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인사청문회에서 공직 후보자의 도덕성을 검증하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법인카드 사용내역입니다. 현재 국회에서 열리고 있는 방송통신위원장과 고용노동부 장관 인사청문회에서도 법인카드 사용 금액과 명세가 논란거리로 부각되었습니다.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는 경제사회노동위원장 재직 시절인 1년10개월 동안 5천만원에 달하는 법인카드를 사용해 물 쓰듯 펑펑 썼다고 비판받았습니다.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는 대전MBC 사장 시절 유흥업소, 골프장, 백화점, 호텔 등에서 수천만 원을 법인카드로 결제한 내역이 지적되었습니다. 휴가 기간에 음식점이나 카페에서 법인카드로 지출한 것은 사적인 용도로 사용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받았습니다.
참 말도 탈도 많은 법인카드입니다. 법인카드는 통상 기관장이나 부서장의 업무추진비라는 명목으로 배정된 예산을 지출하는 수단입니다. 현금 대신에 카드를 사용하기 때문에 회계 투명성을 높이는 효과가 있습니다. 사용처와 금액을 인터넷 홈페이지에 공개해 남용이나 유용을 방지합니다. 그런데도 기관장의 ‘쌈짓돈’처럼 오해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처럼 논란이 되면 아예 예산을 대폭 줄여놓거나 법인카드 사용을 금지하면 되지 않을까요? 그렇지 못한 게 현실입니다.
대부분의 법인카드는 예산 명칭 그대로 업무추진 목적으로 사용됩니다. 호텔이나 음식점에서는 기관이 주관하는 행사를 위해 지출합니다. 부서 직원들의 회식이나 경조사 비용 지원을 위해서도 법인카드를 사용합니다. 기관의 행사나 직원 복지용이지만 예산은 대표자인 기관장의 업무추진비로 잡아두고 법인카드로 지출합니다.
요즘은 지출결의서나 회계처리가 전산화되어 기관장이 법인카드를 사적으로 사용하기 어려운 환경이 조성되었습니다. 법인카드를 한번 사용하면 들여다보는 직원들이 수십 명입니다. 비서실에서 회계팀, 전산실, 감사실 등의 관련 부서에서 법인카드 사용처와 내역을 다 알게 됩니다. 조금이라도 사적으로 사용하면 전 직원들에게 소문나서 체면을 구기기에 십상입니다.
기관장의 법인카드 내역은 담당부처와 감사원도 살펴봅니다. 이처럼 보는 눈이 많은데 몇천만 원의 금액을 사적으로 유용하려면 정말 간이 붓고 얼굴이 두꺼워야 합니다, 그런데도 국회 청문회에서 단골 메뉴로 등장하는 것은 법인카드 지출액이 몇천만 원이고 사용처가 호텔과 골프장이라 하면 국민의 혈세를 방만하게 지출하는 기관장으로 낙인찍기 딱 좋기 때문입니다.
민간 대기업에서는 법인카드를 사적으로 사용한 것이 어느 정도 허용됩니다. 임원급의 경우에 법인카드는 급여에 더해 제공되는 일종의 ‘부대 혜택’(Fringe Benefit)으로 취급됩니다. 직급이 높아질수록 법인카드의 금액과 한도도 달라집니다. 고위경영진에게는 품위 유지비 성격의 지출이 허용됩니다. 영업담담 임원에게는 용도 묻지마식의 법인카드가 지급되어 어디서건 제한 없이 거래처 접대를 위해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이 부여됩니다.
각 임직원에게 배정된 복지혜택을 자기 원하는 용도로 법인카드를 사용하도록 합니다. 가족들과 해외로 휴가 여행가는 비용도 법인카드로 지출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회사에서 어떤 법인카드를 부여받았느냐는 그 회사에서 얼마나 인정받느냐를 나타내는 상징입니다. 이게 진짜 남에게 자랑할 수 있는 법카의 위력입니다.
중소기업의 경우에 법인카드는 기업주가 회삿돈을 개인돈처럼 사용할 수 있는 창구로 악용되기도 합니다. 극소수이기는 하지만, 법인카드로 사치품을 사고 장을 보며 생활비도 지출합니다. 집안 식구들에게 하나씩 법인카드를 발급해 모든 가족이 그 혜택을 누립니다. 해외 유학 간 자녀를 현지 주재원으로 둔갑시켜 생활비를 법인카드로 내도록 합니다. 하긴 대기업도 오우너 가족과 친인척이 경영진에 참여하는 이유 중에 하나가 법인카드와 업무추진비를 사용할 수 있는 매력때문일 겁니다.
법인카드가 가장 나쁘게 악용되는 사례는 뇌물의 수단으로 제공되는 겁니다. 정치인이나 공무원이 이해가 얽힌 기업의 법인카드를 받아 사적으로 사용하는 것이지요. 몇 년전에 어느 분이 국회 청문회에 나왔는데 개인카드 지출 내역이 하나도 없었다고 합니다, 그분을 담당했던 대기업의 대관 임원 말이 자기네 법인카드를 사용했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경기도 부지사를 역임한 정치인은 민간기업에서 받은 법인카드를 개인적으로 사용한 것이 뇌물혐의로 인정돼 유죄를 선고받기도 했습니다. 알다가도 모를 법인카드 요지경입니다.
임채운 서강대 경영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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