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한국정치의 신세계
2024-08-21 06:00:00 2024-08-21 06:00:00
민주당이 명실상부한 이재명당임을 확인했다. 예전에도 김대중당, 김종필당 등 당명 대신에 정당 실세의 이름으로 통칭했던 경우들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민주당의 이재명당은 그 배경과 양상이 다르다. 초유의 현상이다. 이 대표의 연임은 예상된 바였으나, 최종 경선에서 전현희 후보의 수직상승과 정봉주 후보의 추락은 민주당의 실상을 극적으로 보여주었다.  
 
2기 이재명 대표체제가 시작되면서 민주당은 586운동권 카르텔정당에서 이재명을 옹위하는 이재명당으로 일단은 전환됐다. 2004년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으로 정치권에 대거 진출한 친노+586운동권 세력이 그동안 민주당의 주류 세력이었다. 그러나 몇 번의 집권을 거치고 정치 기득권층이 되면서 도덕적 헌신과 민주주의라는 운동권의 자산은 소진됐다. 새로운 비전으로 혁신하지 못한 채 단지 권력 이권으로 뭉친 카르텔 세력이 됐다. 이재명 1기 체제에서 이들이 점차 소외되고 친명 호위세력이 부각되더니 이번 전대를 통해 완전한 이재명 체제로 정비됐다. 물론 불안하기는 하다.
 
최고위원 전원도 이 대표 충성파로 재편됐다. 경선에서 1위를 차지해 수석최고위원이 된 김민석 의원이 유일한 운동권 출신이었다. 그러나 그는 이미 이재명을 호위하는 ‘찐명’으로 변신했다. 최고위원 출사표도 이재명 집권플랜의 본부장을 맡겠다는 것이었다. 사법리스크 향배가 불확실하고 당내 대선후보 경선도 2년여가 남은 상황에서 이재명 1인에 명운을 건 충성경쟁이 정상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이 대표에 대한 충성이 당내 지지의 기본 조건처럼 돼버린 요즘 민주당의 분위기였다. 전대 막판에 이런 풍토에 맞서는 전략으로 ‘명팔이’를 공격했던 정봉주 후보는 여지없이 퇴출당했다.
 
이 대표는 대선 후보 시절 ‘민주당의 이재명’이 아니라 ‘이재명의 민주당’을 만들겠다고 했다가 역풍이 불자 거둬들인 적이 있다. 민주당의 역사와 정체성을 이재명 후보로 대체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더구나 이런저런 논란의 후보자였다. 최근 이 대표는 11개 혐의로 형사재판을 받고 있고, 2건의 1심 재판 결과가 10월경에 나올 예정이다. 이 대표의 혐의들이 민주당의 역사와 무관한 일이지만, 민주당 내부의 그에 대한 충성도는 더 강해졌다.
 
김대중, 김영삼 등은 각각 자신들의 정치적 카리스마를 기반으로 정당을 만들었다. 반면에 이재명 대표는 민주당의 비주류로 자치단체장을 거쳐 대통령 후보가 된 경우다. 비주류에서 주류로 성장한 정치인은 드물지 않으나, 교주처럼 당을 장악한 경우는 처음이다. 이번 전대 과정과 결과에서 보여주듯이 이제는 이 대표를 교주로 한 종교집단처럼 돼있다. 이 대표의 과거 오점과 재판 중인 혐의들도 충성스런 지지자에게는 마치 고난의 행군 같은 위대한 지도자의 서사가 돼버렸다.
 
어느 민주당 의원은 이게 시대정신이라고 말한다. 일원화된 전체주의 모습이 시대정신은 아닐 것이다. 이견을 가진 자를 협박하는 조직을 민주정당이라고 할 수 없다. 개인의 사법적 책임을 정당의 운명으로 끌어들인 것도 매우 비상식적이다. 개인보다 집단의 오류가 교정되기 훨씬 어렵다. 집단의 광기가 오류에 대한 성찰을 가로막기 때문이다. 다른 한쪽에서는 민심과 동떨어진 인사를 밀어붙이며 시대착오적 발언을 이어가는 대통령의 리더십이 짝을 맞추고 있다. 한국정치의 이상한 신세계다. 오는 10월 또 한 고비를 남기고 있다.
 
김만흠 전 국회입법조사처장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지난 뉴스레터 보기 구독하기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