 부회장은 “중국에 팔린다는 소문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중국에 매각할 생각이 전혀 없다”며 “우리는 한국 당국의 감독을 받는 토종펀드라 중국에 팔아서 어떻게 사업할 수 있겠나. 할 수도 없고 하지도 않는다. 걱정을 접어달란 얘기”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펀드는 엑시트(투자금 회수)가 불가피합니다. 이에 대해선 “지금 얘기할 단계는 아니지만 정부 당국자도 보고 계실 건데, 중국에 매각하지 않는다고 약속드린다”며 “저희 희망은 국내 대기업이 (차후에)가져가지 않을까 희망한다. 물론 금방 돌아서서 파는 것 없다. 오랜 기간 (지분을)갖고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는 중국은 아니지만 해외기업에 팔릴 여지를 남겨둔 의미로도 들립니다. 이에 대해 김 부회장은 “고려아연이 한국의 기간산업임을 명확히 인식하고 있고 우려할 일 없도록 할 것”이라며 “당연히 국내에 팔아야 한다”고 더 구체적으로 약속했습니다.
앞서 김두겸 울산시장 등은 MBK파트너스에 중국계 자본이 섞여 기술 유출 등이 우려된다며 공개매수에 반대하는 입장을 내놨습니다. “사모펀드의 약탈적 인수합병 시도”라고 보고 울산시민과 함께 “고려아연 주식 사주기 운동을 펼치겠다”고도 했습니다. 고려아연이 세계 1위 비철금속 제련기업이라 경영권을 바꾸는 시도에 여론이 민감합니다. 이에 MBK파트너스 측은 현재 펀드에 출자한 “중국계 자본이 5% 안팎에 불과하다”고 부연했습니다.
해외자본에 팔리지 않더라도 영풍그룹 내 핵심계열사였던 고려아연의 경영권이 MBK파트너스에 이전됨으로써 그룹에서도 이탈할 가능성이 생깁니다. 이 문제를 두고 고려아연 측은 상장법인 영풍에 손해를 초래할 수 있는 배임이라고 공격했습니다. 그러나 강성두 영풍 사장은 “지금처럼 최 회장이 독선적이고 독재적이고 불투명하게 회사를 좌지우지하는 걸 방관하는 게 영풍 주주에 대한 가장 큰 배임”이라며 “코퍼릿거버넌스(기업지배구조)를 강화하기 위해 지배권 강화 목적의 공개매수를 해서 경영을 정상화시키는 게 영풍 주주에게 할 수 있는 대주주의 책무이자 의무라는 생각”이라고 반박했습니다.
영풍과 MBK파트너스 측이 제기하는 최 회장에 대한 의혹은 고려아연의 원아시아파트너스 관련 손실, SM엔터 주가조작 관여, 이그니오홀딩스 투자 건 등입니다. 이와 관련 고려아연 회계장부 등의 열람 및 등사 가처분 신청을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제기한 상태입니다. 강 사장은 이그니오 투자 당시 이사회 심의를 통과한 부분에 대해 “당시 불확실하고 불투명한 거래 아닌가 싶어 상세 실사, 투자 심의 보고서가 있으면 달라고 박기덕 (고려아연)사장에게 요청했다”며 “이후 3개월 지나 받은 1페이지짜리 보고서로는 합리적 의혹을 해소하기 어려웠지만, 당시엔 경영권 분쟁이 있기 전으로 75년간 동업관계에서 경영대리인을 신뢰한다는 의미에서 동의했던 것이다. 이사회 9명 중 장 고문이 반대했어도 통과됐을 것인데, 그런 면에서 코퍼릿거버넌스가 개선돼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19일 기자회견장에 참석한 강성두 영풍 사장(왼쪽)과 이성훈 베이커매킨지코리아 변호사. 사진=이재영
“매수가 프리미엄 51.4%”…공개매수가 안 바꾼다
MBK파트너스 측은 이번 공개매수가 실패하지 않을 것에 강한 자신감을 보였습니다. 이날 장중 주가는 7만원대로 공개매수가인 6만6000원을 넘긴 상태지만 매수가를 올릴 계획이 현재로선 없다고 했습니다. 고려아연 내 개인투자자 비중이 적고 기관투자자가 많은데 이들의 매수가보다 현 공개매수가가 크게 웃돈다는 분석입니다.
공개매수량은 최소 6.98%에서 최대 14.6%입니다. 매수는 9월13일부터 10월4일까지 진행됩니다. MBK파트너스는 최소 매수예정량보다 응모 주식 수가 미달할 경우 전량 매수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러면 공개매수는 실패합니다. 최소 예정량만 넘기면 응모 주식은 전량 매수합니다.
김 부회장은 “이번 공개매수는 충분히 가능하다”며 “개인투자자가 거의 없고 워낙 우량하고 좋은 회사라 장기투자 목적의 기관투자자가 많이 들어와 있다. 저희는 기관투자자의 평균 취득단가가 45만원 아래쪽으로 파악한다. 따라서 66만원 공개매수 가격은 51.4% 정도의 프리미엄이 붙은 가격”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분석대로면, 기관투자자가 매수에 응할 확률은 높아 보입니다. 그래서 더욱 이번 싸움은 명분 다툼으로 번집니다. 이날 고려아연 노조도 “약탈적 공개매수 시도를 중단하라”며 반기를 들었습니다. 아무래도 펀드에 인수되면 구조조정이 잦았던 선례가 작용합니다. MBK파트너스 측은 고용유지를 약속했지만, 임직원의 경우 경영환경이 바뀔 것은 감수해야 합니다.
박기덕 사장과 정태웅 사장도 공개매수에 대한 공식 의견서에서 “영풍이 기업사냥꾼 MBK파트너스와 결탁해 일방적으로 진행하는 공개매수로서, 당사 경영권을 인수한 다음 해외 자본에 재매각하는 경우 국가기간산업 및 2차전지 소재 관련 핵심 기술과 역량이 해외로 유출될 우려가 심대하다”며 반대 의사를 표했습니다.
한편, LG화학, 현대차, 트라피규라, 한화그룹 계열사 등 고려아연 우호지분이 공개매수에 반응할지 변수입니다. 한화그룹 7.8%, 현대차 계열 HMG 5%, LG화학 1.9%, 트라피규라 1.5% 등이 고려아연 내 분포합니다. 영풍그룹 및 장씨일가 지분이 모두 33.1%인 가운데 최윤범 회장 및 직계가족 지분이 13.4%, 범 최씨일가 지분이 2.2%입니다. 여기에 이들 우호지분이 국민연금 7.8%를 비롯한 기타주주 48.8% 안에 포함됩니다. MBK파트너스 측은 이번 최소 매수예정량만 확보해도 지분 44% 정도를 확보하는데, 주주총회에서 주요 안건을 통과시키기엔 충분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 외 2.4% 자사주 및 추가 인수분에 대해선 MBK파트너스가 전량 소각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김 부회장은 “(LG화학 등)이분들은 최 회장 측과 의결권을 공동행사하기로 약속한 바 없다”며 “그래서 고려아연의 전략적 파트너들로서 5% 주주 공시도 안한 것이다. 저희는 최 회장의 우호지분으로 생각 안하고, 고려아연의 우호세력으로 생각한다. 당연히 이분들과 (사업적)협력은 강화할 것”이라고 언급했습니다.
이재영 선임기자 leealive@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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