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부족했다" 반성에도…채상병·김건희 특검 '거부'
특검은 "정치공세" 규정…김건희 대목서 유일하게 강한 어조
2024-05-09 17:27:07 2024-05-09 18:10:47
윤석열 대통령이 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취임 2주년 기자회견에서 출입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뉴스토마토 박주용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9일 지난 2년간 국정운영 소회에 대해 "많이 부족했다"며 "앞으로 3년, 국민의 삶 속으로 더 깊숙히 들어가겠다"고 밝혔습니다. 이어진 기자들과의 질의응답 과정에서도 "많이 부족했다"는 언급을 반복하며 달라진 모습을 보였습니다. 특히 배우자인 김건희 여사의 명품가방 수수 의혹 등에 대해 "현명하지 못한 처신으로 걱정을 끼쳐드린 부분에 대해 사과드린다"며 고개를 숙였습니다. 해당 사안에 대해 윤 대통령이 공개 사과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하지만 김 여사의 의혹을 규명할 특검(특별검사)뿐 아니라 여야 협치의 가늠자로 통용되는 '채상병 특검'(순직 해병 사망사건 수사 방해 및 사건 은폐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 수용에 대해선 단호히 거부했습니다. 야당과의 협치 필요성과 함께 국회의 협조를 당부하면서도 정작 야권이 단일대오로 추진하고 있는 특검법에 대해선 불가 입장을 고수한 겁니다. 기자회견 통틀어 유일한 강경 어조 역시 김 여사 의혹 대목에서 나왔습니다. 윤 대통령의 거부권(재의요구권) 행사가 국회에서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는 전적으로 국민의힘에 달렸습니다.  
 
631일 만에 기자회견…'국민 24번·민생 14번' 언급
 
윤 대통령은 이날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취임 2주년을 맞아 '윤석열정부 2년 국민보고 및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윤 대통령이 공식 기자회견을 연 것은 취임 100일 이후 631일만입니다. 윤 대통령은 73분간 이어진 출입기자들과의 질의응답에서 정치, 외교안보, 경제, 사회 등 전 분야에서 자유롭게 질문을 받고 의견을 밝혔습니다.
 
윤 대통령은 질의응답 전 '윤석열정부 2년 국민보고 담화'에서 "봄은 깊어 가는데, 민생의 어려움은 쉬 풀리지 않아 마음이 무겁고 송구스럽다"며 말문을 열었습니다. 이어 "국민 여러분의 삶을 바꾸는 데는 저희의 힘과 노력이 많이 부족했다"며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더욱 세심하게 민생을 챙기겠다"고 했습니다. 또 말미엔 "저와 정부부터, 바꿀 것을 바꾸겠다"며 "저와 정부를 향한 어떠한 질책과 꾸짖음도 겸허한 마음으로 더 깊이 새겨듣겠다"고 약속했습니다.
 
22분간 이어진 모두발언에서 '국민'을 총 24번 언급했습니다. 정책은 19번, 경제와 민생은 각각 14번씩 강조했습니다. 윤 대통령은 전반적으로 지난 2년간 '민생'을 제대로 챙기지 못한 점에 대해 부족함을 인정하고 반성하면서 국민들과의 소통 강화에 중점을 뒀습니다. 담화 이후 기자들과의 질의응답에서도 윤 대통령의 이러한 태도는 계속 유지됐습니다. 총선 참패가 가져온 '변화'였습니다. 다만, 총선 패배 후 국정운영 기조의 변화 여부를 묻는 질문에 "민생에 있어서 아무리 노력했더라도 국민들께서 체감하는 변화가 많이 부족했다"며 "미흡한 부분도 솔직하게 말씀드리는 기회를 계속 가져야 되겠다"고 구체적 변화 의지는 밝히지 않았습니다.
 
9일 오전 대구 동대구역 대합실에서 한 시민이 ‘윤석열정부 2년 국민보고 및 기자회견’ 방송을 시청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김건희·채상병 특검법, 모두 '거부'…민주당, 실력행사 예고 
 
그럼에도 국민 여론이 압도적으로 통과를 주장하는 야당 주도의 특검법에 대해서는 "정치 공세" 등의 표현을 써가며 반대 의사를 명확히 했습니다. '김건희 특검법'은 윤 대통령의 배우자를, '채상병 특검법'은 대통령실을 비롯한 윤 대통령을 정조준한다는 점에서 '자기방어용 회피'로 비판받기에 충분했습니다. 
 
윤 대통령은 김 여사 관련 의혹에 대해 처음으로 공식 사과했지만, 야당의 '김건희 특검법'(김건희 여사 주가조작 의혹 특별검사법) 재추진에 대해선 "정치 공세"로 규정하며 맞섰습니다. 윤 대통령은 "특검이라고 하는 것은 검·경, 공수처 이런 (사정)기관의 수사가 봐주기나 부실 의혹이 있을 때 하는 것"이라며 "할 만큼 해놓고 또 하자는 것은 특검의 본질이나 제도 취지에 맞지 않는 정치 공세"라고 반발했습니다. "진상을 가리기 위한 것이 아니다"는 말도 보탰습니다.
 
'채상병 특검법'에 대해서도 "(채상병 순직은) 안타깝고 참 가슴 아픈 일"이라면서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수사 후에도) 봐주기 의혹이 있다, 납득이 안 된다고 하면 그때는 제가 특검하자고 먼저 주장하겠다"고 역공을 폈습니다. 그러면서 "진행 중인 수사와 사법 절차를 일단 좀 지켜보고, 또 수사 관계자들의 마음가짐과 자세를 일단 믿고 지켜보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며 공수처와 경찰의 결론을 지켜볼 것을 요청했습니다. 사실상의 거부권 행사로 읽혔으며, 윤 대통령이 예고대로 10번째 거부권을 행사하면 채상병 특검법은 21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인 오는 28일 재표결에 들어갈 전망입니다. 
 
윤 대통령은 총선 전 '채상병 순직 사건' 수사 외압 의혹의 핵심 피의자인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을 주호주 대사로 임명해 논란이 된 것에 대해서도 "실질적 수사 진행을 하지 않은" 공수처 탓으로 돌렸습니다. 윤 대통령은 이 전 장관에 대한 출국금지 조치를 사전에 알지 못했다고 해명했습니다. 또 "출국금지를 걸면 반드시 불러야 한다"며 "출국금지를 한 달씩 걸게 되어 있는데, 그것을 두 번 계속 연장하면서도 소환하지 않았다는 것은 저도 오랜 기간 수사업무를 해왔지만 이해하기가 어렵다"고 했습니다. 
 
민주당 등 야권은 윤 대통령의 기자회견에 대해 "몹시 실망스럽다", "더 이상 기대가 어려워 보인다"고 비판했습니다.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채상병 특검법' 거부 의사를 밝힌 윤 대통령에게 전면 수용을 거듭 촉구했습니다. 22대 국회에서 '김건희 특검법' 재발의 계획도 밝혔습니다.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도 "김건희 특검법도, 채상병 특검법도 모두 거부했다"며 "지난 대선 때 '특검을 거부하는 자가 범이'이라고 말했던 사람이 바로 윤 대통령"이라고 꼬집었습니다. 그러면서 "윤 대통령에게는 총선 참패 이전이나 이후나 똑같은 세상인 모양"이라고 답답함을 토로했습니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윤 대통령이 기자회견을 했다는 것은 일부 진전이라고 볼 수 있지만 내용면에서 변화가 없다. 국정 방향과 관련한 변화는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며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고 평가했습니다.
 
박주용 기자 rukaoa@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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