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열린 민주당의 첫 번째 전국당원대회는 그야말로 축제의 장이었습니다. 이른 아침부터 올림픽공원에 모인 수만명 당원들의 뜨거운 열기는 이재명 대표가 박찬대 원내대표로부터 전달받은 당기를 흔드는 순간 정점에 이르렀습니다. 잘 짜인 각본이었던 이 대표의 대관식은 순조롭게 종료됐습니다.
사실 이날 전당대회를 지켜보는 사람들의 관심사는 따로 있었습니다. 이 대표의 연임은 예정된 수순이었기에, 그의 호위무사가 될 인물이 누구일 지에 더 많은 시선이 모아졌던 것인데요. 조금 더 정확히는 정봉주 전 의원이 최고위원 당선권인 5위 안에 들 것인지였습니다.
정 전 의원은 지역 경선 초반만 해도 압도적인 선두를 달렸습니다. 과거 이명박정부에서 강하게 싸웠던 이미지 덕분에 윤석열정부를 향해서도 거침없는 비판을 날릴 것이란 당원들의 기대감이 있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 대표가 김민석 의원을 공개적으로 지지하면서 상황이 반전됐습니다. 이 대표가 자신의 유튜브 라이브 방송에서 김민석 의원의 득표율이 낮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직후 경선부터 지지율이 역전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다만 그럼에도 정 전 의원은 상위권을 유지했습니다. 수석 최고위원은 '명픽'(이재명의 선택)인 김민석 의원으로 밀어주더라도, 정부와 각을 세울 정 전 의원에게도 여전한 지지를 보냈던 것인데요. 지난 4일 민주당의 본진인 광주·전남 경선에서 그가 등장했을 때만 해도 열화와 같은 함성이 수 초간 이어지자 정 전 의원은 "친인척들이 왔나 보다"라며 겸연쩍음을 애써 감추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에 대한 지지가 꺼지는 것은 한순간이었습니다. 그가 이재명 대표 저격을 한 시점부터인데요. 박원석 전 의원이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정봉주가 열받아 있다'는 식의 언급을 하면서 그에 대한 비난 여론이 높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이재명 대표의 강성 지지층에서는 "정봉주가 이재명 등에 칼을 꽂았다" 등의 비난이 줄을 이었습니다.
불난 집에 기름을 부은 것은 다름 아닌 정 전 의원 본인이었습니다. 그는 긴급 회견을 열어 '이재명 저격' 발언에 대해서는 "사적 대화라 과장된 측면이 있다" 정도로 적극적인 해명을 하지 않은 채 되레 '명팔이 척결'을 전면에 내세운 것인데요. 명팔이가 구체적으로 누구를 지칭하는 것이냐는 질문에는 "이 회견이 끝난 후 고개를 드는 자들"이라고 모호하게 답했습니다.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입니다. 강성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어떻게든 정봉주를 떨어뜨려야 한다"는 의견이 대세로 떠올랐습니다. 그의 사퇴를 촉구하는 시위까지 벌어졌습니다.
마지막 지역 경선이었던 서울까지의 누적 결과 정 전 의원의 득표 순위는 3위. 당선권인 5위 후보와의 격차는 1만표 정도였습니다. 권리당원의 ARS 투표와 대의원 투표, 일반 여론조사 결과를 합산한 최종 순위를 쉬이 예단하기 어려웠습니다.
정 전 의원이 마지막 정견 발표를 위해 연단 위에 오른 순간, 객석에서는 엄청난 야유가 빗발쳤습니다. '이재명 사당'을 비판하며 당대표에 출마했던 김두관 후보보다도 더 거센 비난과 고함, 조롱의 목소리가 쏟아졌습니다. 2주 사이에 그를 향한 반응이 완전히 뒤집어진 것입니다. "혼자 왔습니다"라고 입을 뗀 정 전 의원은 끝까지 윤석열정권 타도를 외치며 지지를 호소했으나, 끝내 6위로 레이스를 마쳤습니다.
전당대회가 끝난 지 며칠이 지났지만, 정치권에서는 여전히 그의 탈락이 화두인데요. 여야 사정에 두루 정통한 한 인사는 "이재명 배신은 곧 죽음이라는 좋은 본보기가 됐을 것"이라고 꼬집었습니다.
김진양 정치팀장 jinyangkim@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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