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유지웅 기자] '통신 조회' 파문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하고 있습니다. 이재명 민주당 전 대표 등을 포함해 그 대상이 3000명에 이른다는 의혹까지 제기됐는데요. 사실상 검찰은 정치인·언론인·관계자의 연결망을 모두 파악할 수 있는 겁니다. 검찰은 적법하고 정당한 수사였다고 주장하지만 '자의적 판단'에 불과한데요. 검찰 권력에 대한 '사법 통제'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검찰 깃발. (사진=연합뉴스)
7개월 지나 통보…법 해석은 '검찰 마음'
민주당 등 야권은 5일 검찰이 '대선 개입 여론 조작' 사건 수사 과정에서 이재명 전 대표 등 야당 정치인과 언론인 등 다수의 통신 자료를 조회한 것에 대해 강력히 반발했습니다. 박찬대 민주당 당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 최고위원회의에서 "국민 '입틀막'(입을 틀어막는 행위)과 방송장악 쿠데타로도 부족해 이젠 대놓고 불법 정치사찰까지 자행한다"며 "게슈타포가 판치는 나치 정권"이라고 일갈했습니다.
황운하 조국혁신당 원내대표도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수천 명의 통신자료를 조회한 검찰이 '주가조작'과 '명품백' 사건에서 김건희 여사의 통신자료를 조회한 적이 있는지 봐야 한다"며 "검찰은 통신조회를 어떤 명목으로, 몇 명을 대상으로 했는지 밝히라"고 목소리를 높였는데요.
앞서 지난 2일 검찰은 다수의 정치권·언론계 인사 등에게 이들의 '통신 이용자 정보'를 이동통신사로부터 제공받은 사실을 통지했습니다. 전기통신사업법에 따르면, 수사기관은 30일 이내에 통신이용자정보 조회 사실을 당사자에게 알리게 돼 있는데요. 검찰의 조회 시점은 지난 1월로 무려 7개월이나 지나 이를 통지한 겁니다.
본지 취재에 따르면, 검찰이 통신조회를 한 인원이 3000명에 달하는 주장도 나왔습니다. 여기에는 이재명 전 대표와 추미애 의원 등 민주당 의원 10여명, 다수의 보좌관, 기자도 포함된 걸로 파악됐는데요. 이날 오전부터 민주당은 당 차원에서 해당 문자를 받은 보좌관을 파악하고 있습니다.
검찰이 대규모 통신조회를 통해 밝히려는 사건은 '윤석열 명예훼손 사건'입니다. 검찰은 사건 핵심 피의자인 김만배씨와 신학림 전 언론노조위원장에 대한 구속 기소가 지난달에야 이뤄진 만큼, 수사 보안을 위해 그동안은 통지가 어려웠다고 해명했습니다. 또 현행법상 증거인멸·도주 등 '공정한 사법 절차 진행을 방해할 우려' 등이 있으면, 최대 7개월까지 유예할 수 있어 적법한 절차라고 덧붙였는데요.
문제는 이 절차가 '검찰'의 판단에 따라서 이뤄졌다는 겁니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2022년 '사후 통보 절차'가 포함되지 않은 통신자료 조회에 대해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고, 국회는 2023년 통신자료 조회 시 30일 이내에 당사자에게 통지하도록 규정한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을 여야 합의로 통과시켰습니다. 수사기관이 통신업체로부터 개인 통신자료를 제공받은 경우, 이른 시간 내에 정확히 밝히라는 취지였습니다.
검찰은 제1야당 대표의 연락망 등 극히 민감한 정보를 수집하면서, 법 취지와 정면으로 맞선 셈입니다. 그러나 검찰은 얼마나 많은 통신자료를 조회했는지, 대상 범위는 어떻게 정했는지, 판단의 근거는 무엇인지는 답하지 않으면서 원론적인 입장만 내놓고 있습니다.
통제권 밖 '검찰 권력'…사실상 헌법 위반
검찰은 '윤석열 명예훼손 의혹'으로 수사받고 있는 기자들의 휴대전화 연락처에 저장돼 있거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메시지를 교환한 사람들을 일괄적으로 조회한 걸로 보입니다. 이는 과거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과 정면 배치되는 발언인데요.
문재인정부 시절인 지난 2021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대선 후보 부부와 소속 의원 89명 등의 통신자료를 조회하자, 국민의힘은 이를 '불법 민간인 사찰'로 규정했습니다. 윤석열 당시 대통령 후보는 "저와 제 처, 제 처의 친구들, 심지어 제 누이동생까지 통신 사찰을 했다. 미친 사람들 아니냐"고 비판했습니다.
그러면서 "원래 국회의원 보좌관만 사찰해도 원래 난리가 나는 건데, 우리 당 의원 단톡방까지 털었다"며 "결국 다 열어본 것 아니냐. 공수처장을 당장 구속수사해야 해야 한다"고 맹공격했는데요.
이번 수사에서 통신조회 대상이 실제 3000명에 이른다면, 이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의 '정치 사찰'이자 '민간인 사찰'인 셈입니다. 더욱이 최근 휴대전화 등 전자정보 저장매체의 복제본을 대검찰청 서버(디넷·D-Net)에 통째로 올려두고 보관하는 검찰의 수사 관행을 둘러싸고 논란이 인 만큼, 이번 사찰 의혹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을 전망입니다.
결국 무분별한 조회를 막기 위해선 '법원 허가'를 받게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개정된 전기통신사업법이 수사기관의 재량을 너무 넓게 허용했다는 평가인데요. 같은 식의 통신자료 조회·통보가 이어질 가능성이 있는 만큼 보완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앞서 지난 2023년 국가인권위원회는 "영장 없는 통신자료 제공 요청을 최소화하고, 이를 제한할 내부 지침을 제·개정하라"라고 권고했으나, 검찰은 사실상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유지웅 기자 wisema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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