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재영 기자] 유가가 급등락해 산업계 업황도 출렁입니다. 원재료값 변동성이 커지면서 산업계 생산 및 수출 채산성도 급변하는 양상입니다. 1분기 유가가 올라 재고 평가이익을 봤던 정유·화학 등 업계가 2분기 이익을 반납하게 되는 식입니다. 산업계 전반적으로 원자재값이 불안해 재고 확보 시점을 정하는 데도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8일 업계에 따르면 100달러에 육박했던 국제유가는 최근 80달러대 초반까지 떨어졌습니다. 정유·화학은 1분기 유가 급등에 따른 재고 효과를 봤지만 2분기에 반납하게 됐습니다. 1분기엔 유가가 계속 오르막을 탔지만 2분기부터 반전돼 기저효과가 예상됩니다. 유가가 급등하면 기존에 확보해둔 재고 가치도 오릅니다. 이른바 래깅효과입니다. 원자재값에 모두 적용되는데, 원유를 직접 구매하고 가공하는 정유, 화학업계의 영향이 가장 큽니다.
최근 1분기 실적을 발표한 LG화학은 석유화학 부문에서 여전히 적자(312억원 영업손실)를 봤지만 래깅 효과 덕분에 전분기보다 적자 폭을 줄였습니다. 하지만 4월 들어 유가가 하락세를 이어가자 분위기도 반전됐습니다. 2분기는 성수기임에도 중국 시장 내 수요 회복도 더딥니다. 이에 일부 NCC(나프타크래커)업체가 다시 감산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NCC산업 구조조정 논의가 진행되는 와중입니다. NCC 가동률은 이미 손익분기점을 밑돈 지 오래됐습니다. LG화학의 석유화학부문 가동률은 지난해 평균 75.9%에 그쳤습니다. 가동률 80%대에서도 흑자를 보기가 힘듭니다. 지난 2월 중국과 사우디 합작 연산 150만톤 규모 NCC 프로젝트가 착공되는 등 수급상황을 악화시킬 신증설 우려도 공존합니다.
산업계는 원재료값 변동성이 커 재고 전략에 애를 먹고 있습니다. 원료 재고를 저가에 사두면 이익을 크게 보지만 거꾸로 손해가 커질 수도 있습니다. 더욱이 최근 미중간 알루미늄 등 원자재 관세 분쟁까지 터진 상황입니다. 업계 관계자는 “지금처럼 전쟁 불안 탓에 유가가 급변하면 원자재 트레이딩 시점을 정하기도 애매해진다”고 말했습니다. 또다른 관계자는 “아무래도 삼성전자나 현대차 등 완성품을 만드는 곳보다 직접 원자재를 조달해 1차 가공하는 부품사들의 재고 확보에 어려움이 클 것”이라며 “원가인상분을 납품가격에 반영해달라고 요구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라고 전했습니다.
유가와 밀접한 업종은 정유·화학 외에 조선·건설 등 수주업입니다. 고유가 시 수주일감이 확대되지만 현재는 유불리를 따지기 어렵습니다. 고유가 시 시추 플랜트의 수익성이 좋아져 발주가 늘어나지만 전쟁이 원인일 때는 투자가 꺼려지기 때문입니다. 항공·해운 등 운송업의 경우 유가가 오르면 연료비도 상승합니다. 다만, HMM 등 해운업은 전쟁 불안이 각국의 재고 선행 확보를 부추겨 운임지수 상승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국제유가는 미국의 셰일오일 등 증산 속에 하방압력을 받고 있습니다. 전쟁 불안이 커졌음에도 유가가 다시 하락한 이유입니다. 과거엔 중동 산유국들이 미국의 증산을 막고자 가격인하 공세를 펼치기도 했으나 지금 그럴 가능성은 낮게 점쳐집니다. 사우디 등의 재정적자가 길어 흑자를 내는 게 급하다는 관측입니다.
전쟁은 안전자산 선호 현상을 일으켜 달러화 강세도 부추깁니다. 달러 강세는 또한 유가 하방요인 중 하나입니다. 국내선 유가 변동성과 함께 원달러 환율 상승 문제가 산업계를 압박하고 있습니다. 강태수 카이스트 교수는 지난달 30일 한국경제인협회가 주최한 경제 세미나에서 “최근 중동 리스크와 미 연준의 금리인하 불확실성 확대로 인해 인플레이션 재상승, 강달러 지속, 차입금리 인상 등의 부작용이 예상된다”며 “정부가 컨틴전시 플랜을 가동해 유가 급등에 대응하는 한편, 금융시장의 불안을 안정시키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재영 기자 leealive@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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